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H조 최약체로 꼽히던 모로코도 넘지 못했다.

콜린 벨(62)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 축구 대표팀(세계 17위)이 30일 호주 애들레이드 하인드마시 스타디움에서 모로코(72위)와 벌인 2023 FIFA(국제축구연맹)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H조 조별 리그 2차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0대1로 패했다. 전반 6분 상대 공격수 이브티삼 즈라이디(31)에게 다이빙 헤더 골을 내준 뒤 만회 골을 넣지 못했다.

이번 대회 H조는 ‘1강 2중 1약’으로 분류됐다. 조 1·2위가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가운데 강호 독일(2위)이 16강에 올라가고, 나머지 한 장을 두고 한국과 콜롬비아(25위)가 경합할 것이란 전망이었다. 하지만 실상 ‘1약’은 한국이었다. 한국은 25일 콜롬비아에 0대2로 패한 데 이어 약체로 꼽혔던 모로코에도 무릎을 꿇었다. 아랍권 국가로 처음 여자 월드컵에 나선 모로코는 한국을 상대로 대회 첫 골을 넣으며 역사적인 첫 승리를 따냈다.

그래픽=김현국
그래픽=김현국

이어진 경기에서 콜롬비아가 독일(2위)를 2대1로 물리치는 이변을 일으키며 한국은 16강행에 실낱 같은 희망을 남겨두게 됐다. 다음달 3일 한국-독일, 콜롬비아-모로코 3차전이 동시에 열리는데, 한국이 독일을 잡고 콜롬비아가 모로코에 이기면 콜롬비아가 3승으로 조 1위, 나머지 국가가 1승2패로 승점 동률이 된다. 여기에 한국이 독일을 5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 조 2위가 된다. 독일은 1차전에서 모로코를 6대0으로 대파했다. 이 조건이 모두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국은 2015년 대회 조별리그 스페인전(2대1 승) 이후 8년 만의 승리에 도전했으나 2019년 대회(조별리그 3패)에 이어 2연속 전패 위기에 몰렸다.

벨 감독은 이번 대회에 앞서 단거리 전력 질주 등 ‘고강도’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신체 조건 등이 다양한 각국을 상대로 체력적으로 밀리면 안 된다”는 취지가 담겨 있었는데 정작 “고강도에 신경 쓰는 사이 패스와 슈팅 등 기본적인 것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한국은 전반적으로 패스 미스가 많아 공격 흐름이 끊겼고, 결정적인 기회에서 날린 슈팅은 번번이 골문을 벗어났다. 한국이 때린 16개 슈팅 중 유효슈팅은 단 하나. 측면에서 올린 32개 크로스 중 9개만 성공했다. 수비 조직력도 불안했다.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허용한 뒤 공격적으로 나서다가 실점 위기를 자주 맞았다. 모로코의 골 결정력이 좋았다면 대패를 당할 수 있었던 졸전이었다.

팬들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의 ‘황금 세대’가 정점을 찍어줄 것이라 기대했다. 벨호(號)엔 2010년 U-20(20세 이하) 월드컵 3위를 차지했던 지소연(32)과 임선주, 김혜리(이상 33), 같은 해 열린 U-17(17세 이하) 월드컵 우승 주역 이금민(29·브라이턴)과 장슬기(29·인천현대제철)가 함께했다. 180㎝ 장신 스트라이커 박은선(37)도 출격했다. 하지만 30대 선수들이 주축이 된 대표팀은 기대만큼의 기량을 펼쳐보지 못했다. 평균 연령이 28.9세로 참가국 중 가장 높은 한국은 기동력과 활동량에서 상대에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지소연은 “뭐가 잘못됐는지 잘 모르겠다”며 “아무래도 저희가 부족했던 것 같다. 팬들에게 너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벨 감독은 “팀의 역량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며 “다음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한국 여자 축구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