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꼬리 칸의 시간

최민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10-07 09:18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저쪽 끝이 314호실이에요.”
안내인이 복도 끝 방을 가리켰다. 처음 와보는 요양병원, 가슴이 우당탕, 방망이질했다.
고관절이 무너져 앉지도 서지도 못하게 된 노모가 이곳으로 옮겨온 게 일주일 남짓, 좁고
지저분한 복개천을 돌아 멀뚱하게 서있는 병원건물에 들어설 때부터 마음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막혀 있던 가족 면회가 때맞추어 풀린 것은 기적 같은 일이지만
시난고난 살아낸 한 생의 끄트머리를 이렇듯 심란한 종착지에서 지어야 하는 인생이라니.

복도 양쪽, 병실 마다에 머리 허연 노인들이 폐기물처럼 내박쳐 있었다. 침대에 웅크려
돌아누운 사람,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쭈그려 있는 사람, 반쯤 넋이 나간 퀭한 눈으로
멍하니 허공이나 주시하는 사람〮…. 대낮이었음에도 음산하고 퀴퀴한 기운이 안개처럼
건물 안을 점거하고 있었다. 삼백 명 가까운 노인들이 형량도 정해지지 않은 무기수처럼
표정을 잃고 복역하는 이곳 불쑥, 설국열차의 꼬리 칸이 떠올랐다. 낡고 해지고 여기저기
고장나 쓸모를 잃은 육신들을 한시적으로 보관해주는 수용소 같은 이곳은 더 이상 인간들의
삶터가 아니었다. 이승이 아닌 연옥 어디쯤의 풍경이려나. 위리안치로 수감시켜 두기에는
너무나 무해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순치된 가축 아니 좀비 같은 표정들, 요양은 무슨. 이름만
아름다운 감옥 아닐까.

"고려장이여, 고려장. 거기 들어가면 니들도 못 보고 혼자 죽 을턴디…. 나는 죽어도 내
집에서 죽을란다. 똥오줌 못 가리고 누워 버리면 그땐 거기다 데려다 놓을 테지…"
똥오줌 못 가리고 누워 버릴까 봐 고장난 허리와 아픈 다리를 끌며 가까스로 화장실을
오가다가 기어이 절퍼덕 주저앉으신 엄마. 고령에 수술도 어려워 다시 걸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게 병원 측이 내린 최후통첩이었다. 현대 의학이 선물한 유병장수라는 질병 아닌
질병이 장수를 축복 아닌 재앙으로 바꾸면서 네 명 중 세 명이 병원에서 죽는 시대, 내

침상에서 내 베개를 베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따뜻하고 아쉬운 포옹이라도 나누며 편안하고
품위 있게 죽는 일은 애초 허용 안 된 꿈이었을까. 연어도 물 냄새를 기억해 강을 거슬러
오르고 코끼리도 죽을 데를 찾아 든다는데 임종 장소조차 선택하지 못하고 주삿바늘이
주렁주렁 꽂힌 채 무슨 무슨 환자라는 죄목을 덮어쓰고 어딘지도 모르는 아득한 곳으로
유배되어 떠나는 게 이생의 마지막 수순이어야 한다니.

허리부터 발끝까지 반 깁스한 몸으로 울룩불룩한 욕창 매트 위에 101살 노인이 누워
계신다. 엄마……하고 부르니 반가움에 고개를 일으키시려다 발끝도 못 움직이고
자지러지는 엄마. 일찍 머리가 세셨지만 염색 한 번 거르지 않았고 진즉 틀니를 하셨음에도
성근 잇바디를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않을 만큼 자존심 강하고 정갈한 엄마가 일생 입어본 적
없는 얼룩덜룩 한 환복에 갇혀 수인(人)처럼 형틀에 포박되어 계신다. 앙상한 뺨, 움푹한
눈자위, 주사 자국으로 성한 곳 없이 멍든 팔뚝, 근육도 없이 말라붙은 다리로 그렇게도 오기
싫어하시던 곳으로 짐짝처럼 옮겨진 엄마는 단지 너무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잠수복 같은
육신에 갇혀 천형 같은 고문을 감수하고 계신다.

소변 줄 끝 비닐 주머니에 탁한 붉은빛이 괴여드는 동안 감은 듯 가느스름해진 눈자위로
말간 누액이 흘러내린다. 전쟁과 가난과 온갖 풍파 속에 아홉 아이를 낳고 생떼 같은 자식을
셋 씩이나 가슴에 묻은 구겨지고 쭈그러진 피대기 같은 범부가 무에 그리 큰 죄를 지었기에
한 생의 끄트머리에서 산채로 칠성판에 붙박인 채로 고통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개체의
죽음과 자기복제로 세대를 이어가는 이 행성의 운영체제를 모르지 않지만, 육친의 생생한
고통 앞에 서면 여태의 터무니없는 은총을 잊고 아직껏 화해하지 못한 신에게 주먹감자라도
날리고 싶어 진다. 설령 그것이 이 땅에 생명을 존속시키는 기발한 순환의 방편이라 쳐도
원천징수 치고는 너무 가혹한 몰인정한 징벌적 과세 아닌가.
생명은 모두 백전백패, 모든 삶은 죽음으로 요약된다. 우연으로 왔다 필연으로 지는 인생, 왜
내 의지도 선택도 아닌 한 생을 힘들게 살아내고도 고통을 당하고 슬픔을 흩뿌리며 공포에
질린 뒷걸음질로 세상을 하직해야 한단 말인가. 더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독수리에게 생
간을 쪼아 먹히는 고통을 견뎌야 했던 프로메테우스처럼, 상황을 명징하게 인지하면서 언제
일지 모르는 때가 올 때까지 초조하게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다. 욕창이 자리 잡은
아랫도리를 어쩔 수 없이 타자에게 내맡기는 수모를 견디며 집에 가고 싶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누워있어야 하냐고, 자포자기의 눈빛으로 그렁그렁해 하시는 외로움에 대하여 검불
같은 저 안노인처럼.

