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이사람]73세, 멈추지 않는 열정이 깨어나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0-04-09 00:00

노익장 지식인, 경일수 씨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했다(One is never too old to learn)’이라는 영어속담이 있다. 나이는 가르침을 얻는데 장애나 핑계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번주에 밴조선이 만난 경일수씨(사진)는 1937년생으로 올해 73세가 됐다. 한국에서 간호사 교육을 받고 1965년에 봉사단의 일원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2년간 의료봉사를 한 뒤, 밴쿠버 땅을 처음 밟은건 1967년 가을이었다. 캐나다에서 산부인과 간호사로 일하며 가정도 꾸리고 평탄한 삶을 살던 경씨. 그런 그는 은퇴와 함께 제2의 인생을 누리기로 결심했다. 예술가로서의 삶이다.

 

 

 “98년도에 차사고 때문에 일을 한동안 못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기간에 평소에 친분이 있던 한국의 한 간호대학 학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와 학생들을 가르쳐보라고 권하셨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건너가 신생아과에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죠. 그런데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들을 보며 생각했어요. 아, 나도 캐나다에 가서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말이죠”

 

전쟁과 피난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힘든 시절을 보낸터라 항상 배움에 대해 목이 말라있었다고 했다. 캐나다로 돌아온 2000년도에 공식적으로 간호사를 은퇴했고, 60세가 넘은 나이지만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했다. 분야는 미술. 은퇴하기 몇 년전, 커뮤니티 센터에서 가르치는 미술교실에 참가하면서부터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SFU에 입학해서 2년간 인문계 관련과목을 수강했다. 미술 역사, 작품 해석법 등 나이를 잊고지식 습득에 마구 빠져들었다. 그리고 3년 째에 UBC로 옮겨 사진과 컴퓨터 미디어 등 실습을 위주로 하는 과목을 수강했다. 창의력 넘치는 젊은이들과 경쟁하느라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그들과 친구처럼 지내니까 젊어지는 것 같았단다. 그렇기 때문인지 대학에 다니며 무엇이든 대단한 열정을 보였다.


 
“SFU에서 공부할 때였어요. 학교 도서관에 내 작품을 꼭 전시하고 싶은거에요. 주변에서 다 말렸죠. 절대 불가능할거라고. 그런데 ‘난 거기다가 꼭 해야겠다’고 오기가 생기더군요. 직접 도서관 담당자를 만나 설득하고 결국 허가를 받아냈죠(웃음)”


바닥부터 천장까지 책을 나무처럼 쌓아 만든 작품이었다. 가장 아래는 유치원 책, 위로 올라갈수록 난도가 높은 책이 놓였다. ‘지식(Knowledge)’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관람객들이 직접 만져볼 수도 있었다. 학생일 때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졌던 그 작품전시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 벅찬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경씨의 성적표는 대부분 A학점으로 수놓아졌다. UBC 미술학사학위(Bachelor of Fine Art)를 받고 졸업한 것이 2006년. 이듬해부터는 노인 커뮤니티 센터에서 무료로 그림수업을 가르치고, 초등학생 아이들 미술수업을 돕기도 하며, 리치몬드 갤러리에서도 일을 하는 등 미술과 관련된 봉사에 매진했다.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밴쿠버에 처음 방문하는 안내해주는 봉사나 혼자 헤이스팅스 거리를 돌아다니며 노숙자들을 작게나마 돕는 봉사도 하고 있다. 이유를 물었다.

 

“난 학교를 공짜로 다녔어요. 65세가 넘으면 대학교 학비가 무료거든. (웃음) SFU는 내가 다닐 때만해도 공짜였는데 요즘에는 바뀌었지. UBC는 아직도 노인들에게는 학비가 무료에요. 책 값이랑 재료비만 내고 거저로 배웠으니까 나도 뭔가 사회에 보답해야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여러 봉사를 하게 됐죠.

