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

커피로부터의 자유

윤의정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6-17 14:57

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아침에 일어나면 부엌으로 향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작년에 구입한 캡슐형 커피 머신에 물을 붓고 캡슐 커피를 넣은 후, 버튼만 누르면 갓 내린 따뜻하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습관처럼 하루 일과를 커피를 내리는 일로 시작하고, 나 스스로도 커피를 마셔야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가슴이 두근거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화장실을 평소보다 더 자주 찾는 나를 발견했다. 또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새벽 두세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곤 했다. 처음엔 별로 기분 탓이겠거니, 이러다 말겠거니 했던 일들이 점점 증상이 심해지면서 스스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몸이 어딘가 고장 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내가 갖는 증상을 검색해보니, 이 모든 증상이 커피를 마셨을 때 갖는 부작용이었다. 20년이 넘게 커피를 마셔도 아무런 증상이 없었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기분만 있었는데, 이런 부작용을 갖게 된다니 조금 이해되지 않고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그때는 젊었고 지금은 나이가 들었으니 분명 신체 능력에 차이가 생겼을 수도 있고, 아니면 체질이 변한 걸 수도, 그것도 아니면 건강이 나빠진 것일 수도 있었다.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편이 좋다는 답을 얻은 나는 습관처럼 찾던 커피를 줄여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라, 아침이면 의도하지 않아도 다시 부엌으로 향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문득 커피를 끊어야만 된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거나, 그냥 방으로 다시 돌아오는 등 소소한 노력을 들여보았다. 물론 생각보다 많이 힘이 들었다. 습관이란 그런 것이다. 갑자기 하던 것을 하지 않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더 힘든 건 일종의 불안감이었다. 단지 한 잔의 커피를 마시지 않는 제약에 불과했는데, 무언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자꾸 엄습했다. 이건 물리적인 현상인지, 단순히 정신적인 불안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앉아서 제 일을 하지 못하고 자꾸만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부엌을 오가는 나를 발견했다. 평소보다 집중하는 것도 꽤 힘들었는데 하나의 일을 끝내는 데 평소보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이런 불안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커피를 끊은 첫날은 처음 의지가 그대로 있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물로 대신할 수 있었고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은 무척 힘들었고, 그다음 날은 아주 많이 힘이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차에 느끼는 불안감의 크기가 가장 컸다. 그래도 한 잔 마셔야 하나 싶은 내 안의 욕망과 내 의지가 자꾸 다투었다. 나 스스로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었구나를 깨닫기도 했고, 그동안 무언가에 인지하지 못한 채 중독되어 의존적인 삶을 살고 있었구나 반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힘들기만 했던 일주일을 버텨내자, 신기하게도 바로 그다음 날 아침 무언가 전날과 다른 가벼운 기분을 느꼈다. 굳이 무언가 마시고 싶다는 욕구도 없고, 잠이 덜 깨어서 억지로 깨울 수 있도록 외부 자극을 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잠에서 깨고, 오히려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조금은 중독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커피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보기도 했다. 분명 커피에 나는 중독되었던 것이고, 커피로 인해 잠을 깼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잠을 깨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 커피를 완전히 끊었는가라고 하면, 아직 그렇다고 대답하긴 어렵다. 그 후로 미팅을 하며, 과식 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또 커피를 야금야금 마시기도 했다. 