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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한카문학상 으뜸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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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0-03-23 13:21

평론부문 / 이명희


“사색의 미학-그 숲의 비밀” / 신용목 <1>

                                                                                                                

 금서의 불타는 마지막 장에서 사라지는 예언들/꺼져가는 눈빛들 서서히 밤/언제나 추위는 내일로부터 온다 //  문을 열면 거대한 침엽수림으로 솟아오르는 들판 / 아무도 그 위를 걸어본 적 없고// 어둠의 귀를 길게 잡아당긴다/랍비여, 이제 무슨 / 말을 해 주실 건가요? / 그리고 내일의 숲에선 낙엽이 지지 않아 그 말은/너무 화력이 약하구요 // 허락된 문장을 읽기 위하여 말을 배우는 아이들//시간의 두꺼운 책은 언제나 반으로 펼쳐져 있다 //어떤 페이지는 가볍게 넘어가고 어떤 페이지는 절망이 필요할 것 / 한 단어의 무게를 지고 쓰러지는 운명의 // 그러나 지금은 밤. 검은 재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 어둠을 한 장씩 넘긴다. 이 페이지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아. 그 말이 다시 추위에 얼고 / 녹으면, 죽은 예언들이 부스스 흐린 눈을 뜬다 // 문밖에서 거대한 침엽수림으로 솟아오르는 내일 / 누가 저 숲을 불 질러주었으면/허락된 말의 빈 문장으로부터 // 랍비의 두 귀에서 낙엽이 돋아나는 봄으로부터

                              

시인의 다양한 목소리를 열거해 본다. 작가의 열망은 자신의 시를 통해 열외 된 한 사람이라도 위로가 될 만한 창작을 하는 것이고, 세상을 바꾸길 희망하는 정치인은 정의를 위해 온갖 방법으로 부르짖을 것이다. 그들은 추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침묵과 사색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독자들도 사색을 해야 한다. 신용목의 시는 깊고 난해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집의 횟수만큼 수상 경력이 많다 보니 나이에 비해 웬만한 원로 작가의 인지도를 갖고 있다. 순전히 그의 노력이라고 본다. 천재적 능력이라기보다 타고난 노력의 대가다. 거기다 운도 따라주었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이름 없는 시인부터 잠깐 반짝하는 시인들이 어디 한 두 명인가. 그가 쓴 [아무 날의 도시]는 그의 세 번째 시집으로 그 전의 시집들과 분위기가 다르다. 매번 수사법으로 색깔을 냈고, 시어마다 복선을 깔았다. 신의 편애로 언어의 기술을 전수받은 것처럼 분위기를 확 바꾼 느낌이다. 신용목은 여러 권의 시집을 통해 재능이 뛰어난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인간에게 따라오는 덕은 신이 주는 운수 와도 같다. 침엽수림이 우뚝 솟은 곳에서 살고 있어서인지 은유적 표현인 침엽수림에 더욱 애정이 간다. 


정의를 부르짖는 인간은 거대한 침엽수림 들판을 걷고 싶겠지만, 인간은 자기가 사는 곳이 행동반경의 전부라 나머지 세상에 대해선 잘 모른다. 지구의 남쪽에 사는 사람은 북쪽을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 지구의 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북극곰의 생태가 파괴되고 있다는 건 뉴스를 통해서 알 뿐이다. 침엽수가 우거진 곳에서 살다 보면 빨강 주황 노랑 활엽수가 우거진 단풍이 그립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시인의 간절함과 목적을 향해 가는 지도자의 심정을 절묘한 수사법으로 뉘앙스를 잘 살린 시다. 신용목의 시집 [아무 날의 도시]는 카멜레온처럼 옷을 자주 갈아입었다. 


