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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ld I Have This Dance For The Rest Of My Life?

김덕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6-26 13:18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한국전쟁이 끝나고 재건 운동이 한창이던 50년대 말, 한 소년의 고향에서는 다양한 춤사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뒷산 마루에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 진달래 꽃은 빨간 꽃잎을 연신 떨며 정열적인 탱고의 유혹을 담아내고, 기웃기웃 조용히 올라오던 강아지 풀의 뽀송뽀송한 몸놀림은 지나가던 강아지의 마음까지도 간질이는 듯 했다. 겨우내 깊이 파여 물 고인 웅덩이에는 빙글빙글 올챙이가 끝 없는 부채춤을 추고, 그 수면 위에선 엿장수가 사뿐사뿐 몸도 가볍게 수중발레에 한창이다. 강남 갔다 돌아온 제비 한 쌍 일까? 마치 경주라도 하듯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모양은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지듯 호흡을 맞추는 피겨스케이팅 듀엣 같다. 장단이라도 맞추듯 그칠 줄 모르는 종달새의 우지짐은 지치지 않고 춤을 추게 하는 마력의 앙상블 같다.


파란 하늘 솜처럼 펼쳐놓은 뭉게구름 속에서도, 푸른 들녘 불타는 열정으로 하루를 달리다가 이제 사라져 가는 태양의 뒷모습에서도, 융단 위에 수놓은 수묵화처럼 항상 평화로운 미소를 머금은 뒷산 마루에서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춤은 계속 되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오는 구불구불한 신작로 위에서 조차 법무를 즐기듯 하늘하늘 올라가는 아지랑이 춤을 바라보던 소년은 언제나 신바람이 났지만, 정작 발을 내딛고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기려 할 때는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곤 했다. 꿈 조차 가져볼 기회도 없이 해마다 되풀이 되는 잔인한 생존의 현장, 가난한 시골은 멋있게 춤을 추기에는 마땅치 않는 곳이라고 생각 되었는가 보다. 결국 소년은 철이 들 때쯤 그 곳을 떠났다.


그래도 고향에서의 정취가 감성에 도움이 된 것일까! 이제 청년이 된 그 소년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보여지는 것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게 표현할 줄 아는 기술을 얻게 되었다. 문학이라는 춤을 추게 된 것이다. 그의 몸놀림은 화려했다. 마치 희로애락을 창조라도 하듯, 슬픔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즐거움조차 슬프게 해석하는 모습은 스스로도 만족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삶과 죽음조차도 그의 춤 속에서는 다른 것이 아니었고, 한 사람의 육체와 영혼은 하나가 아닌 완전한 남이 되기도 했다. 문학은 삶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동인이기도 하지만, 때론 현실을 부정하는 공허함 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리기엔 청년의 열정은 아직도 뜨겁기만 했다.   


