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

공짜집

김보배아이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09-01 09:44

김보배아이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1년 동안 미치도록 사랑한 장소가 있다. 그곳은 실제로는 본 적이 없는 장소였고, 가본 적도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침에도, 저녁에도 들락거렸다. 내가 드나든 그 곳은 캐나다 로키산맥에서 가까운 캘거리 외곽에 위치한 한 주택이다. 지금부터 본 적도, 가본 적도 없는 집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려 한다. 

2019년, 어느 날, 집을 공짜로 준다는 믿기 어려운 뉴스를 보게 되었다. 캘거리 외곽에 ‘밀러 빌’이라는 마을에 작은 호숫가, 언덕 위의 그야말로 그림 같은 집에 사는 부인이 있었다. 부인은 자신의 집을 부동산 시장에 내놓아 팔지 않고 스스로 다음 주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녀가 내 건 조건은 “그 집에 살게 되면, 나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편지 한 장에 쓰고, 25달러 참가비를 보내는 것이었다. 집주인인 부인은 마음에 드는 사연의 주인공에게 그녀의 집을 공짜로 주겠다고 했다. (부인이 이사갈 집의 비용을 이 공모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참가비를 모아서 마련하겠다는 것) 저택은 당시 싯가로 1.7 million, 당시 한국 돈으로 셈하면 15억에 달하는 고급 저택이었다. 부인은 각종 방송국과 인터뷰를 해서 캐나다 전국에 공모전을 알렸다.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는 반신반의하였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공짜 집을 꿈꾸게 되었다. 거짓말을 안 보태고 시름시름 앓는 수준이 되었다. 꿈을 꾸면 꿀수록 어렸던 나에게 집이 되어 주지 못했던 아버지가 하늘에서 네 명의 손주와 나에게 집을 주려고 준비하셨다는 믿음까지 갖고 말았다. 

아버지는 내가 일곱 살 때 엄마와 헤어지셨기에 어린 시절 나의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아버지는 집을 짓는 건축가셨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의 집을 지어주면서 정작 당신의 집은 짓지 못한 사람이었다. 
집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할수록, 아버지라는 존재를 연상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바로 집의 지붕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비가 오면 비를 막아주고, 눈이 오면 눈을 막아주고, 뜨거운 태양 빛을 막아주는 지붕이 바로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말이다. 나는 지붕이 없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살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맑은 날에는 비록 그 존재의 필요성을 잊었다가도 비가 내리는 날에는 쏟아지는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 집에서 나는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순간 내 어깨는 움츠렸다. 갑자기 지구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부터 쌩한 바람이 불어와 내 가슴을 얼렸다.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눈앞에 보여 내 눈엔 뜨거운 물이 가득 차올랐다. 눈을 꿈쩍이면서 양 소매로 연신 훔쳤다. 하지만 집과 아버지라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고 부터는 서러움이 떨치지 않았다. 내가 아이 네 명을 아등바등 키우면서 집이 없이, 수도 없이 이삿짐을 싸고, 때론 쫒겨나면서 힘들었던… 집 없는 설움이 목구멍을 가득 메웠다. 
'이건 분명 아버지가 생전에 못 한 선물을 이번에 해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집은 종종 온 식구가 다 함께 투표하고, 영화 한 편을 고른 후에 무비 나잇을 하곤 한다. 한 번은 <인크레더블 2>를 고르게 되었다. 이 영화는 초능력을 소유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첫 영화의 성공에 힘입은 후속편에서는 엄마가 주인공이었다. 경제적으로 가족이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엄마가 큰 회사에 채용되어 엄청나게 멋진 사택을 제공받게 된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집인 유명한 낙수장(落水莊·Falling water)을 오마쥬 한 듯 절벽 위에 지어진 꿈같은 디자인의 외형이었다. 온 가족 구성원이 집안으로 들어설 때 현대적이면서 미니멀한 구조의 인테리어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습이었다. 나는 전율했다. 내가 쓴 편지가 뽑혀서 밀러빌 저택으로 이사 들어가는 장면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영화보다도 선명하게 내 눈앞에 나타났다. 우연히 고른 만화영화는 그야말로 계시의 메시지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영화 속 장면의 전율이 가시지 않은 채 구름 속을 걷고 있는 나날이었다. 한 지인으로부터 6인용 고급 식탁을 물려받게 되었다. 섬세한 조각으로 마감된 식탁의 우아함은 바로 밀러빌 고급 저택의 분위기에 어울렸다. 내 마음을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어느새 나는 이삿날을 받아놓았다. 구질구질한 살림을 다 버리고 이사할 때 식탁은 꼭 가져갈 것이라 마음먹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밀러빌 집을 들락거렸다. 현관문을 들어서 가장 먼저 오른쪽에 위치한 반원형의 피아노 방은 둘째에게 줄까, 큰아이에게 줄까 고민하였다. 문이 없으니까, 우리가 들어가서 문을 달아야 하나 걱정도 되었다. 넓은 주방 카운터 위로 온갖 주방 도구를 늘어놓고 빵을 굽고, 쿠키를 구워서 이웃집에 배달하러 갔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을 긴치마를 나풀거리며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차고 위에 위치한 작은 방은 당연히 남자애들 둘이 써야겠지. 이층침대를 어느 쪽 벽에 붙여 놓을까. 큰 방으로 향하는 복도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주욱 걸었다. 1층 거실에는 하루가 멀다고 집구경을 온 손님들이 가득이다. 나는 귀찮으면서도 좋아한다. 큰 맘 먹고 마련한 고급 찻잔에 몇 시간 동안 우린 대추차도 내고, 커피도 매일 몇 잔이고 홀짝거린다. 2층 거실에는 큰 스크린을 설치해서 영화관으로 만들고, 한 달에 한 번은 친구들을 불러라. 일주일에 한 번씩은 여자 셋이 자쿠지 목욕을 하기로 하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침 해가 뜨기 전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숫가를 맨발로 나가 자갈돌을 밟는 것이다. 그러다가 해가 뉘엿거리면 막내인 승연이가 진흙을 가지고 놀 것이고,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 두지. 

