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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에서 3박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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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4-03-18 12:32

강은소 /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프롤로그

쓰레기와 개똥이 널려 있는 지저분한 도시, 니스Nice의 첫 인상이다.
트램 역에서 예약한 호텔로 걸어가는 길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도시라는 환상에서 깨어나게 한다. 역 주변엔 노숙자와 개가 퍼 질러 앉아 있거나 누워 있어 개똥과 쓰레기 투성이고,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상황은 심각해 발걸음을 떼 놓을 때마다 주의가 필요하다.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며 도착한 숙소는 소박하지만 깔끔하고 종업원은 친절하다. 프랑스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부드럽게 구르는 억양 사이에 한두 단어가 낯설지 않은 것은 캐나다에서 지내온 시간이 쌓인 탓일 테다.
첫날이니 길도 익힐 겸 프로메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 - 영국인 산책로까지 걸어가 적당한 식당을 찾는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즐기는 저녁은 검은 초콜릿 맛처럼 달콤하고 쌉쌀하다.

만남 #1

프랑스는 예술과 문화의 나라다.
니스 주변에는 마크 샤갈과 페르낭 레제, 파블로 피카소의 3대 국립 박물관이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의 삶과 예술을 모두 살펴보고 싶지만 짧은 일정이라 어쩔 수 없이 니스 마을 안에 있는 샤갈 국립 박물관과 마티스 박물관을 돌아보기로 한다. 버스나 트램을 이용하면 니스 마을 안은 어디든 15분에서 2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이동에 편리한 10회 복수 승차권을 미리 준비하고 버스를 기다린다.
마티스 박물관은 붉은색의 3층 건물이다. 1층은 때마다 바뀌는 한시적인 전시장이고 2, 3층은 11개 방으로 나누어 예술가의 작품과 그의 생애에 대한 이해를 돕는 당시의 기사나 사진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상설 전시장이다.
마티스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춤La Dance>다. 마티스 예술의 진수인 단순함과 강렬함이 극대화된 작품 원본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헤리티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니스엔 작품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가 한 벽면이 부족할 정도로 전시되어 있다. <춤>은 평면으로 구성한 화면에 극도로 단순화된 푸른 하늘과 녹색 언덕을 배치하고,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는 다섯 명의 무희는 붉은색으로 표현해 색채 효과를 돋보이게 한다. 그 강렬함은 무한한 생명력과 넘치는 자유로움으로 다가와, 그림 속으로 뛰어들어 무희들과 함께 춤을 추며 돌아가게 만든다. 세상에 물든 나를 버리고 본연의 나로 끝없이 춤추는 꿈에 빠진다.
오후엔 단층의 현대식 샤갈 국립 박물관을 만난다. 니스 샤갈 박물관은 샤갈이 1952년부터 1966년까지 만든 17개의 대형 회화 시리즈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 “야곱의 사다리” 같은 성경 이야기와 주제로 메시지를 주는 연작 전체를 볼 수 있는 성서 미술관이다. 내부는 예술가의 상상력을 따라 시적인 여행을 하는 것처럼 배열, 전시되어 있으며 그림 외에도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함께 전시되어 관람의 재미를 한층 더해 준다.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그의 성경 메시지 연작은 색채를 위한 진정한 송가이며 우울함과 기쁨을 번갈아 보여주는 특별한 예술 작품이다. 생생한 색채와 꿈 같은 이미지, 감성적인 깊이와 영적인 강도를 주는, 샤갈의 강력하고 상징적인 작품 중 일부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성경 연작을 보고 나오는 길에 끝내지 못한 나의 숙제를 떠올린다. 해마다 반복되는 새해 결의와 다짐에도 아직 이루지 못한 숙제 하나, 부끄럽다. 나는 언제 쯤 성경의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을까.

