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

찬밥과 화장실 청소

송무석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8-14 17:15

송무석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문정희 시인의 <찬밥>을 읽다 어머니와 아내의 생활을 다시 생각했다. 엄마가 찬밥을 혼자 드시던 일을 떠올리면서 엄마를 향한 그리움에 찬밥을 먹는다는 시다. 밥을 꼭 알맞은 만큼만 지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식구들이 먹을 밥이 부족하게 지을 수도 없으니 보통 조금은 밥이 남게 된다. 그 남은 밥은 보온밥통도 없던 시절에는 찬밥이 되게 마련이다. 그 찬밥은 누가 먹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엄마, 가정주부의 차지였다. 나는 그런 '찬밥을 누가 먹는가' 하는 이야기를 문정희 시인처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여성의 희생과 가정 내 역학 구조에서 생각해 보고 싶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남성이 가계의 주 소득원이자 거의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밖에서 돈을 벌어 오는 남편을 위해 주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따스한 밥을 지었다. 저녁에도 물론 넉넉지 않은 살림에 지혜를 짜내어 반찬을 준비하고 김이 폴폴 나는 밥을 지어 식구들을 먹였다. 지금은 우리 사회도 맞벌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 여성의 소득은 다른 사회처럼 남성에 비교해 적다. 그리고 막벌이하는 집이어도 우리나라는 남성의 가사 참여가 잘 사는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 남편을 위하는 아내의 마음,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주부들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식구들에게 맛나고 좋은 음식을 먼저 떠서 준다. 그래서 막상 요리하는 주부는 남은 음식을 먹게 된다. 이러니 찬밥도 주로 주부가 먹게 된다.
나는 아내가 이러는 것이 싫어서 결혼 초부터 자주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찬밥을 가져다 먹었다.이를 막기 위해 아내는 찬밥을 종종 숨기고.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서는 종종 찬밥 보물찾기를 하게 된다.

 왜 여자들만, 특히 주부만 찬밥을 먹을까? 물론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 앞서서 주부가 스스로 그렇게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뿌리 깊은 우리 사회의 남녀 차별적 사고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어려서부터 남자를 받드는 사회 속에 길들어진 것이다. 빵과는 달리 밥은 따스해야 맛이 더 좋은데 전자레인지에 간단히 데워 먹을 수도 없던 시절 찬밥은 누구도 가능하면 먹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주부의 희생을 보여주는 다른 예로 나는 화장실 청소를 들고 싶다. 아직도 많은 가정에서 청소는 주로 여자 그러니까 주부가 한다. 더군다나 화장실 청소라면 남자분이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 것이다. 집 안 청소라면 아내를 밀치고 하던 나지만 화장실 청소는 30년 가까운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오랫동안 주로 아내의 일이었다. 그러다 수년 전 어느 날 내가 더럽다고 여기는 일을 왜 아내가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면서 그 이후론 되도록 화장실 청소도 내가 한다. 또, 화장실 청소용 세제가 여성 호흡기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기사를 본 이후 화장실 청소를 더 열심히 내가 하려 한다.이렇게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나는 징그럽다고 못 하는(?) 고기나 생선 다루는 일을 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덜해진다.

