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찬밥과 화장실 청소

송무석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8-14 17:15

송무석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문정희 시인의 <찬밥>을 읽다 어머니와 아내의 생활을 다시 생각했다. 엄마가 찬밥을 혼자 드시던 일을 떠올리면서 엄마를 향한 그리움에 찬밥을 먹는다는 시다. 밥을 꼭 알맞은 만큼만 지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식구들이 먹을 밥이 부족하게 지을 수도 없으니 보통 조금은 밥이 남게 된다. 그 남은 밥은 보온밥통도 없던 시절에는 찬밥이 되게 마련이다. 그 찬밥은 누가 먹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엄마, 가정주부의 차지였다. 나는 그런 '찬밥을 누가 먹는가' 하는 이야기를 문정희 시인처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여성의 희생과 가정 내 역학 구조에서 생각해 보고 싶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남성이 가계의 주 소득원이자 거의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밖에서 돈을 벌어 오는 남편을 위해 주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따스한 밥을 지었다. 저녁에도 물론 넉넉지 않은 살림에 지혜를 짜내어 반찬을 준비하고 김이 폴폴 나는 밥을 지어 식구들을 먹였다. 지금은 우리 사회도 맞벌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 여성의 소득은 다른 사회처럼 남성에 비교해 적다. 그리고 막벌이하는 집이어도 우리나라는 남성의 가사 참여가 잘 사는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 남편을 위하는 아내의 마음,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주부들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식구들에게 맛나고 좋은 음식을 먼저 떠서 준다. 그래서 막상 요리하는 주부는 남은 음식을 먹게 된다. 이러니 찬밥도 주로 주부가 먹게 된다.
나는 아내가 이러는 것이 싫어서 결혼 초부터 자주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찬밥을 가져다 먹었다.이를 막기 위해 아내는 찬밥을 종종 숨기고.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서는 종종 찬밥 보물찾기를 하게 된다.

 왜 여자들만, 특히 주부만 찬밥을 먹을까? 물론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 앞서서 주부가 스스로 그렇게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뿌리 깊은 우리 사회의 남녀 차별적 사고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어려서부터 남자를 받드는 사회 속에 길들어진 것이다. 빵과는 달리 밥은 따스해야 맛이 더 좋은데 전자레인지에 간단히 데워 먹을 수도 없던 시절 찬밥은 누구도 가능하면 먹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주부의 희생을 보여주는 다른 예로 나는 화장실 청소를 들고 싶다. 아직도 많은 가정에서 청소는 주로 여자 그러니까 주부가 한다. 더군다나 화장실 청소라면 남자분이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 것이다. 집 안 청소라면 아내를 밀치고 하던 나지만 화장실 청소는 30년 가까운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오랫동안 주로 아내의 일이었다. 그러다 수년 전 어느 날 내가 더럽다고 여기는 일을 왜 아내가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면서 그 이후론 되도록 화장실 청소도 내가 한다. 또, 화장실 청소용 세제가 여성 호흡기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기사를 본 이후 화장실 청소를 더 열심히 내가 하려 한다.이렇게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나는 징그럽다고 못 하는(?) 고기나 생선 다루는 일을 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덜해진다.