그의 첫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잔잔한 가족사와 주변 이야기를 표현했고. 두 번째 시집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에서는 사회를 향해 소탈한 지적으로 감성을 표현했는데 언어의 화려한 옷을 입지는 않았다. 언어로 기교를 부리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세 번째 시집 [아무 날의 도시]에서는 다양한 색의 언어를 구사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최근의 산문집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는 [아무 날의 도시]에 삽입된 시를 타이틀로 세상살이의 느낌을 더욱 깊게 서술해 놔 독자들을 감동시킨다. 인생의 나이 마흔 여섯 먹은 사람 치고 묵상이 너무 깊다. 시인의 정서는 순박함에서 난해함으로, 난해함에서 소박함으로, 변화되고 있다. 시를 이해하는 길은 시인을 알아가는 길인데 시를 반복해서 읽다 보면 시를 이해하는 혜안이 열리는 걸 알 수 있다. 


“금서의 불타는 마지막 장에서 사라지는 예언들. 꺼져가는 눈빛들. 서서히 밤, 언제나 추위는 내일로부터 온다.” 활자의 홍수로 영향력 없는 책들과 뼈가 있는 글들은 금서가 되어간다. 미래에 나올 따끈따끈한 활자들로 영양가 없는 글들은 추위에 떤다. 그간 활자에 힘을 실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언론이 탄압을 받을 때 김지하 시인은 ‘오적’이란 시에서 정치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독자들을 통쾌하게 했다. 그런데 부패한 사회를 깨고 부셔버릴 만한 언어나 시인들의 외침은 점점 빛을 잃는다. 시인은 힘이 없다. 공권력과 맞서 흔들리지 않을 세력이 없다. 갈수록 내일이 두려운 시대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건들로 마음이 추워지는 시대다. 추운 지역에 빽빽이 솟아 있는 침엽수림을 보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 수가 없다. 동물처럼 나무도 겨울잠을 잔다는 것은 무척 신비스러운 일이다. 시인이 느끼는 위기감처럼 나무는 보고 숲은 볼 수 없으니 사색을 통해 ‘그 숲의 비밀’에 숨겨진 것을 찾아내야 한다. 세상을 바꿔 보겠다고 목청을 돋우던 열사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은 지금 늙고 힘이 없어 조용해진 걸까, 마음이 온화 해져 배신자라고 욕을 얻어먹고 움츠려 있는 걸까. 그들은 내일만 기다리고 있는 걸까. (1연) 


“문을 열면 거대한 침엽수림으로 솟아오르는 들판, 아무도 그 위를 걸어본 적 없고.” 캐나다 중서부에 위치한 로키산맥은 3만 년 전 바다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산이 된 거라 는데, 그 발자취를 걸어 본 사람이 있는가. 일 년의 반이 겨울인 것을 직접 느껴보았는가. 로키산 위로 솟구쳐오른 침엽수림 들판을 걸어 보았는가. 누구도 체험하지 못한 특별함을 시인은 영으로 일깨운다. 자연의 지각변동처럼 세상도 사회도 인간도 지각변동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내 영과 육이 송두리째 바뀐 적이 있었는가. 예수나 부처처럼 인간을 구제하는 길은 화산이 뒤집힐 만한 반동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는 세상의 모험을 갈구할 뿐이다. 


시인도 그 주인공이 되길 희망한다. 시인의 시 [갈대 등본]에서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언젠가는 소금이 설산처럼 일어서던 들/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중략/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시인은 양쪽 어깨에 지렛대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 온 아버지들을 시로 묘사했는데, 이 세상 아버지 들만이 아무도 걸어본 적 없는 심연의 들판을 걸어 본 분들이다. 아버지가 되어 봐야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이다. 그 심오한 경험을 시인이 원하고 있다. (2연) 


