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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길들임

이인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12-26 17:23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 ‘길들인다’는 게 뭐지?”

“그건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쉽게 잊혀지고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관계를 만든다고?”

“그래.” 여우가 말했다.

”넌 아직은 나에게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도 날 필요로 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꽃 한 송이가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인 걸 거야.”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는 것에 대해 말하는 문장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질 것 같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고 노력했었고 실패도 맛보았으니 말이다.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지나갈수록 난 더 행복해 질 거야. 4시가 되면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 못하게 될 거야.”

이 문장에 이를 즈음 내 마음은 온통 여우가 말한 그 ‘길들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이 나는 지 모르겠어? 아마 넌 다섯 살 살쯤이었고 오늘처럼 코끝에 싸한 추위가 다가왔지만 우린 개의치 않고 걷고 있었지.  바닥에 푸른 풀은 빨강, 노랑 물이 든 나뭇잎에 온통 뒤덮여 빼꼼이 얼굴만 내밀며 우릴 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 늘 그랬던 것처럼 그날도 우린 손을 잡고 기분 좋게 마른 잎을 깡총 뛰어 눌러도 보고, 소리도 듣고……

그때 나는 네게 말했어. 나뭇잎이 네게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라고, 또 바람이 나뭇잎을 가르며 무슨 말을 하고 지나 가는지 들어 보라고 했지. 그때 너는 눈을 반짝거리며 나뭇잎과 바람이 하는 이야기를 내게 말해 주었고, 나는 너의 보석 같은 언어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조심조심 주워서 기록했어. 그게 너의 첫 번 째 시(詩)가 되었지. 그 후에도 너는 자연과 사물과 그것을 주신 하나님과 늘 대화하며 예쁘게 자라주었어.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넌 내게 너무 소중하고 고마운 딸이야.

또 생각나니?  네가 8학년쯤 되었을 때야.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너는 교정에서 제일 먼저 뛰어 나와 차 속에서 마구 흐느껴 울었지. 우는 너를 보며 엄마로서, 어떤 이유도 물을 수가 없었어.  난 무엇이 힘든 지를 아니까,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어서 ‘기도해 줄게’ 라고 말할 수 밖에는.  나는 또 네게 말했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할 때 하늘을 바라보자고, 하나님을 바라 볼 수 밖에 없다고, 너는 울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지.  너의 어깨를 안으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그 날들이 지금도 눈에 선해.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어. 그 날이 지나고도 너는 계속 울어야 했고, 나는 또 같은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지. 나는 무언가 네게 계속 미안했어. 이민 온 것도 미안했고……, 그래도, 네게 정말 고마웠던 것은 내가 하는 모든 말에 대부분 너는 수긍을 잘 해 주었고,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이었어. 유독 네가 힘들어 보이는 날엔 너는 성경을 읽고, 글을 쓰며 하나님과 긴 밤을 새우는 것도 보았지. 그 때 나는 너의 미세한 감정까지도 느낄 수가 있었어. 방문 밖에서도 말이지. 그럴 때면 나는 어김없이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어.
 
그러면서 너는 차츰 내게 길들여져 갔고, 너와 나는 하나님께 길들여져 가고 있었지.       
그리고 11학년 중간학기였나?  교회창립기념일을 앞두고 난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었어. 아마 새벽이었을 거야.  SAT성적이 발표되는 날이었지. 나는 그 날을 결코 잊을 수가 없어. 하나님께서 너와 내게 상상도 못한 큰 선물을 주셨어. 물론 나는 알아. 네가 얼마나 시간을 계획적으로 잘 사용하고, 많은 책을 읽어 내고, 많은 에세이를 쓰고 또 썼는지를. 나는 인정해. 너의 끝도 없는 노력을.  우린 에세이를 쓰기 위해 너의 길지 않은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 평범했던 일상을 사건화 시켜 보기도 하고, 너의 인생의 걸림돌이라 말할 수 있을 만한 사건을 찾아 어떻게 해결 했는지 계속 대화를 나누었지. 그때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어. 하나님께서 길지 않은 너의 인생에 얼마나 많이 개입하셨는지를, 또 합력하여 베푸신 선을. 그 시간을 기억하며 너는 정말 기쁜 표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기도 했어. 그러면서 에세이는 완성되어 갔고, 그것을 주님이 아시고 상을 주시다니, 참 멋진 일이지?  ‘어린 왕자’에 이런 말이 나오잖아.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고난을 이겨 낸 후 찾은 발견의 기쁨을 믿게 되었어. 그때 우린 한껏 들떠 기쁘고 행복했어.

