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순 욱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어린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밴쿠버에 처음으로 도착했을 때가 1982년 5월 17일이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딸 아이는 4학년으로 한국에서는 새 학기 초였다. 밴쿠버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어리둥절해 한 시도 엄마 아빠의 손을 놓고 곁을 떠나지 못하던 아이들이 40여 년간 이 땅에서 장성하여 슬하에 자녀를 둔 50대의 어엿한 부모가 되었다. 그러는 중 우리 부부도 나이가 들어 금혼식을 맞게 되고 보니 처음에 4식구였던 가족이 이제는 모두 11명으로 불어났다.
금혼식 기념으로 밴쿠버에 사는 아들과 에드먼턴에서 온 딸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딸 아이가 차 안에서 두툼한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집에 와서 열어보니 우리의 금혼식을 축하한다는 손글씨로 쓴 정성 어린 편지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다녀올 16일간의 항공권과 여행경비가 들어 있었다. 그때가 2017년 4월이었다.
드디어 여행길에 올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며칠을 묵으며 주위의 유명 관광지와 아름다운 이국 풍경을 추억에 담기 시작했다. 먼저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을 돌아보고 그다음 여정이 부로 택시(Burro Taxi)로 유명한 미하스의 하얀 평화의 마을을 다녀오기로 되어 있었다.
피카소의 유명한 그림 중의 하나인 “게르니카(Guernica)”는 그림 속에는 하나같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과 짐승들이 처참한 모습을 하고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림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억울하고 분에 북받친 듯한 비명과 아우성이 들려오는 착각 속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 나치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전멸되다시피 한 그리 크지 않는 도시이다. 한때는 평화롭기로 유명했던 이 도시가 순식간에 전운이 스쳐 간 잿더미로 변하고, 그 도시에 살던 수천 명의 무고한 생명이 한꺼번에 죽어갔다. 피카소는 바로 그 해에 나치군의 만행에 분노하여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전쟁이 없는 평화를 원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엔 여전히 평화는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국립박물관과 그 주위를 돌아본 후 다음 여행지인 미하스에 도착을 했다. 미하스(Mijas)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말라가주의 도시로 마을 건물이 모두 흰색이다. 높은 지대에 있는 마을로 멀리서 보면 흰색 집들만 눈에 들어온다. 거리에 놓인 벤치도 흰색이다. 전망대 벽면에 새겨진 마을 이름인 미하스(Mijas)가 아름다운 색채로 수놓아져 있고 전망대에서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또한 그곳에는 많은 당나귀가 줄지어 서서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당나귀들이 오늘날 미하스의 명물이 되어버린 부로 택시(Burro Taxi) 들이다.
1960년대에 당나귀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노동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걸 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태워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관광객들로부터 받은 돈이 노동자들의 월급보다 많아지게 되어 하나의 일거리가 되어버렸고 마침내 당나귀 택시 회사까지 생긴 그렇게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왼쪽으로 가면 마을을 보호했던 오래된 성 위에 지어진 공원인 플라자 드 라 콘스티 튜션(Plaza de la Constitucion)이 있고, 흰 대리석으로 만든 벤치들이 있는데 대리석 장인 Galiano가 1884년에 분수대와 벤치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고개를 돌려보니 예배당이 하나 있었다. 버진 드 라 패냐(Virgin de la Pena)의 돌로 만들어진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예배당 앞에 서 있는 당나귀를 보면서 성경 속에 나오는 예수님이 타고 가던 당나귀가 생각났다. 그 당시 나귀는 교통수단의 하나로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평화를 상징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귀라고 해서 아무나 타고 있으면 평화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 나귀가 강도를 태우고 있다면 이는 평화가 아닌 재앙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에 전시된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 그림과 미하스의 하얀 평화의 마을을 상징하는 부로 택시(Burro Taxi)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마치 꿈속을 다녀온 전쟁과 평화를 방불케 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게르니카”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처럼 자기가 당하고 있는 고난 때문에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성경은 “고난 겪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으나,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다”고 교훈하고 있다. 고난은 우리가 자신을 돌아볼 필요한 하나의 도구(Tool)다. 거기에는 고난이 우리를 유익한 길로 이끄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난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와 말씀과 순종이라는 은혜의 삼겹줄을 굳게 잡아야 한다. 이는 반복되는 삶의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민자로서 지나온 40여 년의 삶을 돌아보면 때로는 참으로 힘들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고난에 참여하는 유익한 삶의 여정을 통과하다 보니 마침내 자식들의 축복을 받으며 여기까지 걸어왔다. 금혼식을 맞아 분에 넘치는 아름다운 선물을 한 아름 안고 보니 여기까지 인도하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생각하며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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