집을 구경한다고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친구들이 놀러 오고, 한국에서도 한 번쯤 방문한다. 캐나다의 가운데 땅에까지 오는 먼 하늘, 그리고 먼 길이다. 우리집에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차안에서 일단으로, 이단으로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써서 ‘공짜 집’을 얻었는지 수도 없이 궁금해하리라. 큰길을 지나 작은 길을 둘레둘레 지날 때, 이미 이 마을의 아늑함이 맘에 들 것이다. 드디어 도착한 집 앞에 차를 세우면 모두의 가슴은 함께 두근거린다. 휘둥그런 눈들을 하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 집주인인 나는 제일 먼저 지하 포도주 창고부터 보여준다. 달팽이처럼 돌돌 말린 계단 손잡이를 잡고 두 바퀴를 돌아 내려가면 차가운 기운이 이마를 스치고 가는 것이 좋다. 나선형 계단이 전부 차지한 공간이지만, 계단을 잡은 내 손이 조명을 받는 무대같은 공간이다. 작지만 사방으로 위로부터 아래까지 갖가지 포도주가 누워있고 쟁여있는 곳이다. 눈을 뜨면 그 집 안방이었고, 낮잠을 자고 깨면, 그 집의 발코니에서 일어났다. 밤늦도록 애들은 실컷 떠들게 놔두었다. 그래도 되니까 말이다.  

나는 이제 집을 가진 인류이다. 집을 짓는 아버지와 내 어려서 살고 싶었던 그런 집에서 산다. 나는 잘 쓴 편지 한 장으로 이렇게 근사한 집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상상의 나래와 착각의 늪을 원 없이 헤매며, 일 년이라는 시간은 흘렀다. 이윽고 대망의 결과를 발표했다. 공짜 집 이벤트는 뜻밖에도 참가자 수의 부족으로 두 차례의 기한 연장을 하고 결국은 무산되고 말았다. 황당무계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진심으로 만 하루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하지만 그 하루와 밤을 보내고, 내 심연의 목소리가 잘 들렸다. 잘 놀았다고. 후회 없이 행복했노라고. 