다행히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지 전보다 몸이 더 강하게 반응하고, 별로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 전보다 확실히 덜 마시게 되긴 했다. 하지만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커피 없이도 일상에 지장이 없고, 더 멀쩡히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몸에 완전히 익히기까지 말이다. 그렇지만 어딘가에 매여 중독되었던 이전의 나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운 내가 되었다는 사실은 기쁘긴 하다. 어렵지만 언젠가 완전히 커피와 안녕을 고할 날이 있기를 바라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시월의 바다 2026.02.09 (월)
친구여 시월의 바다를 보러 가요에메랄드 번지는 바닷물 따라흰 돗이 기울듯 서툰 배는먼 항로를 찾아가고끝없는 햇살에 수평선이 눈부실 때젊은 꿈이 아직 말 못 하고 서 있지만해변의 잔돌들은 세월을 견디고여물어 가요겨울의 바다는 차가웁게 모두를 멀리하겠지요파도 속 산호는 빛을 잃고고기 때는 검은 투망을 피해 몰려다니고남겨진 조개들이 모래밭을 찾아 긴 행렬을 짓고검푸른 바위는 바다를 움켜쥐려고 울부짓을 거에요고동 소리를 담은...
김석봉
아버지를 찾아서 2026.02.09 (월)
  내 얼굴에도 인생의 흔적을 품은 고랑이 패기 시작하고 부모의 마음을 조금씩 헤아리게 되었다. 너 같은 딸을 낳아보라 하시던 엄마의 울분도 어느덧 내 것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50살이 넘어서야 집어 들었던 책이 있는데, 제목이 [아버지를 찾아서]이다. 아버지 없이 어린시절을 살아온 나였다. 그랬던 내가 저자를 따라 아버지를 찾아 나선 여정에 동행하였다. 나의 아버지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일곱 살 때 우리 엄마와 아빠는...
김보배아이
말은 입체다 2026.02.09 (월)
  어느 환자를 두고,"암입니다. 6개월 생존율이 5%이고 현재로선 치료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의사 A와,"어려운 상황이긴 하나 현대 의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치료 약이 나올 겁니다. 그때까지 저와 함께 버텨봅시다."라고 말하는 의사 B가 있을 때, 환자는 어느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싶을까.남편 중에도 A타입과 B타입이 있다. 아내가 저녁밥을 먹은 뒤 배가 살살 아프다고 할 때, TV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 채 "많이 먹을 때...
정성화
     세 갈래 길     삼거리 이정표를 만나거든     세상살이의 이치여,     지나온 길 뒤 돌아 보게 하고     잠겨서 보이지 않는 길,     찾아야 할 희망을 가늠하며     마음 걸터 앉아 숨 고르는     쉼터 인 것을 알려 주구려.      삶이 한번이라도     등골이 휘는 세상살이를 일러     우연이라고 위로 해 주지 않듯   ...
조규남
“아빠, 뭐 보고 있어?”이른 아침, 아빠가 텃밭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한 무더기 풀을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잠이 덜 깬 눈으로 쪼르르 달려가 아빠 등에 기대며 물었어요.“아고, 우리 호야 깼구나. 더 자지 않고?”“어? 텃밭 풀이 다 어디 갔어요?”내 키보다 훌쩍 자란 풀들이 감쪽같이 사라졌어요.“우와! 텃밭에 풀이 다 없어져 보기 좋아요. 어젯밤에 우렁각시가 다녀갔나 봐?”“우렁각시? 하하 맞네. 착한 우렁각시.”아빠가 호탕하게 웃으며...
이정순
바람 2026.01.30 (금)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이라도 만나서 마음속으로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 진다. 바람을 쐬러 산책길에 나선다. 머리카락, 피부에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에 가슴을 열고 하늘을 본다.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감촉을 느끼게 한다. 하루에 한 번씩 바깥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어야 생기가 날 듯하여, 오후가 되면 산책길에 나선다. ‘바람을 쐬는 일’은 무슨 일인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스스로 물어보기도 한다.운동장을 몇 바퀴 걸으면 마음속으로...
정목일
이민 삼십 년 2026.01.30 (금)
이민자 낯선 땅에 뿌리내리려 할 때마다사람들은 내게 보이지 않는 눈금을 들이민다고향이라는 눈금, 학교라는 치수그들은 나의 과거를 재는 것이 아니라자신들이 밟고 올라설 사다리의 높이를 가늠하는 중이다골목마다 교회 숲을 이루는 도시절 향기는 댓돌처럼 차고 문지방처럼 높다교회의 찬송은 매끄러운 비단처럼 반짝인다사람들은 나를 그 화려한 그물 속으로 초대한다거절의 벽을 허물고 들어가 앉은 식탁 위에서나는 비로소 이방인의 허기를...
전재민
산에는산길에는해 오르고 달 오르는 길이 새롭다 산은철따라 외로움이 피고 지는꽃들의 터전 그리움이 울어넘는산새들의 고향이다 미움도 사랑으로 옷을 갈아 입는아라리 산길 산에 오르면제 마음 봄이되어발걸음이 가볍다 산은오를수록 제 안의 저를 알아가게 하는무언의 스승 그 산길에 오르며 배움이 깊다
유병옥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