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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3-11-13 00:00

김혜원/
BC한인미술인협회장

모델(Model)

아름다운 산과 푸른 바다. 희미한 그림자처럼 보이는 안개 낀 아침거리, 소리없이 온종일 내리는 보슬비. 그리고 매일 다른 그림을 그리는, 황혼의 황홀한 아름다움.... 밴쿠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화가이고 시인들이다.

에밀리카에서 서양화를 공부할 때의 일이다. 일주일에 두 번 드로잉(drawing) 클래스를 택했는데 누드 모델을 그리는 시간이다. 여자 모델, 남자 모델이 격주로 왔고 여자 모델이 오는 날엔 가끔씩 벨리 댄서 (belly dancer)가 왔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여인을 그리는 것인데 빠른 템포로 춤추는 여인을 그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보통은 앉은 모습, 서있는 모습을 그린다. 남자 모델로 가끔씩 흑인이 왔는데 표정이 맑고 착해 보였다. 처음 1시간 30분을 3분,10분,30분 등으로 나누어 그리고 10분 쉬었다가 다시 그리는데 여자 모델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가운하나 걸치고 자기를 어떻게 그렸는지 구경하러 돌아 다닌다. 대학 3학년 가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드로잉 시간에 모델이 오질 않는 것이었다. 수업시간이 20분이나 지났는데 모델이 연락도 없이 오질 않으니 교수님은 교실 밖에서 서성이고 계셨다. 우리는 휴강을 하게 되면 어딜 갈까 하고 떠들고 있었는데 서양 여학생 하나가 교수님을 부르며 모델료가 시간당 얼마냐고 묻더니 모델 경험이 있다고 하며 모델료를 조금 더 주면 자기가 모델을 하겠다는 것이다. 교수님과 이야기가 잘 됐는지 옷을 벗고 중앙에 놓인 테이블로 가더니 포즈를 취하며 앉는다. 난 얼마나 놀랍고 당황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그 학생이 모델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며 얼마나 당당하게 모델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오래 전 토론토에서 온타리오 미술대학에 다닐 때 일이다. 그때는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주로 실과 천으로 공부할 때라 드로잉 클래스는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 옆 교실에서 항상 누드 모델을 그리고 있어서 그곳을 지나칠 때면 어떤 모델이 왔나 보며 지나곤 했다. 그날도 그 교실 옆을 지나 가는 중이었는데 좀 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델과 눈이 마주쳤다. 이를 어쩌나 우리 앞집에서 남자 친구와 살고 있는 웬디(Wendy)였다. 아침 일찍부터 열심히 살아가는 성실한 젊은이들이라 우리는 서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였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다음날 만나면 학교에서 보았다고 해야 할까를 고민하며 뒤척이느라 잠을 설쳤다. 며칠 후 문 앞에서 웬디를 만났을 때 "너 왜 학교에서 나 보고도 못 본 척 했느냐?"는 웬디에게 뭐라 할말이 없었다. 혹시 모델일 하는 것을 창피해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존심도 강하고, 수줍어하는 웬디였지만, 삶을 보람되게 살기 위해 모델이라는 직업에 성심을 다 하였던 것 같다.

자존심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환락의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실망과 좌절도 느끼지만 우리는 열심히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금 희망을 갖게 된다. 밝고 맑은 마음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듯 아름다운 삶의 아름다운 모델로 우리 그렇게 살아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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