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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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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4-01-15 14:11

박혜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나이 어린 새 각시 수줍어 반 쯤 내민 빼꼼한 얼굴처럼 신비로움 품은 비밀의 정원, 비원이었던가? 그동안 키워준 친 어미 품이 식상했다고 성급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양 부모 품으로 황급히 달려가는 꼴이 되어 버렸던게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무지한 채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채워진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어쩌면 대열에서 쳐지고 지쳐 버렸기에 무언가 새로운 인생의 달콤한 변화를 꿈꾸었을 것이다. 고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추억을 사진으로 박겠다고 요란 떨며 비원과 덕수궁에 간 것을 선명한 기억 보따리에 챙겨 넣었다. 왕족들이 누렸을 호사스러운 고색 창연한 빛깔이 무슨 상관이라고 500년도 넘게 지나온 그 땅의 후예가 남루한 옷 벗으려 마지막으로 택한 방문길이 왕궁이었을까?
   그런가 하면 한편으론 남도 시장 통 좌판으로 늘어선 주름지고 검은 얼굴들의 기억이 겹쳐지고 있었다. 초라한 작은 바구니에 담긴 각종 보물은 장관을 이루었는데 꼬물거리는 조개며 낙지, 심지어 이름을 알 수 없는 생경한 해산물이 광주리에 그득 했다. 몽니 부리지 않고 선뜻 해산물과 함께 얹어주던 훈훈한 인심을 스스럼없이 사양하지 않으며 덤으로 받아오곤 하였다. 하루도 쉬지 못한 파도는 개펄에 찐득 찐득한 진흙을 어김없이 실어 날랐고 어머니들은 자력으로 자식들 공부 시키려 맨몸이 소금에 절어지는 것도 잊은 채 개펄 속 해물을 환한 미소로 캐내며 자식들의 성공을 꿈꾸었다. 그러나 한 번도 그 녀석들이 고단한 삶을 보상해 주리라 여기지는 않았고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감내하였다. 삶의 다른 모양은 알고 있지도 못하였다. 그렇게 선조 때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순한 삶의 방식도 거대한 문명에 휩쓸리며 종말을 고 할지도 모른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포탄같이 원전 오염수가 내 바다 앞마당으로 흘러오면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신안 천일염 만들던 염전도, 맛깔나던 신안 뻘 산 낙지도 더 이상 밥상에 오르지 않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어민들과 해녀들은 목 놓아 울었다. 살아가는 매일이 더 이상 우호적이지 않고 슬픔과 고통을 내뿜으며 서늘한 등을 보여준다. 고향의 밤하늘 별들이 비춰주는 신비한 빛을 바라보던 즐거움. 보리밥에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던 야무진 습성도 꿈처럼 아련하다.
   인간의 영민함은 초고속 철도로는 모자라 인공지능과 복제 인간을 만들어 대며 신에게 대항하고 있다. 언젠가 인공지능을 가진 AI는 명령을 거부하고 인간을 대적하며 큰 반란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 아무도 거대한 강 둑의 터진 댐을 막지 못한 채 “어머머” 하는 새에 떠내려가고 있다. 우리 자식들은 로봇에 밀려 일터에서 내몰리며 미처 절제하지 못한 넘치는 편리함은 결국 우리를 망가뜨릴 것이다. Stop!! 인류는 인공지능의 노예로 전락하여 거대한 노예선에 실리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기억하는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면 너무 늦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유사 이래 가장 끔찍한 가뭄과 홍수, 그리고 찜통 더위에 꼼짝 없이 포위 당하였다. BC 주에서만 무려 400 여 군데 산불이 타고 있다. 이곳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가늠 조차 힘든 상황이다. 오늘도 뉴스는 전한다. 소방대원 두 명이나 우리 대신 산불과 싸우며 귀한 목숨을 바쳤다. 순직한 19살 소녀 소방대원의 사진 속 웃는 모습이 여간 선하지 않다. 요즈음 세태와 동떨어진 모습의 순박한 모습이 드러난 하얀 이만큼 이나 마음이 고우니 그런 험지에 지원했겠지. 누군가의 딸이며 누이일 텐데. 성스러운 순국의 죽음이지만 죽음 앞에 자유로울 순 없다. 말없이 돌아온 딸의 싸늘한 주검 앞에 한 어미는 울부짖으며 “왜 내 새끼여야만 하냐?”고 목 놓으리라.
   가뭄 때는 누렇게 타 들어 간 잔디가 더 자연스럽다. 환경에 역행하며 진 초록빛 내뿜는 어색한 잔디는 왠지 우리의 이기심을 담고 있는 듯하다. 새벽에 소리 없이 도둑 비가 아주 조금 내렸다. 젖은 땅을 보는 것이 실로 몇 달 만인가? 대지를 적신 긍휼의 물방울은 영혼의 목 마름도 해갈 시킨 듯 주신 그 분께 향한 감사로 충만하다. 오늘 비로소 비구름의 문 빗장을 자유롭게 풀어 주셨나 보다. 방 속에만 갇혀 있던 구름도 심히 답답했겠지. 산불로 오염되었던 공기에 신선한 바람 다시 불어온다. 심 호흡하며 공기를 빨아들여 본다. 자극적이지 않기에 마음껏 숨을 쉬어 보며 감사한 마음 든다. 촉촉한 잔디를 맨발로 걸어보니 여름인 데도 발이 시리다. 알싸한 감촉이 와 닿으며. 산책로에는 평상시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도 나처럼 비 구경 나왔나 보다. 흐르는 강물조차 빗살 때문인지 조급해 보이지 않고 말없이 세월을 부지런히 실어 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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