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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푸른 미니스쿨의 첫 수업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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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9-10-07 11:44

박병호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헬로 에브리원! 마이 네임 이즈 H. 청년기의 황금 같은 5년, 캐나다 각 분야 지도자를 소리 없이 양성하기 위한 이곳에서 함께 뒹굴 제군들의 첫 수업을 맞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17대1, 세 단계의 어려운 관문을 뛰어넘은 호기심 가득한 여러분들을 위한 이 수업은 푯대를 향한 문학적 접근이 아닙니다. 수천 년 전의 수사학적 접근을 현대에 시도하는 실전 훈련입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표현 가능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질문과 궁금증 그리고 생각들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인간의 귀가 가장 편안히 느낄 음성으로 토의하기 위해 잘 경청하고 필요한 것은 메모 바랍니다.” 밴쿠버 웨스트 지역의 중앙, 쾌적한 주택가 늘 푸른 공원에 자리한 아름답고 역사 깊은 미니스쿨 신입생 첫 수업이 교장 선생님의 낭독과 함께 시작되었다.

배우 앨런 릭먼보다 잘 생기고, 그가 연기한 해리포터 스네이프 교수보다 말씨가 부드러우며, 철학과 문학과 사회를 음악으로 융합한 밥 딜런보다 심오해 보이는 H의 느린 저음이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생 15명과 남학생 15명, 모든 신입생을 사로잡았다. 성우처럼 등장인물들의 성대모사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신입생 각자의 뇌에 꽂기 위해 일으켜야 할 다양한 푯대들이 H의 온몸에 누워 깃발을 나풀거리고 있었다. 마치 한 송이 꽃만을 골라야 하는 가난한 소비자를 유혹하는 꽃시장의 호객꾼 같기도 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의 안내, 삶의 질 향상, 문화의 조화, 사상과 감정의 소통, 창작 소양 함양, 진실로 채워진 마술 같은 연설, 심금을 빼앗는 웅변, 정의로운 설득을 위한 언어의 기술 등 여러 깃발 중 자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제목: 푸른 그린란드, 작자: 좋을 박, 연대: 미상. 남아있는 사람들과는 작별 인사도 못 나누었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떠나가 버린 자들과 심령 인사를 나누기 위해 마지막 귀한 시간을 다 써버린 것이 아쉬웠다. 북극권의 아침 햇살이 하얀 미소를 머금고 꽁꽁 얼어붙은 해안가로 기어 올라와 슬픔을 토해냈다. 혹한의 아침 추위가 검푸른 바다를 푸른 순백의 대지로 만들고 있었고, 만나고 왔어야 할 얼굴들이 찬 공기와 함께 뇌에 자리 잡았다. 남서쪽 피오르 넘어 멀리 배핀만을 파고드는 래브라도 해에서 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배가 좀 늦게 왔으면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나르샤수아크의 십 년 세월이 일각고래의 사뿐한 수영처럼 흐르고 아직도 마음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카코르토크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마테호른을 닮은 뾰족한 빙산은 녹아내릴 기세였고, 지붕이 평평한 난지도 하늘공원을 닮은 빙산은 아직 땅에 달라붙어서 그 안에 뽀얀 살결을 감추고 있었다. 바다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아일랜드 모허 절벽 같은 빙벽에는 제주도 해안동굴 같은 피신처도 있고, 웨스트 밴쿠버에서 휘슬러가는 길가 샤넌폭포처럼 바위에 끈끈히 달라붙은 흰 물기둥도 있었다.

그린란드에 푸른 숲을 되살리자는 운동을 처음 주장했던 그 날의 기억을 저 동굴 속에 묻고 싶었다. 공유사회로 가는 첫 훈련이 빙산 조각처럼 떨어져 나가버린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술이 얼어붙어 말을 할 수도 없게 된다. 진짜 푸른 그린란드를 사랑하는 모임의 창립총회가 있던 그 전날 밤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첫 도착지 누크에서 1년간의 삶처럼 호기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평형 저울로 잰 듯한 나의 평정심은 공유 공간의 첨병 같은 두 여인 모두에게 지극한 만족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마음을 비치는 거울이 등장할 때까지 뉴질랜드 마오리족 인사방식 같은 기본 스킨십만을 서로에게 허용하자는 결심을 실천하고 있었다. 방이 하나, ‘덴’으로 불리는 창고 방이 하나뿐인 렌트하우스에서 창문 없는 방에 내가 살고, 햇빛이 잘 드는 큰 방을 둘이서 쓰게 했다. 카코르토크에 심을 나무들이 언젠가 푸른 숲을 이룰 모습을 흰 백지 같은 설원에 그리면서 셋이 함께 한집에서 살았다. 그린란드 상어처럼 5백 년을 살다 딱 5일 앓다가 죽자는 농담은 자주 하면서도 단 한 번의 다툼도 없었다.