병원에 다녀온 뒤로 내내 잠자리가 편치 못하다. 잠결에 문득 돌아눕다가, 푹신한 침상이
죄스러워 뒤챈다. 뼈마디가 부서지고 살갗이 문드러지면서도 돌아눕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채 형기도 모르는 형량을 감수하고 있을 늙은 수인(人)의 신음소리가 벌떡벌떡 나를 일으켜

세운다. 차라리 얼른 데려가시라고, 아니면 정신이라도 무뎌지게 하시라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소환하기도 한다. 자신의 죽음과 가장 상관없는 사람은 자신일 것이어서 엄마는
지금 삶의 마지막 과정을 명철한 감각으로 인지하며 이승의 시간들을 살아내고 계시는데
주제넘은 딸은 타자의 삶을 고통으로 해석하며 불효 막심한 기도나 드리고 있는 건 아닐까.
날이 밝으면 또 문안 전화를 드리고, 오늘은 엄마 목소리가 좋다고, 드시기 싫어도 드셔야
한다고, 그래야 빨리 집에 갈 수 있다고, 세 숟갈 죽도 못 넘기는 엄마에게 자꾸 늘어가는
거짓말로 짐짓 명랑한 척 주절대야겠지만.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마지막 남기는 말 2026.08.21 (금)
변호사와 마주 앉아 마지막 갈 날을 준비한다 잿빛 머리로 가는 해지는 날이 아니라 불쑥 찾아올지 모를 위험 같은 그날을 위함이다네가 없는 독백의 말들이 하얀 상자 속에 나란히 눕는다임박한 죽음이 빚어내는 절정의 드라마도 가슴 할퀴는 울컥함도 없는 빽빽하게 줄 선 말들의 유희 그 마지막 마침표 아래거기가 종점이다익숙하지 않은 죽음 앞에 마지막 글자로 선명해지는 삶소중한 것들이 말갛게 드러나는 일이다 희극도 비극도...
김영선
유(有, 있음. Being/Existence)와 무(無, 없음, Nothingness)는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평면적으로 생각하면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관찰자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만져서 대상을 감지할 수 있을 때 ‘있다’고 여긴다.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을 때는 ‘없다’라고 한다. 우주공간은 비어 있다고 여기는데 사실상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지 실제로 비어 있기 때문이...
심현섭
죽기 전에 서너 번쯤은 한국을 다시 찾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방문이 계속 미뤄졌고, 어느덧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무엇보다 아내가 두 차례 큰 수술로 쇠약해져 장시간 비행이 어려웠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둘째 딸과 사위가 큰 결심을 했다. 대한항공 프레스티지석(비즈니스석)을 예약해 준 것이다. 요금은 일반석의 거의 네 배에 달했지만, 덕분에 180도로 젖혀지는 좌석에서 편히 앉고, 눕고, 업그레이드된 기내식을 즐기며...
이현재
백작약 꽃 2026.08.20 (목)
울 엄마 시집오던 그 길에 백작약 꽃꽃잎은 하늘 보고 하얗게 수줍음 띤저 멀리 뭉게구름 순백 향 꽃잎 싣고흰 치마 바람결에 나비로 날아올라그 꽃잎 고웁게 따서 백작약 꽃 수 놓아한평생 고달픈 인생 하염없이 닦았네
강애나
2026년 5월 27일 9시, 트왓슨 페리 터미널에서 빅토리아섬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도산 안창호 함 공개초청>;을 받아 견학 가기 위해서이다. 대한민국 해군의 잠수함 도산 안창호 함은 60조 원 규모의 캐나다 차기 잠수함 사업 수주전을 앞두고 캐나다 서안 에스퀴몰트 해군기지에 입항했다고 한다. 캐나다 해군의 환영 행사가 끝난 뒤, 교민들을 초청하여 도산 안창호함과 그 잠수함을 호위하기 위해 태평양을 횡단해 온 대전함을 공개하게 된 것이다....
심현숙
김희성/캐나다 한국문협 회원나는 긍정적인 태도와 에너지를 바탕으로 사람들과 협력하고, 명확하게 소통하며, 맡은 일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캐나다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는 언어와 문화 모두 낯설었다. 그때 이웃들이 보여준 작은 친절들이 큰 도움이 되었고, 그런 경험들이 기억에 남았다. 그 이후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김희성
장경숙/캐나다 한국문협 회원쌓아온 세월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다먼지 쌓인 서랍처럼 오래된 기억들이 스르륵 쏟아진다누군가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무엇을 버려야 할까무엇을 남겨야 할까엉킨 실타래 같은 삶 속에서 손끝은 자꾸 주저한다겉으로는 반짝이는 도자기 같은 하루들그러나 안쪽은 오래된 나무 탁자처럼 균열이 가고한 번도 쓰이지 않은 채시간의 녹이 스민 물건들만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다과욕과 허세, 사치라는 이름의 쇠사슬로나를...
장경숙
곰의 겨울잠 파티 2026.08.07 (금)
단풍잎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던 날, 실버우드 농장 친구들에게 곰이 보낸 초대장이 도착했다.숲속 겨울잠 파티에 초대해!맛있는 음식과 잠옷을 챙겨 친구들과 함께 와!언제: 첫서리가 내리는 날부터 첫꽃이 필 때까지어디서: 실버우드 숲속 큰바위 동굴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꼭 알려줘!개는 초대장을 보자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외쳤다.“우와! 친구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실컷 자는 파티라고? 우리 함께 가자!” 돼지는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윤경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