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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는 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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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11-07 09:31

박정은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얼마 전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야간근무 전담인 남자 간호사가 아무 연락도 없이 근무에 나타나질 않았다. 전화를 해봐도 받질 않고, 메시지마저 풀이라 남길 수가 없었다. 7년이란 세월을 함께 일해온 간호사인데, 그가 이랬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었다. 무슨 사고를 당했나?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 사는 간호사라 딱히 연락해 볼 곳이 없었다. 그렇게 걱정스런 밤이 지나고 다음 날, 그의 집으로 달려간 직원이 집 밖에 세워진 그의 차를 발견했다. 결국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간 경찰에 의해 방에 누워있는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 후로 그의 부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모두 넋이 나간 채로 근무를 해야만 했다. 도저히 일할 정신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웃는 낯으로 환자를 대하고, 뒤돌아서면 바로 눈물이 났다. 병동 곳곳에 배어 있는 그 간호사의 모습에 일하다 말고 툭하면 울음을 터트리는 동료들의 등을 토닥이며, 때론 복도 귀퉁이에서 서로 기대 울기도 했다. 아직 50대인 간호사였다. 우리가 돌보던 환자들은 여기 그대로 살아있는데, 그토록 건강하던 그가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떠나버릴 수 있는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임종간호를 할 때 우리 병동 간호사들이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었다. ‘환자를 절대 혼자 죽게 하지 말자!’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죽음 자체보다 아주 고통받으며 죽을까 봐, 또는 아무도 없이 혼자 죽게 될까 봐 그걸 더 두려워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의 손을 붙잡은 채로 마지막을 맞는 분들은 보통 평온히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아무도 없이 홀로 죽음을 맞는 분들은 계속 소리를 지르며 두려움을 호소했다. 죽음이 가까워진 분들은 영적인 눈이 뜨여선지 이상한 걸 보곤 했다. “저기 서 있는 검은 것들 좀 쫓아내라.” “내 침대로 올라타는 이 검은 개들 좀 몰아내라.” 등등 호소를 했지만, 우리 눈엔 보이질 않으니 들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게 죽는 분들 옆에 앉아 그들의 손을 잡아 주는 거였다. 그러면 두려웠던 얼굴이 많이 풀어지면서 잠잠해졌다. 물론 바쁜 업무로 그게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근무가 끝난 사람이 남기도 하고, 특히 야간근무 때는 직원 한 명이 그 방을 지키고, 남은 직원들이 더 바쁘게 일했다. 그런데 그 간호사가 막상 떠날 때는 아무도 옆에 있어 주질 못했다. 그래서 그게 더 가슴이 아팠다. 결국 우리의 예상대로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누구라도 옆에 있었으면 그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야간근무를 했을 때 치과 치료를 받아 거의 먹지 못하고 일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랬으면 나한테 죽이라도 좀 끓여달라고 전화하지. 하기야 병원에선 서로를 신뢰하는 좋은 동료였지만 사적으로는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없으니, 그런 부탁도 쉽진 않았겠지. 그러고 보면 그나 나나 옆자리를 쉽게 내주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멀리서 온 그의 친척이 그의 시신을 수습해 갔고, 우린 그가 일할 때 입었던 신발, 유니폼, 청진기, 그리고 우리 가슴에 남은 그에 대한 기억을 모아놓고 성당에서 조촐한 장례식을 치렀다. 난 그의 영정사진 앞에서, ‘이제부터는 누군가의 옆자리로 다가가는 그런 사람으로 살겠다!’ 눈물로 다짐했다.
그렇게 황망한 시간을 보내던 중, 이번엔 또 친한 간호사의 남편 소식이 들려왔다. 암투병을 하던 그가 결국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거였다. 난 꽃을 사 들고 부랴부랴 그 간호사의 집을 찾았다. 앨버타 시골 타운으로 이사와 처음 독감 예방 접종을 그녀에게서 맞았었다. 그걸 계기로 내가 캐나다 간호사가 될 수 있도록 날 열심히 도왔던 사람이 바로 그 간호사였다. 그러니 내겐 아주 소중한 인연이었다. 집에서 임종을 원하는 남편의 바람대로 마지막까지 그 간호사가 혼자서 그를 돌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막바지에 이른 환자를 혼자 돌보는 건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리고 임종간호라면 그녀보단 내가 더 경험이 많았다. 그래서 그날부터 다음날 돌아가시기까지 난 그녀와 함께 그를 돌봤다. 건강할 때는 체면을 챙기느라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살았지만, 결국 마지막 때가 되니 그도 아기가 되어 있었다. 엄마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아기처럼 사회적 거리 따윈 다 던져버리고, 그가 우리의 손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난 최대한 조심스러운 손길로 주사를 주고, 그의 몸을 닦아주고, 기저귀를 벗겨 소변줄을 끼우고, 대변을 닦아내기를 반복했다. 늦은 오후가 되어 도시에 살던 그녀의 자식들이 모여들었을 때, 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밤을 못 넘길 걸 알았기에 그를 위해 기도해주고 나오다 문 앞에서 그 간호사를 꼭 안아줬다. 그러자 나를 끌어안은 채로 그녀가 속삭였다. “이 힘든 순간을 위해 신이 널 내게 보내주었나 봐.”
집을 나왔는데도 눈물이 나와 바로 차를 출발할 수가 없었다. 65세에 퇴직해서 남편과 함께 선교를 떠나겠다고 했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65세에 직장을 퇴직할 줄 알았지, 누가 63세에 인생을 퇴직할 줄 알았겠는가? 인간은 계획을 세우고 신은 웃는다는 말처럼, 우리의 계획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새삼 깨달아지며 헛웃음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를 달리다 보니 높은 언덕 위에 지어진 큰 집이 보였다. 그리고 그 집에서 도로까지 쭉 내려오는 길을 따라 남자들이 아주 웅장해 보이는 담장을 치느라 늦게까지 일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니 어릴 때 했던 ‘땅따먹기 게임’이 떠올랐다. 땅에 네모난 경기장을 그려놓고 그 모서리에 반원을 그려 그 안에서 손가락으로 돌멩이를 튕겨 세 번 만에 다시 반원으로 돌아오면 돌멩이가 지난 모든 길이 내 땅이 되는 게임이었다. 누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는지 열중하느라 해지는 줄도 모른 채 땅에 금을 긋다 보면, 어느새 대문 앞까지 달려 나온 엄마가 날 불렀다.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난 난 쥐고 있던 돌멩이를 내던지며, 그때까지 땅바닥에 열심히 그었던 금을 발로 쓱쓱 문질러 지우고는 황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지금 저 높은 집에 사는 누군가도 땅에 금을 긋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하늘이 부르면 저 금 아무 소용이 없는 건데. 저 높은 담장 안에서 안전하고 행복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게 인생이다. 나와 사람들 사이에 견고한 담을 쌓기보다는 담장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손을 잡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적어도 그렇게 살면 하늘이 날 부를 때 내 손을 잡아주고, 날 아기처럼 돌봐줄 그런 허물없는 사람들이 내 옆에 있지 않을까? 한때는 “난 독고다이야!”라고 외치는 친구들이 참 주관 있고 멋져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인생을 이만큼 살고 보니, 이젠 누군가의 옆에 있어 주고 싶고, 내 옆자리도 사람들에게 내주며 살고 싶다. 땅에 금을 긋느라 바쁜 사람들을 천천히 지나치며, 난 차 안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독고는 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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