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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 죽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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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4-10-07 09:19

박병호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기고
사람은 죽는다. 누구나 그런다.
나는 지금 관 속에 누워있다. 0.5평의 좁은 공간에 어둠이 밀려와도 모른다. 죽었어도 아직 귀는 살아있다. 5감 중 4감은 돌아갔지만 청감은 영혼이 떠날 때 갈 것 같다. 듣되 말은 할 수 없는데, 청각이 더 버틴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들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망자의 영혼에 산자의 음성은 어둠을 뚫는 가시광선 같은 빛줄기이다. 내 영혼도 청각이 떠나갈 때 함께 내 몸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97세 졸, 호상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살 만큼 살다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5년은 더 살 수 있었다. 최장수국에서 여자 평균수명보다 7살이나 더 많이 살았다고들 하니 맞겠지만, 아들이 세운 나의 생명 목표, 102세 고지 몇 보 전에서 하산하는 것이 분하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남편도, 친구도 다 떠나간 곳에서 내가 무슨 늘이를 보고자 더 살고 싶겠는가. 게다가 나는 자식을 앞세우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내색 한 번 안 했지만, 자식들의 머리가 나의 그것보다 더 희어져 가는 꼴을 눈 뜨고는 볼 수 없었다.  
죽으니 어둠과 빛을 구분하지 못하면서도 지혜가 자라난다. 하늘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 문을 열어 놓았다. 영혼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내 영의 눈이 크게 열릴 것으로 믿는다. 또한 천국의 등용문 앞에서 위로받을 것이 확실하다. 나는 세상에서 법 없이도 살 수 있었고, 애통하면서도 희망을 놓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지금도 나의 생명 목표 달성 실패로 실의에 빠진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히 애통하고 있다.  
벌써 하늘과 땅을 오가는 천사들이 모여들고 있다. 산자들에게 차분히 나의 소식을 전하고 싶으나 시급하다. 영혼이 빠져나가면 망자가 산자에게 소식을 직접 전할 수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천국 문으로 가는 길 첫 단계에서 희망과 젊음을 뜻하는 터키 블루 색상의 날개를 단 천사가 묻는다.
“지금부터 거슬러 5년 내에 죽은 사람 중 이승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만나고 싶어 한 사람이 있어요?”
“루이 세풀!”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의 즉답이 나왔다.  
“루이스 세풀베다 아니에요?” 천사가 잠시 한 눈을 치켜 올려 생각하더니 되묻는다.
나는 그가 부처님 오신 날 2주 전, 2020년 4월16일 죽었다는 것(나는 불교도는 아니지만 불자들의 날에는 높은 곳에서 보기에 좋은 사찰을 찾아 산으로의 여행을 떠나곤 했다. '아름다운 곳간은 햇살이 잘 들지 않아도 향기가 난다.'라는 우리 엄마의 말을 잊지 못해서다.)을 잊지 못한다. 또한 그 날은 세계적으로 코로나 방역한다고 난리 블루스를 친 절정의 날이어서도 그렇다. 그가 돌아간 날, 나는 한 그루 나무에서 선홍색 홍시로 익어가던 감 하나가 갑작스러운 회오리바람에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꿈을 꾸었다.
천사에게 기억의 이유를 자세히 말했다. 루 세풀과 나는 같은 인종이다. 그는 복스럽게 잘 생겼고, 나도 복이 많게 생겼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는 아마존 자연에서 살다 죽었고 나도 일찍 서울을 떠나 꽃과 나무가 가득한 곳에서 살다 죽었다. 그는 71세에 죽었으나 밀림에서 그 나이는 오래 산 것이다. 평균치로는 그와 내가 같은 나이에 죽었다. 우리는 장수했으나 둘 다 5년이나 먼저 죽었다. 우리의 생명을 앞당긴 원흉 또한 정부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줘야 할 그들은 나라를 빼앗긴 시절 식민통치 정부만도 못했다. 증명되지 않은 약을 사람들의 몸에 수차례나 억지 주입하더니, 어떤 것은 3차례 임상 성공을 마친 것을 끝내 시판을 불허하여 자국의 기술을 들고 주입 허용국으로 비행해 나가도록 만들었다. 나도 비행이 싫어서 정부 허용을 수십 년 기다리다 죽기 마지막 단계에 와서야 비행에 의존하려고 했다. 그러나 근육이 다 빠져나가 비행기에 오를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한 환자들은 하늘을 날 수 없다.  나도 결국 2인 항공비와 호텔 비만 날리고 20일 후에 죽고 말았다. 말이 길어졌으나 루 세풀과 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사이로 발전할 절체절명의 동질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천사가 어디를 급히 다녀오더니, 루이스 세풀베다가 너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면 다른 사람은 누구 없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상에서는 내 남편 한 사람만 사랑했듯이 하늘에서도 루 세풀 한 사람과만 관계 맺고 싶어서다. 내 물렁한 뇌는 하나에 꽂히면 다른 것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여기서는 혼자서는 살 수 없어요. 미리 와 있던 누군가만이 새로 온 누군가를 천국의 등용문 앞까지 안내할 수 있어요.”  천사가 이렇게 말하며 그 누군가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어야 하고 그 선택 당한 자도 동일한 조건하에서 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 절망이 엄습했다. 나야 그의 책을 읽다 왔으니 만나보지 못했음에도 그를 잘 알지만, 그가 나를 알고 있을 만한 건더기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기어이 천국으로 가려면 천사의 말대로 다른 누군가를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 가로 고심했으나 다른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2주를 굶어 죽어버릴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여긴 먹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향기가 밥이다.