만남 #2

니스는 따뜻한 날씨와 아름다운 풍광으로 알려진 휴양 도시다.
도시 권 인구가 대략 100만 정도로 유럽인의 여름 휴가 기간을 제외하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때는 니스 카니발 기간이다. 카니발은 사순절 앞에 열리는 기독교 전통 축제에서 유래된 행사로 보통 1월 말에서 3월 사이 매년 2주 동안 열린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악단과 배우, 무용수들이 참가하는 퍼레이드로 거대한 인형 조형물과 꽃마차, 가장 행렬, 색종이 날리기, 밀가루 전쟁, 불꽃놀이 같은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는 행사다. 프랑스 니스 카니발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카니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카니발과 더불어 세계 3대 카니발로 꼽힐 만큼 알려진 큰 축제다.
때 맞추어 2월에 니스를 방문하여 축제 열기에 흠뻑 젖는다. 신 시가지와 구 시가지를 이어주는 마세나 광장은 카니발 행사의 중심이며, 광장 남쪽은 지중해 해변을 따라 영국인 산책로가 길게 나 있다. 하루에 두어 번씩 마세나 광장을 거쳐 산책로를 돌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며 니스를 만끽하는 중이다.
카니발은 해마다 주제가 바뀌는데 올해는 ‘왕의 패션’이라는 주제 아래 낮에는 꽃, 밤에는 빛의 퍼레이드가 이뤄진다. 낮에 벌어지는 꽃 마차 퍼레이드는 시간을 맞추지 못해 번번이 놓친 뒤, 사람들이 빠져나간 텅 빈 광장과 길거리에 널려진 색종이와 꽃송이를 보며 열기를 짐작할 뿐이다.
카니발의 마지막 밤이다. 환한 빛의 세례 속에 무르익는 축제의 밤이다. 빛의 퍼레이드 입석 티켓을 사고 앞자리 선점을 위해 미리 줄을 선다. 주제가 왕의 패션이라 각국 왕과 대통령으로 분장한 가장 행렬이 지나가는데, 익숙한 몇 개국을 제외하면 어떤 나라를 대표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여하튼 무용수의 흥 넘치는 몸짓, 디테일이 살아있는 멋진 조형 물을 보는 재미는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퍼레이드 중간 쯤 눈에 친근한 차림의 무용수와 악단이 다가온다. 신명 나게 노는 농악대와 사물놀이 패 뒤를 따라 춤을 추며 부채 꽃을 피우는 소녀들의 행렬이다. 젊은 남학생으로 구성된 놀이 패는 서울에서 직접 참여한 듯하고, 부채 춤을 추는 소녀 중엔 노랑 머리 소녀가 둘이나 있으니 프랑스 현지 한국 문화 단체에서 참가한 모양이다. 세계적인 축제 마당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그들을 보니 반갑고 뿌듯하여 행렬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든다. 그사이 시간은 흘러 카니발의 마지막을 수놓던 불꽃이 모두 흩어진다. 사람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이별

여행의 마지막 밤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카니발의 피날레에 젖어 몇 시간을 보낸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밤이 깊다. 뜨거운 물로 피로를 풀려고 서두르는데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지친 몸에 더운 물을 끼얹으니, 근육이 이완되어 팔다리가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몸을 닦고 나오려 하는데 순간 중심을 잃고 ‘미끌’, 머리를 다치지 않으려고 샤워 장 벽을 짚어 버린다. 사실은, 오른쪽 손바닥이 타일 벽을 치면서 손목이 90도로 꺾이는 찰나 엉덩방아를 찧고 나동그라진 상태다. 뇌진탕을 피하여 참으로 다행이다. 놀란 가슴을 다독다독 스스로 달래며 상비약으로 가져간 진통제를 먹는다. 통증이 심하다. 뼈에 금이라도 간 것일까. 당장 응급실에 가봐야 하는 걸까. 진통제 한 알이 부족해 한 알 더 먹고는 뒤척거리다 스르르 잠이 든다.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에 보니 손목이 꽤 부어 있다. 손목이 불편해 오른손을 전혀 쓸 수가 없지만 부러진 것 같지는 않고, 어차피 몇 시간 뒤면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르니 병원은 집에서 가기로 한다. 인근 약국에서 통증과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을 찾는다. 나이 든 여자 약사가 붙이는 파스의 일종인 티슈젤과 고정하는 망이 같이 들어 있는 ‘플랙터Flector’를 추천한다. 파스와 고정을 위한 그물 망이 동봉된 제품은 처음 사용해 본다. 티슈젤이 잘 붙어 있어 사용이 편리하고 약효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는 손목 뼈엔 이상이 없고 인대만 충격으로 부어 있는 상태다. 한동안 오른손을 아끼며 쉬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에필로그

영국인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탁 트인 시야에 오묘한 물 빛이 들어온다. 해변에는 물 색깔과 잘 어울리는 푸른색 파라솔과 흰색 보를 덮은 야외용 테이블이 한가로이 앉아 있다. 바람은 해안을 따라 늘어선 야자나무에 걸터앉아 숨을 돌리고, 햇살은 야자수 어깨를 포근히 감싸는 따사로운 오후다. 상쾌한 기분에 해변으로 내려가 맨발로 자갈을 밟다가 다시 산책로로 올라온다. 잠시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쉬다가 저녁 무렵 산책로 서쪽 끝까지 걷다 보면 니스 해변의 석양, 멋진 지중해의 노을을 만나게 된다. 지중해의 정열이 서서히 가라앉는 아늑한 시간은 세상 근심과 걱정 모두 지워지듯 평화롭게 흐른다.
그 안온함의 추억은 여전히 프로메나드 데 장글레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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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쏘았을까독침 날아와심장에 박힌다벌떼는 귓속에까치는 머리에 살아서내 안에 서러운 항아리괜찮다 괜찮다고 말해본다아니다 아직은 아프다불면의 따가운 눈잿빛 거리를 서성인다보라눈보라 치는 날의 쥐똥나무를각 세워 몸통 잘린 채로홀로 푸르르다시렁 위 등불 켜고천 길 아래로 무릎 꿇고옹이진 마음 비워내던 날길모퉁이 키 작은 그 나무나를 보고 말한다산다는 것은 견디는 것이라고꾸욱하얀 그 꽃향기 가슴에 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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