헤이스팅스에 자주 가요. 가서 사진도 찍고, 돈달라 그러면 돈대신 밥을 사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요. 거기 가는거, 남편은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거기 돌아다닌다고 해서 해코지하는 사람도 없는데 무얼...(웃음) 작은 힘이지만 도와주고 싶어요”

 

남편이 걱정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내가 하겠다고 하면 반드시 하기 때문에 말리지 못한다”며 소녀처럼 웃는다. 묵묵히 뒤에서 지켜봐주는 남편이 고맙고 감사하다고.

 

경씨가 세운 미래의 계획이 어떨지 궁금했다.


“지난해에 예술가 거주 프로그램(Artist in Residence)차 호주도 다녀왔어요. 2개월 반동안 작품에 대한 영감을 잔뜩 받아왔죠. 앞으로도 여행을 계속 다니며 작품활동을 해야죠. 주로 환경에 관한 사진작품이 될 겁니다”

 

경씨의 현재 가장 큰 고민은 대학원 진학이다. 대학원을 진학하면 가능성 있는 젊은이의 자리를 뺏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지만 계속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커서 조금만 더 고민을 해보려고 한단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해외에 가야겠다는 꿈이 있었어요. 결국 여기 이렇게 아름다운 캐나다에서 살고 있죠. 밴쿠버에 이민을 와서 크게 힘들었던 건 없어요. 좋아하는 간호사 일을 했고, 대학도 다녔으며 요즘에는 작품활동을 하고 있죠. 꿈을 간직하고 있었더니 반드시 이루어 지더군요”

 

다른 사람이 알아줘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경일수씨. 배움에도, 봉사에도, 작품활동에도 언제나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 작은체구 어디서 뿜어져나오는지 놀라웠다. 꿈을 잊어버리지 않았더니 결국 이루어 졌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앞만보고 경쟁하듯 달려가면서 꿈을 잃어버린 요즘 사람들에 대한 일침같다.

 

홈페이지: www.ilsookyung.com

 

한혜성 기자 helen@vanchosun.com

 

경일수씨가 2008년 6월 25일에 6.25피난기를 되새기며 퍼포먼스를 했다. 짐보따리를 실은 손수레를 만들고, 손수레 위에 6.25당시의 사진을 구해 붙여 버라드 다리 남쪽부터 헤이스팅스가까지 그 수레를 끌고 갔다. 헤이스팅스가의 한 공원에서는 배가 고팠던 그 시절을 되새기며 100여명의 노숙자에게 라면을 끓여먹였다.

‘Strong winter tree’