“루 세풀이 나를 싫어하나요?”
“루이스 세풀베다에게 아직 뜻을 전하지 못했어요.”
“말해봤자 안 될 것 같아요?” 나는 그가 안되면 여기서 평생을 살겠다고 우기며 말했다.
“평생 사는 곳은 천국과 지옥뿐이에요, 여긴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갈림길에서 선택하는 과정에 있을 때만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천사가 이 말을 남기고 또다시 급히 돌아갔다. 루 세풀과 내가 천국의 커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려 했으나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영혼에 새겼다. 그때 세상에서 내 관 앞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한 소설에 빠져있었다니까. 무슨 책인 줄 알아? 오빠가 노인의 눈으로 읽기 쉽게 큰 글씨체로 타자쳐서 인쇄하여 A3용지에 뽑아내 한 장씩을 드리면 인공눈물에 눈을 의존하는 노인이 단숨에 읽어 내렸다니까.  일주일이 멀다 하고 또 다른 한 장을 해드릴 정도로 노인의 읽는 속도가 빨랐어. 연애소설 좋아하는 것은 젊으나 늙으나 같더라고. 코로나 때 꼼짝없이 집에 갇혀 살던 때부터니까 그렇게 살기를 5년이 다 돼가네. 얼마나 좋아하셨으면, 내가 엄마 집에 갈 때마다 다시 큰소리로 읽어달라고 하여 읽어주다 보니 나도 그만 그 남자에 빠져들고 말았어.” 막내딸이 누군가 언니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딸도 그를 좋아한다는 말에 충격을 먹었다. 막내딸이 엄마가 좋아하는 남자이니 자기도 좋아한다는 선의로 해석했으나 단순해지지 않았다.
“딸들아, 아마존 노인은 원숭이 고기도 먹어. 뱀 독이 눈에 튀어 올라 눈알도 맑지 않지.” 딸들도 밀림지대 출신의 남자를 좋아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는지 나는 흠잡을 게 없나 혈안이 되어있었다. 내가 딸에게 질투심이 생겨서가 아니다. 나는 땅에서도 질시라는 것을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땅에서와 조금 다르다는 점은 느낀다. 천국은 깊은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딸아, 아름다운 소설을 읽어줄 남자는 많아. 죽음이 서로를 갈라 놓을지라도 함께 멋진 추억을 새기며 살아갈 수 있는 남자여야 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여전히 내 입술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늘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별들로 가득하니 집 욕심도 없다. 간혹 하늘이 천재들을 만들어 내니 이들의 연구가 끊이지 않아 언젠가는 지구와 같은 종의 별들을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Space X를 타고 다니는 전령사 AI가 천사들을 대신하여 다른 별들의 소식을 전해 줄 것이다. 돈 모을 필요도 없으니 은화 30냥에 스승을 팔아버릴 일도, 허상을 진짜로 만드는 나팔수들도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그래도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할 돈을 버느라 아등바등 살지 말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돈은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여기서도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생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 딸들이 천국에서 만날 남자는 나의 루 세풀이 아니라 각자의 루이스 세풀베다가 따로 있으면 한다. 천국 문 앞으로 떠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눈치나 챈 것처럼 딸의 음성이 내 꽃장식 관을 직접 향한다. 그새 내 영혼이 속세의 번뇌를 벗어나는 나비 춤을 추기 시작한다.
“엄마, 하늘에서는 꽃길만 걸어. 허 난설헌의 난초 같았던 허씨 외할머니, 양녕대군의 후손이나 자식에게 이질적인 형제를 선물하기 싫어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외할아버지, 멋진 외모와 뛰어난 두뇌를 갖고도 선동되어 태평양전쟁에 뛰어들어 스무 살에 죽은 둘째 외삼촌, 외모와 학벌만 좋지 돈을 못버는 바람둥이 남편을 만나 미스코리아 뺨칠 외모로 거리에서 생선 장사하다 젊어서 병에 걸려 죽은 이모랑 손잡고...”
