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오랜만에 옷장을 정리했다. 버릴 옷들, 기부할 옷들을, 잘 개켜서 수납할 옷들, 날씨에 맞게 꺼내 입어야 할 옷들을 정리하고 나니, 하루 온 종일 옷장과 수납 장 근처에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리고 켜켜이 넣어두었던 옷에서 나온 먼지 들 과 기억나지도 않는 작은 천 조각들을 쓸어 담으며, 마무리를 했다. 그러면서 여러 생각이 들더라.
정리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옷을 참 많이 도 소유하고 있었다. 새로 산 옷이 많다기보다는 버리지 않은 옷들이 너무 많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나를 위한 옷을 자주 사는 편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 나는 옷을 꽤 좋아했다. 계절이 바뀔 때면 신상 옷들을 입어보며, 새로운 스타일이나 유행하는 옷들을 사서 옷장에 쟁여 두었다. 신기하게도 새로운 스타일의 옷, 유행에 맞는 옷은 생각보다 자주 오래 입지는 않았다.
나는 너무 뻔한 스타일의 누가 봐도 ‘그 옷이 그 옷 같다’는 스타일의 옷만 계속 꺼내 입곤 했다. 물론 그 당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입다 보니 손이 가는 것만 찾게 되고, 빨고 정리하면서 다시 그 옷들이 가장 손이 가기 쉬운 곳에 놓이게 되고, 그러니 다음에 더 쉽게 찾아 입고,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입는 옷은 너덜너덜 헤질 정도로 자주 입지만, 입지 않는 옷들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른 채 계절이 가고, 세월이 흐르고 한 것 같다.
또 미련하게도 버리는 것을 쉬이 하지 못하는 것도 이렇게 입지도 않는 낡은 옷들이 켜켜이 쌓여가게 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매번 옷장을 정리하면서 ‘이런 옷이 있었어?’ 하면서도, 언젠가 입겠지. ‘이거 너무 유행에 뒤쳐진 것 같은데?’ 라는 물음엔, 유행은 돌고 도니까. 이런 변명들을 속으로 늘어놓으며 자꾸만 버리기를 주저하고 도로 넣어두곤 했다. 캐나다에 산 지 8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그 기간만큼 옷은 입지도 않은 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빛 바래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은 듯 한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실제 간소하게 살며, 환경 오염을 줄이려 노력한다는 사람의 삶이었는데, 보는 순간 마음 속에 울림이 있었다. 3 년 간 입지 않은 옷은 다시 입을 일이 없다는 말이 특히 나 와 닿았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지난 기간 돌이켜보면, 입지 않던 옷은 결코 다시 입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옷이 없다며 새 옷을 사고, 다시 또 옷장은 터질 듯이 입지 않은 옷들이 늘어가고. 이런 삶을 나는 살고 있었다.
그 후 새로운 옷은 되도록 사지 않자는 마음을 먹었다. 진짜 입을 옷일 필요할 때,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우선 옷장부터 정리하자고 했는데, 나의 옷장은 정말 '오래된 새 옷'들이 넘쳐 나고 있었다. 그래서 쓰지 않는 것들부터 정리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더 이상 소비하지 않기 위해 옷장을 깔끔하게 비워냈다.
그리고 다음은 서랍장, 화장대, 주방 수납 장 순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막상 정리를 하며 참 쓸 데 없이 사두고 보지 않고 잊고 또 사고를 반복했다는 사실을 더욱 체감했다. 이다지도 어리석은 소비자라니. 쓸데없이 소비하는 삶으로 지낸 시간들이 아깝기도 하고 자연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또 버려지는 것들이 어디선가 또 다른 오염의 근원이 될 것을 알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반성하는 순간들이기도 했다. 이제 비워낸 곳을 다시 쓰지 않을 것들로 채우는 짓은 하지 않겠다. 일단 다짐은 했다. 아직 어색하고 익숙치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작하기를 바란다. 더 이상 버려지는 것들을 가득 사서 끌어안고 살지 않기를, 비워내고 그 안에 물질보다 좀 더 풍족한 그 무언가가 차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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