‘Fogged in’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차란 길(Gill) PICS CEO
PICS(Progressive Intercultural Community Services Society)는 인도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23년 전 창립된 이민자 봉사단체다. 현재 써리와 밴쿠버에 사무실을 두고 무료영어 프로그램(ELSA), 구직서비스,...
밴쿠버 동물원 박덕원 사장과 최태주 부사장
“나는 꿈이요.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거에요. 그래서 지역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주는 겁니다” 올해 설립 40주년을 맞은 밴쿠버 동물원(Greater Vancouver Zoo) 박덕원 사장은 특유의 온화한...
자선음악회 여는 ‘김응현과 친구들’의 김응현군
오는 20일 오후 7시30분 버나비시내 마이클 J폭스 극장(7373 Macpherson Ave.)에서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제2회 자선연주회를 주최하는 ‘김응현과 친구들’의 김응현군은 10학년고등학생이다....
전액 장학금 받고 버클리 음대에 진학하는 존 리(Lee)군
매해 수많은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부푼 꿈을 가지고 대학에 진학한다. 그 가운데 스스로 좋아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뚜렷한 목표와 진로를 세우고 대학에 가는 학생은 과연 몇 명이나...
밴쿠버에서 ‘남북한 화해와 평화 위한 기도회’ 주최
밴쿠버기독교협의회 회장 전상혁 목사, 북한동포돕기회 회장 우종철 목사 인터뷰 밴쿠버 기독교협의회가 오는 18일 오후 7시에 밴쿠버 순복음교회(3905 Norland Ave. Bby.)에서 '남북한 화해와...
[우리이웃]공개입양을 택한 김태원∙엄양순씨 부부 첫째인 은비(7세)는 차분하고 여성스럽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 꼼꼼해서 글씨도 예쁘게 쓴다. 어른스러워...
‘수라’ 한식당의 한상조 쉐프 밴쿠버 컨벤션 센터에서 지난 28일부터 3일간 열린 밴쿠버 최대 먹거리 축제인 ‘잍 밴쿠버(EAT! Vancouver)’는 주류 시음회, 요리 설명회 등 많은 볼거리와...
밴쿠버 서광사 부주지 도심 스님
오는 21일은 불기 2554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그 날을 앞두고 서광사의 부주지 도심 스님을 만났다.
밴쿠버 한인 노인회 이용훈 회장 
한인사회에도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60~70년대에 젊은 나이에 이민 왔던 이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있다....
도버베이 고등학교 12학년 정은화 학생
BC주 최고의 과학영재를 가리는 제5회 BC’s Brightest Minds Competition이 4일 개최된다. 밴쿠버 플레이랜드와 UBC, 캐나다 수학과학센터협회(MITACS)가 공동지원하는 이 대회는 각 BC주 고등학교에서...
화이트캡스 유일 아시아 축구선수, 타카시 히라노
프로축구리그 USSF D-2(United States Soccer Federation Division-2)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초. 밴쿠버 유일 프로축구팀 화이트캡스팀은 SFU의 한 축구장에서 연습이 한창이었다. 이른 아침 도착하니...
캐나다 외환은행 버나비점 이성욱 신임 지점장
“캐나다 시장에 파고 들어갈 방법을 연구해 실천해볼 계획입니다”   지난 3월13일 캐나다 외환은행 버나비 지점에 새로 부임한 이성욱 지점장(53세)의 포부다. 25년간 외환은행에서...
밴쿠버 10km단축마리톤 대회 완주에 도전하는 김풍환씨
여든 노인이 10km 단축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완주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을 때, 무모하다고 느꼈다.
노익장 지식인, 경일수 씨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했다(One is never too old to learn)’이라는 영어속담이 있다. 나이는 가르침을 얻는데 장애나 핑계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번주에 밴조선이 만난...
2010 밴쿠버 올림픽 폐막을 하루 앞두었던 27일 낮. 노스 밴쿠버에 위치한 성시백 선수의 이모집에서 성선수의 어머니, 친지, 지인들이 모여...
19일 훈련 마치고 나온 곽선수 전격 인터뷰
19일 오후 4시, 이스트 밴쿠버에 있는 트라우트 레이크 아레나(Trout Lake Arena)에서 연습을 마치고 나온 곽민정 선수를 만났다...
사진=김한솔 기자 tinman4423@gmail.com 공항 게이트에 모습을 드러낸 대한민국 선수단 밴쿠버 한인들과 대한민국 선수단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한인회로부터 환영 꽃다발을 들고 밴쿠버에 온 소감을 밝히는 박성인 대한민국선수단장
밴쿠버 동계올림픽 위원회는 2일 올림픽 시상대 언론공개 행사를 했다. 사진=이창현 기자 chlee@vanchosun.com
“좋은 의견 나눴습니다”…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캐나다 서부지회(회장 신두호)는 28일 종교분과위원회(위원장 정용우) 주재로 신년하례회와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서덕모 주밴쿠버총영사, 오유순 한인회 회장대행, 전상혁 밴쿠버...
다운타운 그랜빌가와 랍슨가가 교차하는 지점부터 한블럭 구간에 새로운 명소가 탄생했다. 정월대보름을 기념하며 대만 커뮤니티 주최로 매년 열리는 랜턴 페스티벌이 올해에는 문화올림피아드 행사로 다운타운 중심가에서 펼쳐진다. 캐나다와 대만의...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