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훈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2024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이다. 캐나다 생활 32년만에 정말 꿈같은 일이 이루어졌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이 한국 생활 9년만에 캐나다로 돌아와서 당분간 지내보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 후 나와 아내는 그분들에게 “금방 거주할 곳이 없으면 호텔 대신 우리집으로 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였더니 서로 좋겠다고 하여 우리 두 가정은 7개월 동안 서로 집을 바꾸어 살기로 하였다.
이렇게 이야기가 된 지 보름만에 그들 부부는 밴쿠버에 도착하여 우리집으로 들어왔고 나와 아내는 부지런히 짐을 꾸려 고국행 비행기에 올라 인천공항에 도착후 그들이 살았던 덕소에 있는 아파트로 입주하였다. 이는 실로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고국 방문 때의 호텔이나 게스트 하우스 생활에서는 여러가지 불편함이 있어도 잘 지냈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내 집에서 지내듯이 편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두 가정이 만났을 때, 서로 살아왔던 생활방법을 교환하였다. 즉, 집안과 밖의 화초와 잔디관리, 쓰레기 버리기, 시장 보기, 동네 맛집, 그리고 궁금한 것이나 편지가 오면 카톡으로 서로 알려주기 등등을 상의하고 난 후 우리 부부는 밴쿠버를 떠나왔다.
우리 인생은 이렇게 모든일이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태어난 것, 결혼하기 위해 한 여자를 따라 다니며 몸부림 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 사업을 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신학을 하게 된 것, 목회를 하다 캐나다로 유학을 가게 된 것, 그리고 목회를 하다 트럭을 운전하는 트럭커가 된 것, 그리고 지금처럼 고국에서 이렇게 살게 된 것 등등… 은 원래 내가 계획한 것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내 앞에 주어진 운명같은 길이 열려서 그 길로 걸어왔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세월, 이리 저리 널 뛰듯이 옮겨가며 살아온 세월은 마치 인생의 사다리게임과 같다고 생각되었다.
지난해 가을까지 나는 트럭을 열심히 운전을 했고, 겨울 동안은 쉬다가 금년 3월부터 다시 트럭을 정비하고 일을 할 준비하였으며 아내는 파트타임으로 열심히 일을 하던 중 우리 부부는 예정에 없었던 “집 바꾸어 살기” 프로그램에 당첨된 주인공이 되었다.
이렇게 생활의 변화를 맞이하다 보니 지난 32년 동안을 쉬지 않고 달려 왔던 나의 캐나다 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계절의 변화조차 제대로 느낄 사이도 없이 이민의 땅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정신없이 달려와야 했던 시간들, 그 젊음과 열정,그리고 땀방울까지 남김없이 쏟아야만했던 지난 날들이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기운이 다하여 휴식이 필요하지만 그런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머문 곳은 경기도 덕소 강변에 있는 아파트이다. 과거 내가 알았던 그 덕소가 아니고 아파트들이 숲처럼 둘러싸인 곳이 되었다. 강변에는 잘 정비된 산책로와 생활체육이라 하는 운동기구들도 있으며 대형 쇼핑센터까지 여러 곳이 있어 생활하기에는 매우 편리한 곳이 되었다. 이른 아침이면 나와 아내는 강변에서 산책을 하며 주변에 막 피어나는 새싹들과 아름답게 피는 꽃들을 보며 마음과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오전에 강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우리 부부가 살아온 긴긴 사연들을 나누며 후회도, 아쉬움도, 그리고 미련까지 저 강물처럼 흘려보내자고 하였다. 해가 지는 노을이 지나고 밤이 오면 강건너 불빛과 강속에 비추인 또다른 야경에 둥근달까지 반사된 모습이 너무 황홀하여 우리의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였다.
이렇게 “어느날 갑자기” 집을 바꾸어 살기로 인해 오랫만에 가져보는 자유시간에는 옛 친구들을 만나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가족 친지들은 물론 필리핀에서 돌아온 아들의 식구들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손녀들과의 뜨거운 만남은 다시 올 수없는 귀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시간들이다. 그리고 한가한 저녁시간에는 TV를 시청하였다. “나는 자연인, 한일 가왕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축구경기” 등등을 보면서 진정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이렇게 주어진 귀한 시간은 하늘이 나와 아내에게 준 인생의 안식년이라고 생각되어 감사하는 마음을 그분에게 전하며 오늘 하루도 시간을 아끼며 즐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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