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무엇이고 추억은 또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본다. 다 같이 지나간 일을 생각하는 일임엔 틀림이 없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누구라는 걸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부모가 누구이고 내 형제를 알아보고 내가 살아온 고향, 주위의 많은 사람과 주변의 사소한 일상이 머릿속에 남아서 나 자신을 알고 나라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추억이란 기억에서 한 발 더 나가서 기억과는 좀 다른 차원이다. 기억이 단순한 과거의 생각이라면 추억이란 아름다운 사람과의 이야기가 있다. 머리에서 생각해내고 가슴으로부터 울려오는 울림이 같이 우러나올 때, 마음이 아파지면서 지나간 일이 생각나고 아직 감정의 아련함이 같이 묻어나오는 살아 움직이는 생각이다.
기억은 감정이 없는 단순한 지나간 날의 순간순간을 생각해내는 중요한 과제이다, 그 기억이 사라지는 날 우리는 나라는 자아에서 벗어나서 위태로운 인생길에서 헤매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 기억력이 쇠퇴해지고 우리는 자주 건망증에 시달리면서 감정도 메말라가게 마련이다. 인간이 나이가 들면 외모도 변하지만, 마음가짐이나 생각의 한계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우리가 젊었을 땐 무슨 걱정이나 고민이 있으면 밤을 새워가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몇 날밤을 지새우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 생각도 같이 힘을 잃으면서 쉽게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생각하는 것도 많은에너지가 소모되고 뇌에서 어려운 일은 하려고 하지 않고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서이다 젊은 시절 고민했던 많은 일이 지금 와서 보면 참 어처구니없게도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그때 왜 그렇게 몇 날밤을 새워가면서 머리 아파했나 웃음을 짓게 만들기도 한다.
기억도 중요하고 추억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하지만, 망각이란 큰 은총이 우리에게 없다면 삶이 너무 힘들어서 아무도 끝까지 제대로 살아가지 못할 것 같다. 잊어버려도 될 일은 우리가 꼭 잊겠다고 작정을 안 해도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머리에서 희미해지면서 사라진다. 아무리 큰고통,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엷어진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게 마련해주신 신의 섭리 안에서 잊을 건 잊고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해야 한다. 살아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우리를 아프게 해서 혼란에 빠지지 않게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한다.
기억보다 가슴이 뛰는 추억을 많이 간직 할 수 있는 인생을 산다면 좀 더 삶이 행복할 것 같다. 추억도 사라지고 단순한 기억마저 없어지면 우리는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 존재의 자리마저 희미해져 무서운 병에 시달리면 살아가야 한다. 남은 내 생은 영혼이 없는 육신만 남아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비참한 삶으로 변하고 만다. 누구나 다 제발 그런 일 많은 나에게 일어나질 않길 바라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앞날을 어찌 장담 할 수가 있을까. 인간의 수명이 길어짐으로 젊은 나이에도 그런 병에 걸려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보곤 한다. 그 병은 완치할 수는 없고 오직 진행을 늦을 수만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조금씩 나빠지면서 언젠가는 생명까지도 앗아가는 치명적인 병임엔 틀림없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어쩌지 못하고 그저 가슴만 태우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서로가 한계에 다다르면 극단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보는 게 현실이다.
몇 년 전에 본 드라마가 생각이 난다. 30살 젊디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린 한 여자를 사랑하는 연인들의 이야기인데 현실에서 그런 사랑을 하는 연인들이 과연 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가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기억이 난다. 좋은 조건의여자와의 결혼식을 앞두고 사랑하던 여자가 치매에 걸린 사실을 알고 다시 그 여자에게로 돌아와 결혼하고 끝까지 곁에서 지켜주는 애틋한 사랑이야기인데 순간순간 가슴이 먹먹하도록 감동적이었다. 치매에 걸린 30살의 젊은 여자보다 곁에서 지켜보면서 같이 아파하는 남자의 사랑이 더가슴에 남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건 드라마일 뿐이지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팍팍한 세상살이에서 그런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가 실제로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아직 이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하다고 위로하고 싶은 내 마음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잊지 못할 추억은 있게 마련이다. 삶이 답답하고 무료한 날 지나간 날의 한순간을 가슴에 담고 아련한 감정 속에 나를 내 맞기고 멍하니 그 속을 거닐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은 조금씩 무뎌지지만 그래도 가끔은 추억 속에 잠겨 옛날의 그 날로 돌아가서 서성이다 돌아와 보자. 바람 부는 날엔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그 날의 목소리가 그리워서 가슴이 아려오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언젠간 그 추억이 기억으로 바뀌고 그 기억마저도 망각의 늪으로 빠져버리면 얼마나 외롭고 메마른 가슴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올여름은 비도 많이 오고 날씨는 아직도 봄 인양 서늘하기 조차하다. 이렇게 우울하게 비가 내리는 날엔 어디론지 떠나서 옛날 그때로 돌아가서마음조차 메말라가는 나에게 추억이 어린 빗방울을 가슴에 가득 담고 흠뻑 젖어 보기라도 하자. 나도 내일의 누군가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도 있기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남은 날들은 먼 훗 날 돌이켜봐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후회없는 하루하루를 살고 싶은 마지막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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