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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11-21 09:40

이정순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따뜻한 방에 있다 갑자기 밖에 나와서 그런지 으스스 한기가 들었다. 더군다나 땅에 떨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정신이 아찔했다. 요즈음은 시골길도 흙이라곤 찾아 볼수 없이 온통 시멘트로 포장되었다. 소는 간혹 불만을 터뜨렸다.
“전에는 아무 곳에나 똥을 싸도 괜찮았는데, 이제 정해진 곳에만 싸야 하니. 원! 하지만 버릇이 돼서 밖에만 나오면……, 으! 오늘은 더 못 참겠어. 끙! 아, 시원 타!”
어쨌든 나는 그 충격으로 어질어질했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재잘재잘 겨울 새 소리가 들려왔다. 쌩쌩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와! 이번에는 굉장히 큰 거야. 애들아, 이리 와 봐!”
“여기도 있는걸!”
“하나둘 셋! 셋이나 된다구.”
“쿰쿰! 에고 구린내!”
새 떼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도 이게 어딘데. 겨울이라 벌레가 없어 배고픈데 아직 따뜻해. 김이 모락모락 나잖아!”
새들이 나무꼭대기에서 내려와 내 몸을 콕콕 쪼아댔다. 아픈 곳을 톡톡 만져주는 것 같아 시원했다.
“아고, 우리가 이런 걸 먹어야 하다니. 겨울이 없으면 좋겠어.”
“그래, 맞아 맞아! 봄이면 야들야들한 벌레가 천진데.”
새들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맞장구를 쳤다.
“왜 우리는 개미들처럼 먹이를 저장하지 못할까?”
새들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으으으, 추워!”
함께 소 배 속에 있던 애들이 춥다고 야단이었다.
“꽁꽁 얼어버리겠어.”
탈 탈탈!
그때 경운기가 다가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쯧쯧쯧! 어느 집 소가 아무 데나 똥을 싼 겨!”
경운기에서 아저씨가 내리더니 나를 삽으로 달랑 들어 올렸다.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붕 날더니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탈 탈탈 소리를 내며 경운기가 다시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있던 푸른 초원으로 가고 싶다.’
그곳에는 온갖 들풀과 색색의 아름다운 야생화와 풀벌레, 하늘의 구름, 시원한 바람. 참 평화로운 곳이었다. 그렇지만 겨울이 되면 찬바람이 쌩쌩 불고 눈이 내려 모든 풀은 까슬하게 말라갔다. 겨울을 이겨 내기란 참 힘들었다. 그때 소가 와서 마른 풀이 되어버린 나를 뜯어 먹었다. 옆에 있는 풀들까지도 싹싹 먹어 치웠다.
“으악!”
우리는 비명을 질렀다.
“미안해. 놀라지 마. 너희는 다시 태어날 거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나쁜 말은 아닌 것 같아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우리가 보내진 그곳은 따뜻한 방이었다. 겨울이 춥지 않을 거로 생각하니 나는 안심이 되었다. 소는 낮에는 풀을 열심히 뜯어 먹었고, 밤에는 잠도 자지 않고 되새김질했다. 쉬지 않고 하루에 삼만 번씩 열두 시간이나 일을 했다. 소는 네 개씩이나 방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첫 번째 방 혹방으로 보내졌다. 그 방에서 미생물들과 혼합되었다. 미생물들은 셀룰로스로 설탕을 분해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다음 방으로 옮겨가는 터널은 스키를 타듯이 쌩! 하니 미끄럼을 타고 갔다.
“야호!”
무척 재미있었다. 그것이 두 번째 방이었다. 그 방은 벌집 모양으로 울퉁불퉁했다. 그곳을 통과하면 다시 입속으로 보내져 소는 자면서도 되새김질했다.
“에이, 잠잘 때는 좀 쉬어요. 그러다 병나겠어요.”
“허허! 녀석들!”
“우리 미끄럼 타고 싶단 말이에요.”
“오냐 오냐! 조금만 더 기다려라. 아직 오백 번밖에 못 했는걸. 백번만 더 하고 다음 방으로 여행시켜주마.”
“그럼 육백 번씩이나 씹어요? 이빨 빠지겠어요. 이빨 빠지면……, 으으! 무서운 치과 가야 하는데.”
“녀석들! 이제 다됐다.”
우리는 세 번째 방으로 신나게 미끄럼을 타고 갔다. 미끄럼 타다 흩어진 우리는 주름위라는 네 번째 방으로 가서 또 열두 시간이나 푹 쉬었다.
“아고 심심해요. 미끄럼 태워줘요.”
우리는 소의 몸속 구석구석으로 영양분을 보냈다. 소는 많은 우유를 만들었다.
“고맙다. 너희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튼튼해져 우유를 많이 만들 수 있었단다.”
그리고 우리는 찌꺼기가 되어 시멘트 길바닥으로 떨어졌었다. 소똥이 된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운기에는 다른 소똥들도 가득했다. 반가웠다.
“안녕? 너희들은 어디서 왔니?”
“우린 소 농장에서 왔어. 근데 네 몸 색깔은 시커멓고, 지저분하고, 못생겼니? 우릴 봐! 반질반질하고 색깔도 황금색이고 잘생겼잖아. 그러니까 알아서 저리 좀 비켜.”
깎아놓은 중머리처럼 반질반질한 녀석들이 까불었다.
“내가 있던 곳은 아름다운 푸른 초원이었어. 너희는 그런 곳 가 봤니? 못가 봤지? 우리가 그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 주인 소는 건강하댔어. 그리고 우유를 많이 만들 수 있었대”
우리는 지지 않고 대들었다.
