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말로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에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강연이나 설교가 있고, 서로 만나서 대화
나누는 것이 대표적이다. 강연이나 설교는 말하는 사람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하지만 대화는
쌍방향이어서 서로 의견을 실시간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목적은 말하는 사람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알도록 전하는 것이다. 대화의 경우 상대방의 생각을 잘 못 알아듣거나
의문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강연이나 설교는 일방적 이어서 듣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 길이 없다. 정보 전달하는 방법이 일방적이건 쌍방향이건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는 속도와 말하는 이가 쓰는 어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속세를 떠나 은둔 생활하지 않는 한 대화 없이 살 순 없다. 아무 부담 없이 자유스러운 대화를
하는가 하면, 너무 신경을 쓰게 되어 부담이 되는 대화도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말의 속도가
빠르면 우선 바로 알아듣기가 쉽지 않고, 사용하는 어휘나 억양이 공격적이면 더더욱
부담스러워서 가능하면 그런 대화는 피하게 된다. 말이 술술 나와 달변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말을 금방 하지 못하고 더듬는 사람도 있다. 말로서 상대편의 마음을 사로잡는 웅변가나
설교자가 있는가 하면, 말하는 것이 어눌해서 상대편 설득은커녕 전하고자 하는 뜻을 애매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말을 유난히 빨리하는 사람 또는 너무 느리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정신을 가다듬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때문에 대화하는데 다소 부담이
된다. 특히 말을 빠르게 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말을 잘 못 알아들어 재차 묻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묻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주 반복되면 즐거운 대화가 될 수 없다. 특히 대화가 아닌
강연 같은 경우 강연자의 말하는 속도에 의해 몇 단어가 이해가 안 되거나 못 알아들으면
청강자로서는 거의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대화하는 데 불편을 느끼거나 강연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생기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사람과의 대화나 강연을 가능하면 피하게 된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달변이 아닌 것은 분명하고, 웅변가도 아니고, 말을 빠르게 하는 편도
아니고 느리다고도 할 수 없는 그저 보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주위에 친구들이나
만나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보통 속도로 대화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나이가 들어가니 나
스스로가 말하는 속도는 느려지고, 청력은 예전 같지 않아 어휘를 놓치는 일이 가끔 일어난다.
반세기 전에 캐나다에 유학하러 와서 공부하는 동안 거의 한인과 접촉 없이 지냈고, 졸업 후
직장을 가진 후에도 일에 매달려 바쁘게 지내느라 한인과의 교류는 거의 없이 지냈다. 다만
주일이 되면 교회 예배에 참석했지만, 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에서 한글 가르치는 교사
임무를 맡아 주로 아이들과 지냈다. 교회나 한인회 행사가 있을 때 시간이 되면 참석했고
개인적인 교류는 거의 없이 지냈다. 따라서 한국말 하는 기회가 많지 않았고 한국어로 된 책이나
신문 기사도 읽은 기억이 없다. 캐나다 생활 6년째에 결혼하게 되어 그때부터 집사람과 한국말을
늘 사용하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교회와 한인회를 통한 한인 들과의 교제가 이뤄지면서
한글 사용하는 기회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직장 일에 매달려 있었기에 한국말로 된 책이나 신문
방송 같은 매체는 거의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 그 외에 한인들과 만나는 기회는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 과학자들의 모임 (The Association of Korean-Canadian Scientist and Engineers
(https://www.akcse.ca/index.php)에 1년에 한 두 차례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전부였다.
은퇴 후 직장에서 사귄 친구들과 가끔 만났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연락이 끊기게 되어
자연히 생활 패턴이 한국 사람 위주로 바뀌게 되었다. 교회 활동이 중심을 이루었고, 고등 또는
대학 동문회 모임으로 한국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가 많아졌다. 소위 말하는 공돌이로 일생을
살아온지라 문학에 문외한인 필자가 지인의 소개로 이곳 밴쿠버에서 매년 제공되는 “한국 문예
창작 대학” 과정을 이수하고 (2017년) 캐나다 한국 문인협회 (Korean Writers Association of
Canada (https://m.cafe.daum.net/KWA-CANADA)회원이 되었다. 늦게나마 문학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고 여러 가지 문학 장르 (genre)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막연하게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수필 장르가 내가 도전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거나 부담 없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았다.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은 구사할 수 있는 어휘이다. 영어권에서 반세기를 살다 보니 못 알아듣는 한국말
어휘가 너무나 많다. 요사이 유행하는 신조어들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시나 수필을 읽다 보면 순
한국말 단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사전을 찾아야 만 이해가 된다. 이 점은 영어도 마찬가지다. 말을
알아 알아듣는 능력은 개인이 구사할 수 있는 어휘로 결정된다. 어휘를 못 알아들으면 소 귀에 경
읽기다.
나이가 들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일상에서 모든 것이 엄청나게 빨라졌다는 사실이다. 지난
4, 5년간 눈부신 발전을 이룬 첨단 과학기술과 첨단 소재의 개발로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정보사회를 지나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기술과 응용이 창출됐고, 그에 따른 엄청난 양의 신조어, 속어, 은어가 태어났다. 요사이
젊은이들의 대화는 속도도 빠르지만, 신조어와 줄임 말을 많이 써서 내용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나이가 드니 말 속도도 느려지고, 청력이 감소하니 알던 어휘도 알아듣기가 어렵다.
아들딸들과 대화하면 그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부담스럽게 느낄까? 나 자신이 못 알아듣기에
대화를 피하는 것처럼 그들도 피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마음이 편해지려면 말이 통하는
동년배끼리 어울리게 되고, 이 점이 세대 차를 이루는 요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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