K의 표정에서 말과 다른 마음을 보거나, 미소지었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눈망울과 마주쳤을 때는 마음을 읽는 기계가 빨리 탄생하기를 바랐다. 그날 밤 한 잔의 맥주를 마시는 짧은 순간에도 그랬다. 모기를 무서우리만큼 싫어하는 J가 카코르토크에 숲이 들어찬다 해도 모기가 누크에서 보다 더 오래 살 것 같다며 이사하고 싶지 않다고 하자 내가, “그럼 당신은 여기 누크의 집을 지키고 있어요, 모기가 극성인 2주일만.”이라고 농담으로 말했을 때였다. 쉽게 뱉은 농담 후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추가 설명은 없었다. 농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한 지도 몰랐다. 거미 새끼 한 마리 방에 들어와도 마치 강도가 든 것처럼 비명을 질러대던 J였기 때문이다.

내일의 뇌를 위해 그날 밤은 훤한 백야를 가리는 검은 암막 커튼을 드리우고 푹 자자고 하며, 자기 전 고래고기 수육을 안주 삼아 일루리사트 빙산 맥주 한 병을 셋이 함께 들이켰다. 다음 날 아침 늑대 울음 같은 개들의 울부짓는소리에 일찍 잠에서 깨어난 나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두 여인을 위해 소리를 죽이며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4성급 일루리사트 아크틱 호텔의 조식을 흉내 낸 간단한 식사와 여정을 준비했다. 누크 공항으로 가는 노란색 공영 시내버스를 기다리면서  J가  단 2주 만이라도 자기는 혼자 남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K가 J 없이는 자기도 카코르토크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그곳을 초록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내 옆에 도와줄 사람 하나는 필요하다는 단순한 생각에 내가 말했다. “최소한 K는 필요한데.” 그 순간  J가 고개를 세우더니 나와 K를 번갈아 쏘아 보았고, 당황한 K의 애달픈 눈이 내 어찌할 줄 모르는 눈을 바라보았다. 셋 모두가 처음 마주친 광경이었다.

상황은 뱉어진 말을 주워 담을 시간도 주지 않았다. 두어시간에 한 번 오는 버스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J의 한쪽 발이 버스에 오르려다 내려와 곧장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K가 J를 뒤따르려 했으나 내가 더 빨리 그녀의 한쪽 팔목을 움켜잡고 차에 끄집어 올려놓는 바람에 K와 둘이서만 타게 되었다. 5만5천 명의 그린란드 인구 중 겨우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순수혈통 이누이트로 보이는 운전사는 내가 나무를 심을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기 위해 나르사수와크에 간다는 말을 귀뚱으로 알아 들었다. 두 여인이 함께 가려다 한 여인이 돌아가 버린 이유에 대해 호기심을 발동할 뿐이었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약속 시간에 닿을 비행기를 놓치기 때문에 내가 뒤따라가 붙잡아오지 못했다는 말에 진정하는 것 같았다.

나르사수와크 공항에 내려 예약된 16마리 허스키가 이끄는 4인용 개 썰매에 올랐다. 썰매 주인 라세레는 북극에서 내려오는 찬 바람을 앞에서 가르며 파랑, 분홍, 노랑, 보라, 빨강 등 색색으로 칠해진 단독주택 두세 채 크기의 작은 공공건물에 우리를 인도했다. 모임 진행자는 나와 물개 사냥꾼 욘코브, 그리고 K 셋이었다. 이누이트와 바이킹 혼혈로 007 제임스본드 역의 대니얼 크레이그를 닮은 욘코브는 얼음이 녹아 물개 서식지가 줄어들어 직업 전환을 꿈꾸던 차라고 했다.

그는 이어 나무를 심는 직업이 생겨날 것 같아서라고도 하고, 어머니의 핏줄을 찾아 북극 가까이 까나끄에 올라가 물개사냥을 계속할까 하다가 외할머니도 없는 그곳에 자신을 반길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남 쪽 카코르토크로 방향을 틀었다고도 했다. 평생 바다 얼음덩이 위를 돌아다니며 물개를 사냥했다는 그는 일루리사트만 해도 벌써 얼음덩이가 해안까지 오지를 않는다고 말했다. 예전의 1/3에도 못 미치는 물개잡이, 그가 사냥꾼이기를 포기하면 새 인류로 재탄생할 것 같았다.

그린란드에서 숲을 가질 수 있게 되리라는 허황한 그림이 신기한 듯 나무 심는 모임을 구경하기 위해 인근 노인들과 아이를 휠체어에 싣고 온 젊은 엄마들이 한 열 명은 참석했다. 나무를 심은 3년 후에 일부를 카코르토크에서 나르사수아크로 옮겨 심을 거라고 해도 처음부터 나르사수아크에 심으면 안 되냐고 하는 이누이트 할아버지가 있었다. 이미 백 년도 넘은 오래 전 한 식물학자가 몇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는데 이후 그것들이 잘 크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카코르토크에 심는 것이 안전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득하니 이해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 참석자는 기후가 천 년 전 따뜻했던 때로 다시 돌아가며, 나무들의 생장 속도가 빨라질 거라고 믿었다. 회의 도중에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은빛 바다 위 충혈된 고래의 눈을 닮은 이 이누이트 노인이 예언자가 될 것 같다고 욘코브가 말했다. 그 할아버지가 참석자들한테 그린란드가 머지않아 푸른 초목의 땅이 될 거라고 말하며, 감자를 심어 흰색과 보라색의 꽃으로 나라를 뒤덮자는 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독립을 꿈꾸는 자치정부가 국기를 휜색과 빨간색으로 디자인한 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며 언젠가는 흰색 바탕에 보라색으로 바뀔 거라고 예언한다고 했다. 예언이 또 다른 예언들을 낳았다.

