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윤의정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08-21 08:54

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나는 성격이 매우 급하다. 아니, 급해졌다. 그리고 이런 내 성격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급한 성격은 사회생활을 통해 변해버린 것으로, 원래의 나는 아주 느긋하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마저도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의 이야기라 정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때는 지금과 같은 고통스러운 마음이 한참 덜했던 것도 같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너무 느긋한 내 성격 때문에 ‘속 터진다’는 이야기를 곧잘 하셨다. 서두르지 않기도 했고, 대부분의 것에 무감한 편이라 문제를 잘 일으키지 않았다. 또한 실수도 많은 편이 아니었다. 무엇을 하든 충분히 생각하고 움직였으니까. 그런데 이런 성격은 사회에 나오면서 생각보다 여러 장애물에 부딪히게 했다. 세상은 아주 바삐 돌아가고, 나는 그 세상의 속도에 나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

  처음 취업해 일을 하며 겪었던 문제 중 하나는 어떤 결정을 신속하게 내려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사회 초년생이 영향력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상사에게 보고를 올리기 위해 수많은 선택지 중에 적당한 것을 고르고 추려서 상사가 수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실수 없이. 그런데 이건 조금 어려웠다. 어떤 선택을 빠르게 하기엔 나는 생각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시간을 끈다고 해서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일종의 압박 속에서 점점 생각을 짧게 하고 바로 결정하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덕분에 어느 날인가 문득 돌아본 나는 아주 급하고 고민하지 않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무엇을 선택하든 아주 빠르고 쉽게 결정했다. 이렇게 급히 결정을 내리다 보니 잦은 실수를 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특히 직접적으로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나에겐 갓 십 대에 들어선 아들 둘이 있는데, 이 둘이 신기하게도 어렸을 적 나의 성격을 닮아 느긋하고 무엇이든 천천히 결정하고 움직이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건 또 지금의 나를 아주 답답하게 만든다.

  집안일을 하는 도중에 종종 아이들에게 일을 돕게 시키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집안일을 배우고 돕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혼자 다 처리하기 힘들기도 해서 강아지 먹이를 주거나 쓰레기를 비우거나 진공청소기로 청소하기 등의 간단한 집안일을 시킨다. 그런데 계획한 바에 따르면 벌써 몇 가지 일을 처리할 법한 시간인데도 아이들은 느긋하게 하나도 채 마무리 못하거나 더 시간을 끌거나 한다.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강아지랑 노느라 느긋하게 움직이기도 한다. 그러면 자꾸 슬금 슬금 급한 성격이 나온다. 잘 생각해 보면 어떻게든 끝내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아이들이 내 성에 차지 않아 나도 모르게 잔소리를 하나씩 풀어놓게 된다.

  그런다고 아이들이 느려터진 동작이 빨라지는가? 그건 또 아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시계가 있었고, 자기들만의 행동 계획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지시와는 무관하게 움직이곤 한다. 이건 어려서 나의 모습과 같다. 그리고 이 때문에 나도 어려서 종종 부모님의 화를 돋우기도 했었다. 마찬가지로 자기 원하는 시간에 일을 시작하는 것을 보노라면 엄청 화가 나면서도 또 한편으로 내 어린 시절이 겹쳐 보여 많은 생각이 들곤 한다.
하루는 아이에게 똑같이 빨리 일을 마치고, 다음 일을 하라며 잔소리하던 찰나에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아주 논리적으로 나에게 답을 했다.
"엄마, 지금 하고 있는데 동시에 여러 개를 하라고 하면 힘들어요.”
“우리가 할 수 있을 때 하면 안 돼요?”
둘이 합심한 듯 같은 말을 꺼내는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면 집안일이라는 게 지금 끝내나 조금 이따 끝내나 상관이 없는데, 나는 사회생활을 하며 느꼈던 압박감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아이들을 괴롭힌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감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제출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지금 청소를 하나 몇 시간 뒤에 청소를 하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조금 미안해졌다.
나도 어려서는 저러했는데, 느긋하게 천천히 누구한테도 화내거나 짜증 내지 않았는데. 지금의 나로선 다시 돌아가기에 너무 많이 변해버린 모습이지만,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변하라고 강요하는 모양새와 같다고 깨닫고 나니 내 잘못이 눈에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미 이십 년 넘게 유지해 온 성향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지라 여전히 아이들에게 빨리빨리 하라는 잔소리를 하고 또 순간 잘못했다고 깨닫고 실수하고 하는 습관은 지금까지 또한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전에 비해 조금은 자제하게 되었다는 정도. 그리고 한편으로 아이들이 나와 같이 급하고 잦은 실수를 하는 성격으로 자라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정도. 딱 그 상태다.

