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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멀리 떠나 보기 “오쎌로 터널 안을 걷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7-06 09:40

순도 100% 초록 자연 속에서 만나는 평화

한 중년의 직장인이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다소 힘 빠지는 얘기를 풀어 놓는다.

“휴대폰 사용지역을 분석했는데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10km를 벗어나지 않은 곳을 빙빙 돌아가며 산다더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집, 회사, 집, 회사···”

허영만이 만화 <식객>을 통해서 그려낸 이 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사실이 그렇다. 유목 생활을 청산하면서 인류는 한 공간에 갇혀 지내는 날이 많았다. 정착민들은 떠남을 습관처럼 동경하고 여행 광고에 눈독을 들이지만, 틀에 박힌 그 ‘10km’를 벗어나는 게 늘 쉽지 않다. 떠나고는 싶지만 그놈의 용기가, 시간이, 돈이 너무 부족하다는 게 한결 같은 하소연이다.

그래서 좀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약간의 용기, 약간의 시간, 약간의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 보기로 했다. 10km를 한번쯤 벗어나 보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조금만 멀리 떠나보는 그런 여행이다.


밴쿠버에서 차로 150km, 하루면 충분하다
처음 선택한 곳은 ‘오쎌로 터널’(othello tunnels)이다. 한인들 사이에선 간혹 오델로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오델로 터널이 어디 있는지,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영어 사용자는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다. 오쎌로라는 번데기 발음이 확실히 필요한 이유다.

오쎌로 터널은 밴쿠버에서 동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코퀴할라 캐년 공원(Coquihalla Cannon provincial Park) 내에 위치해 있다. 터널을 품고 있는 도시는 온천지로 꽤 유명한 호프(Hope)다.
 
1번 고속도로를 타고 막힘 없이 달리면 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오쎌로 터널에 도착할 수 있다. 찾아가는 방법도 수월하다. 중간에 고속도로 이름이 1번에서 3번으로, 3번에서 5번으로 바뀌지만 신경 쓸 필요는 전혀 없다. 차선을 고수하다 183번 출구로 빠져 나오면 된다. 터널은 출구에서 3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흠이 있다면 이정표가 너무 작아 놓치기 쉽다는 점이다. 가게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 역시 찾아보기 힘든 편이라 길을 잃으면 낭패다. 출구에서 나와 오쎌로 로드 방면으로 우회전해서 약 400m를 달린 뒤, 다시 오쎌로 로드에서 좌회전해서 3km 정도 더 가면 목적지다.

네비게이션에게만 길 찾기를 맡겨 놓아도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네비게이션이 말 그대로 ‘멍 때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게, 네비게이션 입장에서 보자면 터널이 위치한 곳이 오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밴쿠버 내에서만 왔다갔다 한 사람들의 눈에도 터널과 터널을 찾아가는 길은 ‘오지’로 비춰질 수 있다. 그만큼 외딴, 낯선 느낌이다. 애바츠포드를 지나 조금만 더 달리다 보면, 고속도로를 제외한 모든 것이 온통 초록색이다. 놓치면 후회할 수밖에 없는 풍경 중 하나가 초록 절벽 틈을 타고 내리는 폭포수다. 여유있게 운전하자. 최근 세상에 나온 책 <마흔 이후, 이제야 알게 된 것들>을 살짝 인용하면, ‘속도를 얻으면 풍경을 잃고 속도를 잃으면 풍경을 얻는다’.


캐나다 골드러쉬 시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곰 한 마리 툭 튀어나와서 길을 막고 서 있어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을 지나치면, 드디어 코퀴할라 캐년 공원에 들어서게 된다. 주차장은 꽤 협소한 편이다. 맘씨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원봉사로 주차 안내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친절함도 ‘주차난’은 어쩌지 못한다. 정오 이후에는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해 쩔쩔 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니, 이 점을 염두에 둘 것.

주차장에서 터널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네 개의 터널(원래는 다섯 개인데 하나는 폐쇄된 상태다)을 모두 돌아보는 데에도 한 시간 정도면 차고 넘친다. 하지만 터널이 세워지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터널은 1914년에 완공됐다. 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있을 무렵, 캐나다 철도회사(Canada Pacific Railway)는 쿠트니 지역과 BC 해안을 연결하고자 했다. 거대한 산허리에 구멍을 내고 다리를 놓는 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앤드류 맥클로(McCullough)를 비롯한 기술자들이 당시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매달렸고, 터널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오쎌로 터널은 이미 오래 전에 애초의 임무를 벗어 던졌다.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된 게 지난 1961년의 일이다.

‘은퇴’ 후, 터널은 더욱 유명세를 탔다. 독고다이로 적들과 대항하던 ‘람보’가 이곳에서 촬영된 이후부터는 더욱 더.

버려진 듯 보였던 터널은 지금은 호프(Hope)시가 자랑하는 관광지로 살고 있다.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캐나다 골드러쉬 시대를 걷고 있다는 그 느낌으로.


누군가 응징하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평온
터널 안은 어둡다. 그렇다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런 암흑 수준은 아니지만, 터널 안의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랜턴 하나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

터널 안을 하찮게 뒹굴고 있을 돌멩이 하나에도 100여년 전 노동자의 피땀이 새개져 있을지 모른다. 터널 천정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이 때 만들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나름 즐겁다. 랜턴을 벽 쪽으로 돌리면 반짝반짝 빛나는 암석을 보게 된다. 아이들 열 명 중 아홉 명은 마치 금광을 발견한 듯 흥분한다.

하나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다리가 나온다. 다리 밑으로는 물줄기가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힘차게 흐른다. 계곡물에 발이나 좀 담그고 갈까,하는 소박한 생각은 노스밴쿠버 린 캐년 공원에서나 할 수 있겠다. 이곳의 물줄기는 발만 담가도 온몸이 휩쓸려 나갈 정도로 위력적으로 흐른다.

터널을 다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벤치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오쎌로 터널 아래를 관통하는 물줄기와 초록빛 자연을 흠뻑 감상할 수 있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말을 건넨다.
“정말 평화스러운 풍경 아닌가요?”

평화라는 얘기에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의 마스터 시푸가 떠올랐다. 시푸는 늘 평화를 갈구했다. 평화는 만인의 적이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아들처럼 키우던 타일렁이 몰락한 이후에야 비로소 허락됐다. 달리 말해 시푸에게 있어 평화는 누군가를 응징하고 나서 얻은 전리품과 다름 없었다.
하지만 눈부신 자연 앞에서는 평화를 이유로 누군가와 싸울 필요가 없어진다. 그냥 저절로 마음이 평온해 진다. 속도를 한참 줄인 채 오쎌로 터널 근처를 걷다 보면, 순도 100%의 평화와 만나게 될 지 모른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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