“그곳은 말이야, 친구들도 많았어. 새, 사슴, 온갖 작은 곤충들……”
“그, 그랬니?”
그 반질반질한 녀석들이 부러운 듯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고향은 요란한 기계 소리가 나는 깜깜한 방이었는데. 그리고 우리 주인은 몹시 게을러 누워만 있어 뚱뚱 했어……. 우유도 못 만들고.”
녀석들이 콧대가 한풀 꺾여 풀죽은 듯이 말했다. 그때 하늘에서 새 떼가 원을 그리며 따라왔다. 새 떼에게 물었다.
“이 경운기는 우리를 싣고 어딜 가는 거니?”
“아마 퇴비장으로 갈걸.”
“거기가 뭐 하는 곳인데?”
“글쎄?”
마음이 우울했다. 하늘의 구름도 내 마음을 아는지 따라 와 주었다. 바람은 쌩쌩 경운기를 앞질러 갔다. 그때 내 몸 속이 꼬물꼬물 간지러웠다.
“하하하! 누구니?”
“아, 미안! 나 소똥구리. 추워서 들어 왔어. 괜찮지?”
“깜짝 놀랐잖아. 이왕 들어왔으니 안으로 더 들어와. 따뜻할 거야!”
소똥구리는 내 품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소똥구리를 꼭 안아주었다.
탈 탈탈!
경운기는 탈탈거리며 한참 들판을 달렸다. ‘마을 공동 퇴비장’ 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경운기가 멈추더니 아저씨가 그 차가운 삽으로 우리를 퍼 날랐다. 그곳은 더 퀴퀴한 남새가 진동을 했다.
“이게 뭐야? 더럽게.”
옆에는 음식물 찌꺼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똥 주제에 내가 더럽다고? 너가 더 더럽지.”
“그만해! 다 똑같은 처지에.”
우리가 다투자 소똥구리가 야단을 쳤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웬 날씨가 이렇게 추워! 따듯해야 좋은 거름이 될건데.”
아저씨는 우리가 추울까 봐 비닐로 감싸 주었다. 밤새 새하얀 눈이 내렸다. 비닐 한 겹을 더 덮어 주었다. 비닐 속은 따뜻했다. 겨우내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소똥아, 이번 겨울은 네 덕분에 춥지 않을 것 같다.”
소똥구리가 말했다.
“나도!”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일어나, 봄이야!”
소똥구리가 깨웠다.
“아함! 잘 잤다. 너희도 잘 잤니?”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켜고 옆에 있던 친구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소똥구리들은 부지런히 우리를 이리저리 굴려 자기 몸보다 더 큰 동그란 구슬을 만들었다.
“아, 어지러워!”
“영차! 영차!”
그중 제일 튼튼한 녀석이 제일 크게 만들었다.
“와! 네 몸보다 더 크게 만들었네.”
내가 칭찬하자 소똥구리가 뽐내듯이 가슴을 쑥 내밀었다. 먹성 좋은 그 녀석은 둥글게 만든 우리를 야금야금 잘도 먹었다. 소 배속은 넓어 미끄럼도 탈 수 있어 신났는데 소똥구리 배속은 너무나 좁아 숨도 쉴 수 없었다.
“으아! 숨 막혀! 밖으로 내 보내 줘.”
“조금만 참아. 곧 나가게 될 거야!”
“나는 이제 쓸모없는 거니?”
“아니, 우리 소똥구리들은 네 덕분에 건강한 겨울을 보냈는걸.”
“그럼 아직 쓸모없어지지 않았니?”
“그럼, 너희는 또 필요한 곳이 있을 거야.”
“소똥은 하나도 버릴게 없다고 했는데 정말일까?”
그때 탈 탈탈! 경운기가 와서 우리를 부대에 담아 싣고 또 어디론가 갔다. 이제 쓸모없으니 버려지는 걸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소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허허! 넌 다시 태어날 거란다.’
그때 경운기가 멈춰 섰다.
“어이! 김 영감! 귤 농사 거름이여.”
“아이고, 마침 잘 가져왔구려. 귤나무가 비실비실해서 무공해 퇴비를 할 참이었는데.”
김 영감님은 우리를 나무 밑에 뿌렸다.
“넌 무슨 나문데 그렇게 힘없어 보이니?”
나는 맥이 빠져 힘없이 물었다.
“난, 귤나문데…… 독한 비료에 중독돼서 그래.”
“나도 쓸모없이 버려졌다는 생각에 맥이 탁 풀려있는데.”
“아니야. 넌 버려진 게 아니라 나를 살릴 수 있을 거야.”
“어떻게?”
“나의 전 주인은 도시에서 귀농한 젊은 사람이었는데 귤을 많이 열리게 하려고 독한 비료를 너무 많이 뿌렸어. 화학 비료에 취해 비실비실하자 작년에 우리를 버리고 떠났어. 그리고 지금 김 영감님 할아버지가 이 농장을 헐값에 사서 무공해 거름인 너를 데려 온 거지. 네 덕분에 건강해질 수 있을 거야.”
“아! 소도 나 덕분에 건강해졌다고 했는데. 소똥구리도.”
귤나무는 푸르게 푸르게 하늘 높이 가지를 쑥쑥 뻗고 자랐다. 가을 햇살이 따끈따끈했다. 나는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공기 속에서 향긋한 귤 냄새가 내 코로 들어왔다. 파란 하늘이 온통 노랬다.
“거 봐! 네 덕분에 우리가 튼실한 열매가 될 수 있었어. 소똥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고 했는데 정말이었네.”
노오란 귤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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