청년은 그 멋진 춤을 함께 춰 줄 파트너가 필요했다. 중학교 국어 선생님! 떠나온 고향 들녘에 비하면 춤 판을 벌이기에 얼마나 훌륭한 장소였을까! 청년은 이제 자신만의 춤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가르치고, 느끼게 하고, 본을 보이고, 화도 내어보고, 함께 울기도 웃기도 해가면서 자신의 춤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꿈이 생기면 자신의 것을 포기할 용기도 생기고, 희생도 불사하는 마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청년은 한 이 년 정도를 쉬지 않고 춤을 추었다. 춤은 혼자 출 수 없는 것, 때로는 그 열정의 몸 놀림에 마음을 빼앗기기는 예쁜 제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파트너들은 아쉽게도 자기 나름의 춤들을 구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이 앞 선 탓이었을까? 아니면 열정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그 청년은 자기 춤을 완성하기엔 학교 울타리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어쩌면 파트너보다는 환경이 더 큰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열악했던 한국의 공교육 현장은 밖에서 보던 것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른 동료 선생님들의 비전도 자신의 것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간혹 몇몇 학생들은 한 두 곡의 춤을 함께 즐기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직 유행에만 반응하는 춤사위를 갖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청년은 이제 문학의 춤을 멈추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은 각자 인생을 재조정 하는 전환점이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이 청년도 아내와 함께 독일로 무대를 옮기게 되었다. 지난번에는 현실을 이상으로 이해하는 춤을 추려 했지만, 이번에는 이상이라도 현실화시키는 꿈을 갖기로 한 것이다. 신학도는 어떤 춤을 출 수 있을까? 염려 반 기대 반으로 오 년의 세월을 단숨에 달려갔다. 사람이 완벽한 춤을 출 수 있을까마는 나름대로의 모양을 갖춘 춤 꾼이 되어 춤을 추기로 한 곳은 태평양 너머 토론토였다. 이민자와 더불어 새로운 춤의 세계로 이끌려 가는 소년은 이제 중년이 되었고, 신앙의 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원대한 꿈을 꾸고, 그럴싸한 비전을 제시하며, 힘든 사람 격려하고, 쓰러진 사람 부추기면서 그럴싸한 춤사위에 지칠 줄 모르던 수많은 날들은 소년을 신명 나게 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 훌륭한 춤을 함께 추자고 초청을 했다. 모두가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춤을 추는 것도 행복했지만, 거칠게 몰아 쉬던 숨을 고르며 흠뻑 젖은 땀방울에 깃든 희열을 느끼는 것은 잠시도 춤을 멈출 수 없었던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소년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 토론토에서의 이십여 년의 목회의 춤을 가리켜 인생에서 가장 황금 같은 시기를 후회 없이 불태웠던 추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위기의 여신은 전력 질주하는 인생을 단 한번도 그냥 내버려 둔 적이 없다. 소년이 갑자를 한 바퀴 돌아 육십을 넘겨 노년이 될 즈음에 갑자기 음악이 중단되었다. 세상은 고요하고 분주하던 발 놀림은 미동도 할 수 없는데, 함께 춤을 추웠을 파트너들은 온데간데 없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파트너가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기의 춤을 추는데 너무 도취된 나머지 파트너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소년은 그제서야 주위를 돌아 보았다. 역사는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었다. 아직도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의 춤에 도취해 있을 뿐 나의 춤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쉼 없이 달려왔건만, 뭐가 문제였을까? 이제는 세상마저 고요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은 태고의 그때처럼 혼돈과 어둠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바로 그 때, 잔잔한 멜로디와 함께 오래된 음악이 흘렀다. “Could I have this dance for the rest of my life? Would you be my partner, then every night?” 벌써 한 세대 전에 유행하던 앤 머레이(*)라는 여가수의 노래였다. 소년은 생각했다. “왜 나는 내 춤만을 추려고 했을까?” 자신의 춤을 멈추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아름다운 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춤에 내가 동참해 주는 것은 어떨까?”


오늘 아침, 나는 그 노년으로부터 행복한 메시지를 듣는다. 지금은 중국에 머물며 다른 사람들의 멋진 춤에 잘 맞는 파트너가 되기 위해 스스로 조연이 되기로 결정한 댄서의 행복한 비명이다. 북녘 하늘 밑에서 즐거움의 춤이 아닌, 생계를 위한 춤을 추는 동족을 위해, 시원한 우물이라도 파 주는 일은 그 어떤 무대에서도 맛 볼 수 없었던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라고 한다. 꿈 없이 생존을 위한 눈치만으로 반짝이는 작은 눈망울의 아이들에게 노란색 멋진 장화와 비옷을 입혀주며, 고사리 손에 몽글몽글한 빵 한 조각을 쥐어줄 때면 마치 얼음판 위에서 쉬지 않고 백 바퀴를 멋지게 돌기라도 한 듯 가슴이 뭉클하다고 하니, 이제 그는 꿈을 주는 멋진 파트너가 다 된듯하다. 굳은 살이 배겼어도, 코가 묻고 고사리 같아도 파트너의 손으로는 손색이 없고 훌륭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지방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재직하던 앤 머레이는 자신에게 맞는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남편 윌리엄의 권유로 음악을 시작하여 70-80년대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노래로 선사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춤의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내려놓고, 조연인 파트너가 되어 더 행복해진 한 소년이 이 노래를 좋아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듯 하다.



(* Anne Murray는 1946년 6월 20일 Canada의 Nova Scotia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눈에 띄게 큰 활약을 보인 대표적인 여성 Singer이며, 우리나라에서는 79년도에 Billboard 1위를 차지하게 된 "You Need Me"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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