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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이 눈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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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5-25 08:53

김선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성의껏 지원한 작품 공모에서 작년에 이어 두 번 연속 떨어지고 나니 힘이 좀 빠진다. 글을 쓰는 일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스스로가 인정하고 평가해주어야 계속할 수 있다고 본다. 없는 자신감이라도 끌어올려서 원동력을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꾸 남의 평가가 의식이 된다. 이런 일을 겪으며 내가 쓰는 글에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내가 좋아서 해왔는데 재능의 문제를 다시 꺼내 들게 되고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그저 내 고집에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이 고된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언젠가 이 고독한 노동에 무언가 보상이 있을까.


올해 벚꽃은 100년 만에 가장 빨리 피었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빠른 것이라고 한다. 기온이 많이 올라간 탓에 꽃들의 개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서 서울에서 3월 말에 벚꽃이 개화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집 앞에도 수형이 아름다운 벚나무 한 그루가 올돌하게 자란다. 벚꽃은 언제나 진리지만 올해는 특별히 더 만개한 꽃들의 모습이 그지없이 화려하고 황홀했다. 그 사무치는 화려함을 보고 있자니 ‘벚나무야, 너는 좋겠다’ 라는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이 아이는 이것으로 다 이루었구나. 나무가 애쓰고 살아낸 일 년이라는 시간을 지금 이 순간으로 보답을 받는 듯했다. 봄날의 햇살 아래 가지마다 빼곡하게 달려있는 수많은 꽃들이 찬란한 모습으로 성취를 자랑하고 있었다.


나무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일 년을 살아왔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낸 에너지를 다 끌어 모아 꽃들에게 맘껏 날개를 펴라고 전해주었다. 봄과 여름 동안 무성한 잎을 만들어 광합성이라는 노동에 골몰했고, 그 양분으로 식물을 살찌우고 키웠고, 추운 겨울 동안에는 조용히 내년의 잎을 준비하고 꽃의 원기를 만들어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견뎌온 나무가 봄의 한순간 펼쳐 보이는 장관은 짧지만 충분한 보람의 절정이다. 자신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바라보는 나에게도 큰 축복이다. 나는 왠지 곧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그 절정은 언제일까. 나의 고단함에 대한 보상은 언제일까. 글쓰기는 고된 작업이고 나 같은 수필가에겐 보상도 드물다. 문학상을 받거나 책을 발간할 때가 작으나마 기쁨의 순간일 것이다. 그런 순간이 없이 계속 글을 쓰다 보면 내가 하는 이 힘겹고 고독한 노동은 나의 억지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글은 한 편씩 완성할 때마다 가슴 벅찬 성취감을 주었다. 글쓰기를 해온 십여 년의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글은 자신을 바라보고 반성과 성찰을 하도록 하기 때문에 사람이 성장하도록 하는 양분과 같다. 나이를 먹었다고 자라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글을 쓰는 시간 동안에는 나와 마주해야 하고 그것이 나 자신을 이해하도록 했다.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을 이해하는 눈이 깊어진 것이다. 삶의 질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시선이 넓어졌다. 세상살이는 글쓰기로도 많이 배울 수 있다. 다른 노동보다 많은 가르침을 준다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가르침을 준 그 한순간 한순간의 시간들이 어쩌면 화려한 보상의 시간이었을 지 모른다. 내가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테니까. 나무에게 일 년마다 한 번씩 오는 보상과 달리 나는 수필 한편 씩을 생산해낼 때마다 성취의 기쁨으로 보상의 시간을 가진 것인지 모른다. 벚꽃처럼 화려한 보상은 아닐지라도 분명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순수한 기쁨이었다. 


어쩌면 내가 오해하고 있었을까. 벚나무도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단지 꽃이 만개한 화려한 순간만은 아니라고 생각할 있겠다. 봄날에 새잎을 틔우는 힘겨운 과정과 여름날에 햇빛을 모아 양분을 만들며 줄기를 두텁게 살찌우는 과정들이 하나의 생명을 지탱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기에 벚나무가 살아낸 모든 시간들이 뿌듯한 보람의 시간들이라고 생각할 있다. 새싹이 푸르게 터져 나오는 순간엔 신선하게, 꽃망울을 열었던 순간엔 화려하게, 그렇게 만든 잎을 모두 떨구는 순간엔 겸허하게 빛났을 것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담금질을 해온 순간들이 눈부신 절정의 순간이었는데 단지 알지 못했을 뿐이다. 오늘도 절정의 순간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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