백철현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불현듯 그가 왔다
먼 시간을 거슬러
갓 스물, 풋풋한 동안(童顏)으로
낙엽 쌓인 동네 야산
그는 두어 번 미끄러지며 올랐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물론 우산은 없었다
고개 쳐든 체
누구도 없이
그는 거칠게 따졌다
문을 찾을 수가 없다고
과연 문이 있기나 하느냐고
대답해 보라고
먹구름 뒤에서 헛기침만 말고
답하라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하늘
결국 빗다발로 그의 뺨을 후려쳤다
두 눈을 파든, 혓바닥을 뽑든
마음대로 해 보라고
그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날 이후
두 눈은 멀었고
혓 바닥엔 재갈이 물렸다
반백 년이 지난 이 밤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린다
홀연히 스치는 동안(童顏)이
그때, 그 빗물로 흐른다
한 닢 꽃잎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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