복병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설명회가 2시간을 향해 순항하는데 K가 갑자기 자리를 뜬 것이다. 화장실에 간 줄 알았던 그녀가 10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자 내가 나가볼 수밖에 없었다. 철분 결핍증세를 보였던 그녀에게 물개의 간과 지방을 날것으로 먹기를 여러차례 권했지만, 비위가 약한 그녀가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었다. 혹시 대변을 보다 화장실에 쓰러졌나 싶어 자세한 설명도 없이 급히 나오느라 참석자들이 당혹해하는 기분을 문을 나서는 내 후두엽이 느꼈다. 영어를 덴마크어와 이누이트어로 통역하던 욘코브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하는 듯했다.

화장실을 뒤져도 K는 없었고 휴대폰도 받지 않았다. 벨 소리가 회의장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휴대폰은 들고 나간 것 같았다. 가방은 안에 두고 나간 것을 생각하니 멀리 가지는 않은 것 같다고 눈이 한자나 쌓인 언덕길을 뛰면서 생각했다. 강연장에서 그녀가 지루했을까, 임원중 하나라는 당당함이 방치되어 서운했을까, 이누이트 노인들과 같이 맨 앞 열에 앉아있는 게 거북했을까, 설명회 중 그녀가 휴대폰 문자를 너무 자주 확인하곤 했던 것이 쑥스러웠을까.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총회 마무리는 욘코브가 잘하고 있겠지. 대학 학벌 없이도 3개 언어를 구사할 만큼 똑똑한 욘코브에 기대고 있었다. 긴 백야로 들어서며 체감 온도는 섭씨 영하 25도를 넘나드는 것 같았다. 코 부비강이 매워 오고 이마의 땀이 눈썹에 떨어져 작은 고드름이 열렸다. 나무를 심을 곳을 욘코브에게 더 자세히 알려주지 못한 것이 걸렸다. 그러나 이방인인 나보다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더 잘할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차분히 계곡을 살폈다. 추위를 잘 안 타지만 외투를 안에 두고 나간 K가 바람 부는 언덕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30분 넘게 찾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고 있었다. 십여 분은 달려야 다다를 것 같은 더 높은 곳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기로 했다. 땀이 날까 봐 더 뛸 수 없었다. 원색 아니면 파스텔톤으로 듬성듬성 건물들이 밝게 들어서 건물 외벽에 숨어 있을 만한 곳은 없었다. 소변이 마려웠지만, 고드름이 땅에 붙어버릴 것 같아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언덕에 올라보니 사방팔방 어디에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터벅터벅 내려오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순간적으로 30만 평 크기의 숲 만들기가 시작되었다는 환청을 들었다.

여보세요? 라고 하니 욘코브의 더듬거리는 영어 음성이 들려왔다. K를 찾았으니 걱정 말고 오라는 거였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날듯 달려 K와 만났으나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스스로 자초지종을 말해주기를 바랐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욘코브가 대신 묻고자 했으나 내가 내버려 두라는 뜻의 눈총을 보냈다. 공항으로 데려갈 썰매가 도착했고 욘코브와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그날 총회의 결실은 나무심기회원에 관심 있는 그 미래 예언가 노인의 임원진 합류였다.  

썰매에서도 비행기에서도 K와 나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누크 공항에 도착해서 돌아갈 공영버스를 기다리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오늘 별다른 일은 아니었지요?” K와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이 영어 선생님과 학생이었던 관계로 나는 그녀를 계속 ‘선생님’이라고 불러왔고 가끔은 ‘선생님이자 친구 K’라고 불렀다. 넷이 함께 캐나다에서 그린란드로 올 때 풍랑의 바다를 작은 배를 타고도 무사히 잘 도착하고는 상륙하다 말고 혼자 되돌아가다 죽은 K의 남편이 떠올랐다. 거대한 검은 풍랑에 휩싸인 것 같은 소식 이후 1년 가까이 우울 증세를 보였던 그녀를 J와 내가 K를 웃기는 역할 연기로 기분전환을 잘 시키고 있었다.

말이 없던 K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갈 수 없으니 모자 보호시설에 데려다 달라고.. J와 K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걱정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J가 집에서 나가라고 했나요?” 나의 조심스러운 질문 뒤에도 K의 침묵은 계속되었고, 그 적막을 뚫고 공영버스가 빙판길을 개 썰매처럼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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