 찬밥을 먹는 일이나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일이나 우리 어머니나 아내들이 도맡아 해 왔다는 것은 그분들의 가족을 위한 희생을 보여준다. 하지만, 반면에 왜 누구나 먹기 싫고 하기 싫은 걸 여자분들만 했는지 숙고해 보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 우위적 사고와 어느 전통사회에서나 뚜렷했던 성 역할 구분에 그 근본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틀을 깨고 어머니와 아내들에게 따스하고 맛있는 밥을 먹고, 불쾌한 화장실 청소를 안 할 기회를 줄 사람은 바로 생각을 바꾸는 남편, 남자들일 수밖에 없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고목의 오후 2025.12.26 (금)
계절은 오면서 가고시절도 오듯이 가고잠깐 꿈속을 다니니고목이 되었네어린나무의여린 꿈은 아직 푸르른데검은 형상의 껍질이언제 온몸을 감싸게 되었나그래도 봄은 푸른 싹으로 다가오고여름에는 먼 철새가 찾아온다검게 남은 세월을 잘 벗겨서망각의 새들에게 주어야지아직 시려운 하얀 몸이 드러나면빛나는 푸른 잎을 입을 수 있을 거야가지에는 지중해 복숭아꽃이 피어나고가슴을 닮은 푸른 하늘을 향해 키도 자라겠지멀어져간 처음 사랑도...
김석봉
미국에서 아들 내외가 오랜만에 다녀갔다. 딸이 며칠 휴가를 받아 우리 네 식구는 모처럼 함께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록키 포인트 공원에 가서 바다를 배경으로 가족사진도 찍고 일식집에 들러 생선 초밥과 회도 먹었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일상일수도 있는 일들을 우리는 특별한 날이나 된 양 참 어렵게 했다. 그다음 날도 우리는 가족여행을 온 것처럼 가스타운(Gastown), 밴쿠버 다운타운, 스탠리 팍, 그리고 UBC 박물관까지 관광을 다녔다. 오가는 차...
심현숙
열쇠 없는 집 2025.12.26 (금)
  사람이 일생 동안 집을 몇 채나 갖고 사는가를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에 따라 많고 적을 수도 있고 평생 동안 단 한 채도 가지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죄송하게도 우리는 아파트에 살면서 농장에 딸린 농막 한 채를 덤으로 가지고 산다.아파트에서 승용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농막은 산날망*에 거미집처럼 불어 있어 집이랄 것도 없으나 눈비를 피할 수 있고 소박하게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또한 지대가 높아서 아담한...
반숙자
그런 사람 2025.12.26 (금)
우리는 그런 사람하늘이 지펴 논 그런 사람내일이 없는 세상을 안고오늘을 건너가는 그런 사람가 보지 못한 너른 세상텅 빈 세월의 새벽을 두드리며서툰 걸음을 시작하는 사람우리는 사는 동안누군가의 빛누군가의 가슴누군가의 눈물누군가의 사랑으로여기까지 온 그런 사람이 땅에 선물처럼 내려와그리움에 떠돌다 외로움에 내려가슴을 나눠 먹고아침을 나눠 먹는서로의 사람으로 젖고 젖어가는 그런 사람
백혜순
한 해 한 해 쌓이는 시간 속에작은 웃음과 눈물이 모여행복이라는 완성을 빚어내네.마지막 달의 고요한 빛 속에서나는 걸어온 길을 되새기고오늘을 감사로 묶어두네.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새로운 희망의 문을 열며나는 다시 시작을 노래하네.바람은 속삭인다------"너의 걸음은 충분히 아름답다."별빛은 응답한다------"내일은 더 환하게 빛날 것이다".*독자에게 전하는 말*시간은 우리에게 끝과 시작을 동시에 선물합니다한 해의 마지막은 또 다른...
이봉란
“그래서 수어를 배웠나요?” 이 질문의 뜻을 바로 이해했다. 한두 장 읽고 말 줄 알았는데 다 읽게 되었다며, 내가 쓴 문장대로 살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책에는 청각 장애인 부부를 만나 썼던 <손의 언어>라는 글이 있다. 그가 장애인 지원기관 수장이라 그 글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배우고 싶은 언어로 수어를 소개했으니 내가 정말 수어를 배웠는지 묻는 것이다.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 이성적인 생각을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김한나
 햇살이 따사롭게 쏟아지는 봄날의 아침이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내 피부를 건드리자, 무언가를 참을 수 없어 무작정 집을 나섰다. 동네라도 한 바퀴 돌면서 바람이나 쐬자면서. 빨강, 분홍, 다홍, 노랑 색색의 로드덴드론과 봄 꽃들이 한창 피어나는 골목길을 걷는 것은 늘 내게 즐거움을 준다. 내가 보태준 것도 없는데, 저들은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와서 그 화사한 자태로 내 마음을 마구 흔든다.  동네...
지연옥
채식주의자 2025.12.23 (화)
영어 수업을 마치고 점심으로 갈비탕을 먹는데 일행 중 한 명이 고기는 싫다며 된장국을 시킨다  갈비탕 한 점씩 한 점씩 떼어먹다가 문득 세상을 뒤흔들었던 한강의 ' 채식주의자' 가 떠오른다  ''담백한 제목인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내용은 참으로 충격이었어'' "맞아, 그러니까 노벨문학상을 받았겠지" 붉은빛 당근, 초록색 채소를 씹으며조금씩 순화되는 세상살이를...
유우영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