  여전히 어제도 오늘도 빠짐없이 아이들에게 빨리라는 말을 꺼내곤 하는데 그래도 약간 더 신경 쓴다면 전보다 살짝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 세상에 뒤처져 느리기만 한 것도 별로지만 굳이 아이들의 성품을 어려서부터 내 속도에 맞춰서 바꾸라고 괴롭히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천천히 느긋하게 사는 자세가 억지로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시금 내가 배우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잔소리를 늘어놓기 전 스스로 속으로 한 번쯤 읊는 중이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라고 말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어머니의 섬 2025.12.31 (수)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잘 기억도 되지 않는 것에 이토록 애 닳아 하는 것일까. 이건 필시 병일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야 수십 년을 넘은 이 나이 이르러까지 연연해 할 이유가 없잖은가. 돌아가신지 50년이나 되신,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어머니의 추모예배를 드리는데 괜시리 심통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물론 우리 가족 네 식구만 드리는 조촐한 예배다.  그런데 오늘따라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최원현
물러가는 어둠의 끝자락에서우리는 살며 차마 말하지 못한 아쉬움을한 줌 눈처럼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병오년 새해, 말의 기운이 들판을 깨우고로키의 우람한 어깨 위로침묵하던 밤이 물러납니다태평양의 검푸른 파도를 가르며 솟는 희망그 첫 빛은 상처 난 골짜기까지 공평하게 적시며묵은 한숨 위에도 새로운 길을 그려 놓습니다 살면서 놓친 것에 대한 미움마저산맥과 산맥 사이, 평원과 평원 사이로 흘러새해의 화두 속에...
이상목
고목의 오후 2025.12.26 (금)
계절은 오면서 가고시절도 오듯이 가고잠깐 꿈속을 다니니고목이 되었네어린나무의여린 꿈은 아직 푸르른데검은 형상의 껍질이언제 온몸을 감싸게 되었나그래도 봄은 푸른 싹으로 다가오고여름에는 먼 철새가 찾아온다검게 남은 세월을 잘 벗겨서망각의 새들에게 주어야지아직 시려운 하얀 몸이 드러나면빛나는 푸른 잎을 입을 수 있을 거야가지에는 지중해 복숭아꽃이 피어나고가슴을 닮은 푸른 하늘을 향해 키도 자라겠지멀어져간 처음 사랑도...
김석봉
미국에서 아들 내외가 오랜만에 다녀갔다. 딸이 며칠 휴가를 받아 우리 네 식구는 모처럼 함께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록키 포인트 공원에 가서 바다를 배경으로 가족사진도 찍고 일식집에 들러 생선 초밥과 회도 먹었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일상일수도 있는 일들을 우리는 특별한 날이나 된 양 참 어렵게 했다. 그다음 날도 우리는 가족여행을 온 것처럼 가스타운(Gastown), 밴쿠버 다운타운, 스탠리 팍, 그리고 UBC 박물관까지 관광을 다녔다. 오가는 차...
심현숙
열쇠 없는 집 2025.12.26 (금)
  사람이 일생 동안 집을 몇 채나 갖고 사는가를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에 따라 많고 적을 수도 있고 평생 동안 단 한 채도 가지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죄송하게도 우리는 아파트에 살면서 농장에 딸린 농막 한 채를 덤으로 가지고 산다.아파트에서 승용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농막은 산날망*에 거미집처럼 불어 있어 집이랄 것도 없으나 눈비를 피할 수 있고 소박하게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또한 지대가 높아서 아담한...
반숙자
그런 사람 2025.12.26 (금)
우리는 그런 사람하늘이 지펴 논 그런 사람내일이 없는 세상을 안고오늘을 건너가는 그런 사람가 보지 못한 너른 세상텅 빈 세월의 새벽을 두드리며서툰 걸음을 시작하는 사람우리는 사는 동안누군가의 빛누군가의 가슴누군가의 눈물누군가의 사랑으로여기까지 온 그런 사람이 땅에 선물처럼 내려와그리움에 떠돌다 외로움에 내려가슴을 나눠 먹고아침을 나눠 먹는서로의 사람으로 젖고 젖어가는 그런 사람
백혜순
한 해 한 해 쌓이는 시간 속에작은 웃음과 눈물이 모여행복이라는 완성을 빚어내네.마지막 달의 고요한 빛 속에서나는 걸어온 길을 되새기고오늘을 감사로 묶어두네.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새로운 희망의 문을 열며나는 다시 시작을 노래하네.바람은 속삭인다------"너의 걸음은 충분히 아름답다."별빛은 응답한다------"내일은 더 환하게 빛날 것이다".*독자에게 전하는 말*시간은 우리에게 끝과 시작을 동시에 선물합니다한 해의 마지막은 또 다른...
이봉란
“그래서 수어를 배웠나요?” 이 질문의 뜻을 바로 이해했다. 한두 장 읽고 말 줄 알았는데 다 읽게 되었다며, 내가 쓴 문장대로 살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책에는 청각 장애인 부부를 만나 썼던 <손의 언어>라는 글이 있다. 그가 장애인 지원기관 수장이라 그 글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배우고 싶은 언어로 수어를 소개했으니 내가 정말 수어를 배웠는지 묻는 것이다.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 이성적인 생각을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김한나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