“엄마가 나와 며느리에게만 공개한 수예품 중 으뜸인 그것은 며느리가 잘 보관하기로 했어. 끝까지 언니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으려고. 늘 펼쳐보고 싶어 하는 엄마의 뜨게질, 은빛 식탁보도 엄마의 하나뿐인 그녀가 갖겠대. 너무 좋아한대. 욕심은 미우나 귀여운 탐심은 밉지가 않네.”
“손으로 수를 놓은 원앙 베개 카바는 싱글 언니가 가졌고, 말로는 안 가 안 가하면서도 은근히 가고 싶나 봐. 재봉틀로 만든 모기장은 오빠에게 주려고 일단 내가 갖고 있어. 엄마 곁에서 가장 오래 살았으면서도 엄마의 마지막 비행 실패를 자기의 늑장 탓으로 돌려 상심한 오빠에게 엄마 작품 하나쯤은 남겨주어야 엄마가 흐뭇해할 것 같아.”
“다른 딸들도 하나씩 줄 테니 걱정 마. 우린 싸우지 않아. 물면, 열 손가락 아프지 않은 자식 하나도 없다는 말은 이제 그만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만을 지으며 살아. 돌아가실 때까지 자기 치아를 고이 간직한 우리 엄마, 몸은 사라져도 손가락 물 치아만 덩그러니 남게 되겠지.” 막내딸이 숨죽이며 간혹 울음을 섞어가며 쉬었다 이었다를 반복하며 말을 이었다.
좁은 공간에서도 몸 안 영혼이 미소 지었다. 영혼이 넓은 천국으로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서도 완벽한 것은 없다. 새들은 울음으로 희망을 노래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새들의 웃음으로 생각한다. 울음만 섞지 않았으면 좋았는데. 앞으로 누군가의 장례식에는 절대로 울지 말기 바란다. 다시 천사가 돌아왔다. 루이스 세플베다가 나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명랑해지다만 내가 금새 지옥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뒤로 넘어졌는데 코가 깨져도 언젠가 화가 복으로 바뀐다는 생각을 경험으로부터 믿는다. 안 좋은 일도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다. 좋은 결과를 상상하고 바라보기만 하면.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는 것을 보면서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은 삶을 포기한 것이다. 바라봄은 믿음의 씨앗이고, 결과는 믿는대로 된다. 나는 절망의 순간에 오기를 발한다. 그 남자를 차지할 때까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먼저 와 있는 누군가가 이끌지 않으면 천국으로 갈 수 없다고 했으니 아무도 안내하지 않으면 지옥에도 가지 않겠지? 나는 죽지 않았다. 산자와 소통할 수 있는 한. 천사도 그랬다. 세상이 나를 기억하고 있는 한, 내 작품이 살아남아 있는 한, 죽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어떡하지? 나는 허난설헌처럼 불멸의 삶을 살고 싶지도, 신사임당처럼 돈에 내 얼굴 돌리고 싶지도 않는데. 천국 구경 마치고 나서는 죽고 싶은데, 영원히.  우주의 별들이 많다고 해도 후손들의 자리도 필요할 것 같고. 불멸의 천국이냐 필멸의 지옥이냐를 택하라고 하면 나는 후자를 택할지도 몰라. 세상에서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내가 죽는 날이라면 내 작품을 다 불태우고 올 걸 그랬나?  
천사가 답한다. “우린 모두가 함께 돌아가요. 동쪽으로 돌아간 사람이 서쪽에서 와서 또 살며 다시 동과 서를 돌며 반복하다가 어느 날 우주에 별이 가득 차 별들이 공간 다툼을 시작하는 날 우주가 폭발해 별들이 다 사라지면서 모두가 함께 죽어요. 별들도 천사도, 산자도, 죽은 자도 모두 함께 한날 한시에 간답니다. 그게 언제인지는 다시 우주에 별들을 만들어 낼 한 분만 알지요. 어차피 언젠가는 다 죽으니 미리 필멸의 지옥을 선택할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세상 사람, 남겨진 작품 다 잊고,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사랑이나 해요. 드디어 루이스 세플베다가 나의 이 말에 감동하여 자기와 당신의 생명 동질성을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여기는 하나다. 인간이 시공간을 구분 지은 것들은 하나도 없다. 둥근 것들은 나누어 봤자 하나다. 절대 다른 모습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오직 2배, 4배, 16배로 번창만 할 뿐이다.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망자와 천국을 오가는 전령 천사가 천국 등용문 앞에 서성이고 있는 나를 찾아와 날개를 접으며 말했다.
“오늘이 당신의 지구 나이로 102살 생일입니다. 보라색 라벤더 꽃향기로 하얀 뭉게구름에 쓴 연애소설 한 권 가슴에 품고 곧 그 남자가 내려옵니다.”
“아들아, 들었냐?” . . .
“몹시도 덥던 한 여름, 은하수 공원 위에 피어오른 커다란 뭉게구름 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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