그렇지만 그 기쁨이 그렇게 오래 가진 않았어.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  우물을 찾았다고 다 해결 된 것은 아니었어. 더위에 시달렸던 갈증은 잠시 풀렸을지라도 우린 아직도 알 수 없는 길고 긴 사막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어. 때론 내 앞에 펼쳐질 세상 너무 길고 멀고 험해 보여. 우린 그때 쉽게 좌절하지. 차라리 우물이 없었던 게 낫지 않았을까 하며. 난 잠시 멈추고 생각해 봤어. 나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기다릴 수도, 동의할 수도 없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난 하나님의 계획하곤 무관했던 것 같아. 너에 대한 나의 계획, 나의 목표가 너무 강해서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어.

아무리 생각해도 난 틀리지 않았고, 이건 최선이야, 잘 못된 것은 하나도 없어 하며 내 마음은 굳어져 가고 있었지. 그러면서 네겐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계속 종용했고 너를 아프게 하고 그랬어. 미안해.  너를 기다려 주지 못하고, 너의 성장을 지켜 주지 못하고, 내가 생각한 너의 완성된 모습만을 꿈꾸며 나는 아주 성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지. 평소 ‘온유’하고자 했던 나의 모든 기도가 한 순간에 사라졌어. 내가 가진 것은 온유가 아닌 잠시 참는 것에 불과했지. 온유는 길들여진다는 것을, 길들여 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책임을 지며 순종하는 것인데, 그 때 나는 엄마라는 책임만을 생각하기에 급급했어. 온유는 곧 잘 길들여진 순종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는데…… .

그랬지. 우린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삐걱거리는 대화를 쳇바퀴 돌리 듯 나누었어. 난  너의 어린 시절 네게 소중하게 길들여 주었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분노하며 힘들어 했어. 물론 너도 힘들었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우리한테 이런 시간이 정말 필요했는데. 그러나 나는 이 어렵고 힘겨운 일상을 도저히 참아 낼 도리가 전혀 없었고, 인내심의 한계는 이미 끝을 치닫고 있었지. 내 앞에 있는 상황만 보여서 어떤 답도 찾을 수가 없었어. 반면에 너는 점점 강자가 되어 갔고, 너와의 모든 선이 끊어졌을 때,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어. 그때 너의 모습이 보였어. 연약하고 순전한 아이, 주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 너를 보았어.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를 그때 하나님께 고백했어. 난 이제야 정말 우물을 찾은 거야.  그래,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그때 너는 나의 딸로 돌아왔어. 네가 온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제 바로 본 것이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신 주님이 감사하고 고마웠어.

어제 전화선 너머의 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로 길들여졌던 네 목소리가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어.  겨울,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시간, 너는 또 세상의 여러 곳을 여행하며 너 자신과 우리를 치유하는 글을 쓰며,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시간들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옛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겠지? 그 곳에서 분명 너의 아름다운 길들임이 계속 되기를 기대할게.  

비가 온다.  Grandville Island…..., 어려서부터 네가 자주 와서 글을 쓰던 곳, 난 지금 여기에 와 있어.  비가 물결을 가볍게 때려서 또 물결을 일으키고, 계속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이 너처럼 느껴져서 왠지 오늘은 네가 더 보고 싶고, 또 보고 싶구나.  저 물결처럼 너도 너의 지경을 넓히는 순간이겠지. 이제 너는 내 품을 떠나 내게 길들여졌던 시간만큼,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배우고, 나누며, 아름답고 멋진 그들에게 길들여 지는 중이고 또 누군가를 길들이고 그래야겠지. 너도 이제 스무 살이 되어가니까.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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