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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외치는 목소리' 남명 조식의 실천유학

정봉석 phnx604@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5-22 17:26

해외에서 쓰는 고향 역사(9)
" 전하의 정사가 이미 잘못 돼 있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해버렸습니다. 하늘의 뜻은 이미 가버렸고, 인심도 떠났습니다. 마치 큰 나무가 백 년 동안이나 벌레가 속을 파먹고 진액도 다 말라버렸는데,회오리 바람과 사나운 비가 언제 닥쳐올지 까마득히 알지 못하는 것 같으니, 이 지경까지 이른지는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중략)..자전(紫殿:명종의 모비 문정왕후)께서 생각이 깊어시다고 해도 깊숙한 궁궐의 한 과부일 뿐이고, 전하께서는 나이어린 선왕의 고아일 뿐입니다. 천가지 백가지나 되는 천재(天災)와 억만 갈래로 나누어진 인심을 대체 무엇으로 감당하고 무엇으로 수습하시렵니까"

이것이 명종이 그를 단성현감으로 임명하자 한 달만에 사직하면서 올린 그 유명한 단성소(丹城疏) 내용의 일부이다.

이렇게 과격한 직격탄을 나라의 그 지엄한 임금에게 올릴 수 있다는 그의 뱃장은 혀들 내두를 만치 충격적이다. 요즘에도 대통령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다면 그도 사회적으로 당장 매장되는  불경죄에 속할 것인데 하물며 절대적 권력자인 명종은 이 상소를 받자마자 단박에 한칼로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명종조 당시의 상황이 어떠하였던가. 문정왕후 오래비 윤원형이란 자가 왕의 외삼촌으로 거들먹거리고 조정을 좌지우지하고  세도를 부리는 외척정치가 판을 치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임꺽정같은 도적의 무리가 전국에 횡행하던 시절,,,나라의 정치가 개판으로 흘러 백성들의 고혈이 다 빨려버린 현실에 대한 통렬한 직사포를 남명이 저 시골 산청구석에서 날린 것이다.

당시 임금은 어린 나이에 어미의 치마꼬리 잡고 등극한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보니, 수렴청정으로 실권을 장악하여 국정을 농단한 문정왕후를 일개 과부로, 그의 아들인 국왕 명종을 일개 고아로 대놓고 상소에 쓰버린 것은 지금 생각해도 남명이 너무 오버하지 않았냐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것은 조선조 역사상 전무후무한 불경죄에 속한다. 진노하여 온 몸을 부르르 떨던 명종은 이런 내용의 상소를 승정원에서 올려 보낸 자체를 문제삼았다. 그는 "임금을 공경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고 싶지만 그자가 숨어 사는 처사이니 불문에 부친다고" 하면서 "나의 부덕을 헤아리지 못하고 대현(大賢)을 조그만 고을의 수령으로 삼으려한 처사를 부끄럽게 여긴다"고 비아냥거리는 선에서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다.

과연 오늘날 이 정도의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덕망있는 정치인이 있을지, 그리고 그의 비판정신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의 정치에도 유효한 진정한 야당 정신이 아니랴!


<▲안의의 유명한 정자 문화의 본고장 화림동 너럭바위와 농월정 유홍준은 나의 문화 답사기에서 이 화림동 계곡을 조선조 정자문화의 요람이라고 극찬한 바 있는 관광지 남명 조식은 제자들과 더불어 이곳을  수없이 찾아 심신을 단련하였다고 한다. >


그가 사직서를 쓸 당시는 산청 덕산의 산천재에서 말년을 보낼 당시로 우리가 한 깡촌 시골 선비로 착각하기 쉬우나, 그는 일찌기 부친을 따라 5세에 상경하여 도성안 북악산밑 장의동(지금의 옥인동일대)에 살며 20대 중반까지 서울에서 공부하며 과거도 한 두번 본 서울 물도 먹어본  사람이다.

그후 중종시 정암 조광조등의 신예 사림들이 과격한 상소로 떼죽음을 당한 기묘사화(1519)에 연루되어 숙부 조언경이 죽고 부친 조언형이 파직되자 생계가 어려워 김해 처가에 내려와 장인의 도움으로 산해정을 짓고 제자를 길러내며 학문에 몰두하게 된다.(여기에서 중남부 경남 의령 곽재우, 고령 김면을 만난듯, 홍의장군 곽재우는 그의 외손녀 사위이다.)