“어둠의 귀를 길게 잡아당긴다. 랍비여, 이제 무슨 말을 해주실 건가요? 그리고 내일의 숲에선 낙엽이지지 않아. 그 말은 너무 화력이 약하구요.” 화자는 랍비에게 묻지 말고 체험해야 한다. 약한 화력에 다 타지 못해 남아 있는 낙엽처럼 알 수 없는 숲에 대해서 연구해야 한다. 낙엽과 화력을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해 보는데 첫째는 우리가 접하지 못한 수많은 텍스트를 말한다. 이것은 현대 문학계의 실정이다. 다 타지 못해 남아 있는 도서들. 손가락으로 클릭만 하면 해결되는 디지털시대의 전자책. 작가들의 글. 작가가 랍비한테 간구하는 것은 얼어버린 텍스트가 해빙되길 바라는 것이다. 둘째는 무기전쟁에서 경제전쟁으로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대변하듯이 이 정국을 지혜롭게 해결해 줄 사안이 약하다는 것이다. 랍비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현재로서는 답보 상태다. 시인의 희망사항은 낙엽이 지지 않는 숲이다. 서로 어우러져 낙오되는 자가 없이 공생하는 사회를 말하는 건데 이 말의 화력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를 통해 이해하자. [천년을 묵었다 그러나 여우의 아홉 꼬리도 이무기의 검은 날개도 달지 못했다/천년의 혀는 돌이 되었다 그러므로/塔을 말하는 일은 塔을 세우는 일보다 딱딱하다/중략] 이렇듯 힘없는 자의 설파는 화력이 약하여 하소연으로 읽혀진다. 신용목이 한 말이 기억난다. “내가 세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선택한 것이니 세상의 틀에 맞추려 하지 말고, 나의 틀에 맞추라”는 말. 그렇게 소신껏 세상을 살아서 오늘날 인지도 있는 시인이 되었나 보다. (3연) 


“허락된 문장을 읽기 위하여 말을 배우는 아이들” 시인들은 계속해서 공부해 나가야 한다. 시를 잘 쓰려면 남의 시를 많이 읽어야 한다. 구태의연한 사고는 버리고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경험으로 채워진 시인이어야 되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한다. 살아있는 언어로 다가가야 한다. 좋은 시는 미사 구어의 나열이 아닌 진정성에서 오는 ‘날 것’의 언어와 신선한 언어로 만들어진다. 이 사회에는 달변가가 너무 많다. 지식이 넘쳐 그 지식에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말을 배워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말 못하는 사람은 제 밥도 찾아 먹기 힘든 세상이다. 그래서 입만 벌리고 글만 썼다 하면 누구든지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글과 말재간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중적이고 복선적인 시구라고 생각된다. (4연) 


“시간의 두꺼운 책은 언제나 반으로 펼쳐져 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가치관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운명을 저주한다. 정치인이라면 남은 반의 책장을 어떻게 설계하고 구도하고 설득하여 사기를 칠 것인가 고민할테고, 연애를 한다면 로맨틱한 책장을 열기 위해 남보다 특별하고 신선한 방법으로 남은 반 권의 책장을 넘길 것이다. 시인이라면 두뇌를 풀가동하여 수 천 가지 정보를 저장하고 싶을 것인데, 공감 가는 심정을 이 시를 통해 누려보자.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는 남아 있는 반의 책장을 바라보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공원 벤치에/누워서 바라보면 구름의 수염 같은 나뭇잎들 누워서 바라보면/하얗게 떨어지는 별의 비듬들/중략/어둠 속에서 자라는 환한 그림자를 밤의 기둥에 킁킁 머리로 박으며/방 없는 문을 달고 싶다고/벽 없는 창을 내고 싶다고/이상하게 생각할까 봐/오래 눕지도 못하는 공원 벤치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칠한 조립식 무지개처럼/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별이 진다 깨진 어둠으로 그어 밤은 상처로 벌어지고 여태 오지 않은 것들은 결국 오지 않는다는 걸/알면서도/언제나 그대로인 기다림으로/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너는 환하게 벌어진 밤의 상처를 열고 멀리 떠났으니까/나는 별들의 방울 소리를 따 주머니에 넣었으니까/바람 불 때마다 방울 소리 그러나/나는/비겁하니까] 시인의 심정은 “시간의 두꺼운 책”을 언제쯤 아름답게 다 넘길 것인가에 촉각이 서 있다. 감성을 열어 놓고 언제든 책장을 넘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신용목 시인이다. 어려서부터 심성이 착했던 시인은 사회의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은 심정에서 시를 썼다. 시인은 약한 자들을 위해 남은 책장을 넘길 준비가 되어있다. 부모뿐만 아니라 선후배시인들을 잘 챙기는 따뜻한 시인이라 각박하지 않아 인생의 페이지를 쉽게 넘길 것 같다. (5연)-



 다음주<<평론2>>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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