일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상상 놀이는 행복했고, 평생 그토록 열망하던 집이라는 대상에 대해 원 없이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은 건물이 아니다. 공간이다. 집이 건물이라는 고정관념에 머물고 있으면 비참해진다. 세상 사람들을 집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하게 된다. 하지만 집을 건물이 아닌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집은 낭만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집이 아닌 무용학원에서 자란 나에게 무용실과 엄마의 사무실이 집 일 수 있었던 것이다. 집은 아름다운 시간과 즐거운 추억으로 채워지는 공간이다. 명품 냉장고와 식기세척기가 있는 곳이 아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시월의 바다 2026.02.09 (월)
친구여 시월의 바다를 보러 가요에메랄드 번지는 바닷물 따라흰 돗이 기울듯 서툰 배는먼 항로를 찾아가고끝없는 햇살에 수평선이 눈부실 때젊은 꿈이 아직 말 못 하고 서 있지만해변의 잔돌들은 세월을 견디고여물어 가요겨울의 바다는 차가웁게 모두를 멀리하겠지요파도 속 산호는 빛을 잃고고기 때는 검은 투망을 피해 몰려다니고남겨진 조개들이 모래밭을 찾아 긴 행렬을 짓고검푸른 바위는 바다를 움켜쥐려고 울부짓을 거에요고동 소리를 담은...
김석봉
아버지를 찾아서 2026.02.09 (월)
  내 얼굴에도 인생의 흔적을 품은 고랑이 패기 시작하고 부모의 마음을 조금씩 헤아리게 되었다. 너 같은 딸을 낳아보라 하시던 엄마의 울분도 어느덧 내 것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50살이 넘어서야 집어 들었던 책이 있는데, 제목이 [아버지를 찾아서]이다. 아버지 없이 어린시절을 살아온 나였다. 그랬던 내가 저자를 따라 아버지를 찾아 나선 여정에 동행하였다. 나의 아버지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일곱 살 때 우리 엄마와 아빠는...
김보배아이
말은 입체다 2026.02.09 (월)
  어느 환자를 두고,"암입니다. 6개월 생존율이 5%이고 현재로선 치료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의사 A와,"어려운 상황이긴 하나 현대 의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치료 약이 나올 겁니다. 그때까지 저와 함께 버텨봅시다."라고 말하는 의사 B가 있을 때, 환자는 어느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싶을까.남편 중에도 A타입과 B타입이 있다. 아내가 저녁밥을 먹은 뒤 배가 살살 아프다고 할 때, TV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 채 "많이 먹을 때...
정성화
     세 갈래 길     삼거리 이정표를 만나거든     세상살이의 이치여,     지나온 길 뒤 돌아 보게 하고     잠겨서 보이지 않는 길,     찾아야 할 희망을 가늠하며     마음 걸터 앉아 숨 고르는     쉼터 인 것을 알려 주구려.      삶이 한번이라도     등골이 휘는 세상살이를 일러     우연이라고 위로 해 주지 않듯   ...
조규남
“아빠, 뭐 보고 있어?”이른 아침, 아빠가 텃밭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한 무더기 풀을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잠이 덜 깬 눈으로 쪼르르 달려가 아빠 등에 기대며 물었어요.“아고, 우리 호야 깼구나. 더 자지 않고?”“어? 텃밭 풀이 다 어디 갔어요?”내 키보다 훌쩍 자란 풀들이 감쪽같이 사라졌어요.“우와! 텃밭에 풀이 다 없어져 보기 좋아요. 어젯밤에 우렁각시가 다녀갔나 봐?”“우렁각시? 하하 맞네. 착한 우렁각시.”아빠가 호탕하게 웃으며...
이정순
바람 2026.01.30 (금)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이라도 만나서 마음속으로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 진다. 바람을 쐬러 산책길에 나선다. 머리카락, 피부에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에 가슴을 열고 하늘을 본다.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감촉을 느끼게 한다. 하루에 한 번씩 바깥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어야 생기가 날 듯하여, 오후가 되면 산책길에 나선다. ‘바람을 쐬는 일’은 무슨 일인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스스로 물어보기도 한다.운동장을 몇 바퀴 걸으면 마음속으로...
정목일
이민 삼십 년 2026.01.30 (금)
이민자 낯선 땅에 뿌리내리려 할 때마다사람들은 내게 보이지 않는 눈금을 들이민다고향이라는 눈금, 학교라는 치수그들은 나의 과거를 재는 것이 아니라자신들이 밟고 올라설 사다리의 높이를 가늠하는 중이다골목마다 교회 숲을 이루는 도시절 향기는 댓돌처럼 차고 문지방처럼 높다교회의 찬송은 매끄러운 비단처럼 반짝인다사람들은 나를 그 화려한 그물 속으로 초대한다거절의 벽을 허물고 들어가 앉은 식탁 위에서나는 비로소 이방인의 허기를...
전재민
산에는산길에는해 오르고 달 오르는 길이 새롭다 산은철따라 외로움이 피고 지는꽃들의 터전 그리움이 울어넘는산새들의 고향이다 미움도 사랑으로 옷을 갈아 입는아라리 산길 산에 오르면제 마음 봄이되어발걸음이 가볍다 산은오를수록 제 안의 저를 알아가게 하는무언의 스승 그 산길에 오르며 배움이 깊다
유병옥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