그 후 30대 중반에 벌써 '좌도엔 퇴계가 우도엔 남명이 있다'는 조야의 찬사를 받은 사람으로 당시의 유학자들이 줄지어 찾아오는 명성을 떨쳤고, 몇번이고 관직에 추천되었으나 고사했다. 특히 이황과의 학문적 입장차이로 벌인 '우도와 좌도의 대결'인 성리학 논쟁은 당시 선비들의 관심사요 최대 화제였다.

이황이 관직에 나갈 것을 권유하자 남명은 그대도 여러번 사직하고 사퇴하면서 나더러 관직에 나가라는 저의가 무어냐고 빈정대기도 했지만 둘은 실지 한번도 대면한 적이 없고 당시의 토론과 비판은 편지를 서로 주고 받은 신경전이라고나 할까.요즘의 인터넷에서 글을 올리고 답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당시 좌도의 퇴계 이황, 기호의 율곡 이이는 순수한 학문적 관심에서 성리학의 이론 공부에 천착하여 사단칠정론에 이기일원론이다,이기이원론에 이기호발설이다하는 공리 공담에 치중했던 반면, 남명은 이론 논쟁을 비판하고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실천론이 더 중요하다는 경상 우도 학파의 학풍을 정립한 사람이다.

그는 당시 선비사회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이단취급을 받았던 노장사상도 적극 포용하는 입장이었다. 그의 남명(南冥)이라는 아호는 바로 장자 첫 장인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붕새가 날아가는 남쪽 바다인 "남명"이라, 쪼잔하게 살지말자는 그의 기상이 넘치고, 황석산에서 순절한 함양군수 조종도도 그의 제자인데 그의 호가 또 우리의 눈길을 끄는 '대소헌'(大笑軒)..이는 노자의 4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과연 남명학파는 자질구레한 절조에 억매이지 않는 시원한 선비들의 집단임을 가늠케한다.

퇴계가 남명에 대해 '오만하여 중용의 도를 기대하기 어렵고 노장에 물든 병통이 있다'고 비판했는데,남명은 '선비들이 공부한다는 핑계로 자신들의 부모의 고혈을 짜고 여러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고 답글을 올렸다. 이어서 남명은 '요즘 학자들은 물뿌리고 청소하는 절차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天理)를 담론하며 허명(虛名)을 훔친다.'는 비아냥거림으로 신경전까지 벌린다. 후일 퇴계와 남명의 제자들이 율곡 이이와 성혼의 제자들이 형성한 서인에 대립하여 경상도 출신들이 동인을 형성하나 이러한 학문의 입장차이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는 원인을 제공한다.

남명의 사상은  퇴율의 사변적인 이론 철학에 비해 간단 명료하다.그의 철학은 단지 두 글자 즉 '경'(敬)과 '의'(義)로 압축된다. 합하여 경의(敬義)사상인데, 경은 수양하는 덕목이고 의는 실천하는 덕목이다. 다시말해 자기 자신을 무자비하게 엄격하게 수련하여 허허한 상태의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려행(勵行) 실천하는 것이라 풀이할 수도 있으니 그의 철학을 '실천유학'이라고도 한다.

남명의 사상적 가르침은 당시 퇴율과 기대승으로 대표되는 사변주의에 흐르는 유학정신이 변질하여 퇴락해가는 풍조에 버팀목으로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송의 주희가 공맹의 성리학을 이미 다 규명하여 놓은 이상,쓸데없이 더 이상 토달것이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남명의 문하에서 구국항일의 의병장이 가장 많이 배출된 것도 의를 중시하는 남명의  정신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를 "칼을 찬 선비"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는 항상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방울 두쌍 '성성자'(性性子)와 과감하게 실천하는 경의검(敬義劍)이라는 칼을 차고 다녔다한다.

그의 경의검에는 "안으로 밝히는 것이 '敬'이요, 밖으로 결단케하는 것이 '義'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하는데, 성성자는 온화한  외손녀 사위 김우응에게 경의검은 그의 수제자 정인홍에게 전수하였다고 하나 한국전쟁당시 경의검은 합천의 후손이 소장하다가 없어졌다고 한다. 성성자와 경의검을 차고 딸랑거리는 금속성을 울리며 안음 옥산동(화림동의 당시 명칭)을 제자들과 함께 찾아 그 넓은 화림동 골짜기의 반석위로 소요하는 그의 발걸음이 들리지 않는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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