 찬밥을 먹는 일이나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일이나 우리 어머니나 아내들이 도맡아 해 왔다는 것은 그분들의 가족을 위한 희생을 보여준다. 하지만, 반면에 왜 누구나 먹기 싫고 하기 싫은 걸 여자분들만 했는지 숙고해 보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 우위적 사고와 어느 전통사회에서나 뚜렷했던 성 역할 구분에 그 근본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틀을 깨고 어머니와 아내들에게 따스하고 맛있는 밥을 먹고, 불쾌한 화장실 청소를 안 할 기회를 줄 사람은 바로 생각을 바꾸는 남편, 남자들일 수밖에 없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동쪽의 거리 2026.01.23 (금)
독도가앞서 밝아올 때울릉도의 등줄기인왕산의 오래된 벽봉황산의 그림자남한산성의 돌땅끝마을의 끝내 닿지 않는 손성산일출봉새천년 해안 샛바람길의 비린 새벽정동진. 호미곶사람들은산과 바다도시의 모서리마다각자의 동쪽을 세운다나는이름 하나 들고서 있었다간절곶아주 오래전간절함이 먼저 와우리 사이에 서 있었고말은해보다 늦었다빛이 오기 전 오빠는부르지 않아도 이미동쪽에 있었다가장 얇은 그 새벽나에게 동쪽은한 사람 서있던...
김회자
한글은 계시였다 2026.01.23 (금)
세계가 한국을 바라본다. Kpop의 박동, 드라마의 서사, 영화의 감정, 음식의 향기까지. 그러나 그 모든 ‘K’의 중심에는 조용히 빛나는 한글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래 살고 나서야 비로소 깊이 깨닫는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도, 기술적 발명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된 정신이 글자의 옷을 입고 세상에 다시 나타난 계시였다.우리 민족의 역사는 단군의 건국 이념에서 시작된다. 홍익인간—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라. 이 네 글자는 한 나라의 뿌리가...
심정석
 제목은 거창하게 대화의 기술이라고 했지만, 필자는 언어학자도 아니고 대화 전문가도 아니다. 다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과 대화하며 느낀 점들을 개인적으로 피력해 보고자 한다.  사람이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뜻이다.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고민도 털어놓고 싶고 이런저런 상담도 하고 싶지만, 잘 들어주지 않는 사람과는 말을 섞기도 꺼려진다. 남의 말을...
이현재
태풍 2026.01.23 (금)
난 바다 어디쯤외눈박이 눈을 하고달려오는 바람 하나거침없는 생이 부럽다 나 그렇게뜨겁게 산 적이 있었던가그렇게 겁 없이사랑한 적 있었던가 젖은 머리 풀고 질주하는구름기둥 끝에 매달려짧고 굵게 살다 죽는비결 한 수배워야 할까 보다
정금자
갓 지은 흰 쌀밥 같은삼백육십오 개의 이름 없는 하루 해와 달 경계에서 호명을 기다린다 아직 목울대에 후회가 걸려있는데때 묻은 손이다시 하루를 빚는다 덜 굳어 찌그러져도금이 번져 부스러져도 울음이 새지 않도록웃음 한 벌 문설주에 걸어 두고 욕심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먼저 박수를 내밀어야지 하루를 닫으며그래도 괜찮았다고 끄덕이게오늘의 이름 아래'사람' 쪽에 발 디딘다 응달로 찾아드는 얇은...
임현숙
  2025년 한 해 동안 읽은 책을 돌이켜 보니 온라인까지 합해서 모두 37권이다.   나이가 깊어 가니 읽는 속도도 느려지고, 읽으며 독해력이 떨어지니 자연 반복해서 읽게 되니 읽고 싶은 책 욕심은 많으면서도 읽는 양은 빈약한 셈이다.   누가 그랬던가, 늙어서 시간 여유가 많아지면 책이나 실컷 읽어야겠다고 하면서 젊어서 책 읽기를 더디게 한다. 나이 먹어서 뭘 하겠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미룸이다. 길지 않은 인생에서 해야 할...
한힘 심현섭
  어느 달 밝은 밤이다 해바라기 같은 둥근 달이 담장을 넘어 마당을 지나 툇마루로 올라오더니 방안을 기웃거린다. 방 안엔 한복에 한 뼘이나 되는 긴 수염을 늘어 틀이고 머리에서 눈썹까지 하얀 탈을 뒤집어쓴 칠성 할 배가 신선처럼 앉아 내일 약초 캐러 갈 도구들을 챙기고 있었다. 좋은 약재를 구하면 횡재를 하는 날이지만 헛 빵을 치는 날엔 다리 품만 파는 날이다. 밖에는 밤이 깊어 갈수록 바람소리가 사나워졌다.이때다 어디선가 한참 먼...
안오상
자식의 자식 2026.01.12 (월)
등에서 잠든 너를 내려놓지 않는 건내 어머니 골수를 먹고 자란 기억 때문무릎이 시큰거리다콧등까지 싸해지는 따스한 대물림 어제와 오늘도 혼동하는 너에게내일 다시 하자는 약속,울음을 삼키는 너의 눈을 피해주었던 걸 뺏는 건 참으로 곤란하지 동네 애들 다 데려간 피리 부는 아저씨집안 일 다 해도 미움 받는 신데렐라‘왜’냐고 묻는 삼십개월 너에게‘사람‘에 대해 무슨 설명 하리오 잎을 다 떨군 나무에 기댄 너의 숨소리찬 바람...
윤미숙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