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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 했더니 길이 열렸어요

한혜성 기자 helen@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0-06-15 13:43

전액 장학금 받고 버클리 음대에 진학하는 존 리(Lee)군

매해 수많은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부푼 꿈을 가지고 대학에 진학한다. 그 가운데 스스로 좋아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뚜렷한 목표와 진로를 세우고 대학에 가는 학생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밴쿠버 아일랜드 나나이모에 사는 한인, 존 리(한국명: 이주원∙16세)군은 올해 본인이 너무나 좋아했던 ‘재즈 드럼’으로 미국 보스톤에 있는 세계적인 명문 음대인 버클리 음대(Berklee College of Music)에 입학한다. 매년 잠재력 있는 캐나다 학생 한 명에게 주어지는 슬레이트 패밀리 장학금(Slaight Family Scholarship)과 함께다. 이 장학금은 존 군에게 4년 전액 학비과 숙식, 노트북 등을 제공한다. 돈으로 환산하면 미화 20만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존 군은 2008년부터 제공된 이 장학금의 3번쨰 수혜자다.

<버클리 음대에 전액 장학금 받고 입학하는 이주원(John Lee)학생 >

 

다음은 존 군 어머니와 존 군과 나눈 문답.

<존 군 "드럼과 음악은 저의 모든 것입니다">

먼저 버클리 음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는 것을 축하한다. 전공인 드럼은 언제 처음 배우게 됐고, 음악을 왜 공부하게 됐나?
드럼을 12살 때 처음 접했다. 처음에는 평생 공부하겠다고 생각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나의 유일한 드럼 선생님이었던 제임스 맥크레이(McCrae) 선생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으면서 재즈 드럼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음악을 공부하게된 결정적인 계기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첫 해에 재즈 콤보에 들어가면서다. 너무 재밌었지만 학교의 프로그램이 도전 의식을 북돋아주지는 못했다.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하고 싶어서 밴드 프로그램이 잘 되어있다는 웰링턴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웰링턴 고등학교의 프로그램은 굉장히 잘 되어 있어 내 음악실력은 날이 다르게 발전해갔다. 나는 실력있는 음악가와 친구들을 만났고, 격려해주는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내 인생과 목표가 완전히 바뀌었다.
음악과 드럼은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것 중 진지하게 생각한 유일한 것이다. 어떠한 취미활동도 그 두 가지만큼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은 어땠나?
내 고등학교 시절은 대부분 음악으로 채워졌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리드하는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고, 내가 만든 락밴드에서는 리드기타와 싱어를 맡았다. 여러 재즈 콤보를 만들어 학교에서나 커뮤니티 안에서 다양한 연주 활동을 했다. 연주 스케줄 때문에 다른 봉사나 아르바이트는 생각도 못할 정도였다. 대신 큰 연주활동이나 어린 학생들에게 기타나 드럼을 가르치며 용돈을 벌었다. 결국 이런 모든 경력이 버클리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친구들이 쇼핑몰에 가자고 해도, 난 집에 와서 악기 연습을 하는데 시간을 썼다. 나중에는 음악에만 바친 학창 생활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버클리 음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은 것이 내 음악열정을 위해 희생된 부분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력서를 보면 스스로를 음악가와 작곡가(Composer)라고 표현했다. 스스로 음악도 만드나?
작곡은 내 음악 경력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난 재즈부터 팝펑크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쓴다. 나 같은 젊은 음악가들은 우리의 영웅들이 과거에 했듯 음악계의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서 작곡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재즈드럼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제일 먼저 하루에 1~2시간이었던 연습량을 4~5시간으로 늘렸다. 버클리가 라이브 오디션을 위해 준비하라고 했던 곡들을 꾸준히 연습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경력에 도움을 줄 공연 기회를 계속 찾았고, 방과 후에도 밴쿠버 아일랜드 대학교 연주팀 등 다양한 그룹과 연주를 했다.

전액 장학생으로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학교에 합격했다는 이메일을 열었을 때 그 기쁨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너무 기뻐서 온 집을 돌아다니며 문을 차고 환성을 질렀을 정도였다. 나와 같이 있던 형도 자기 일처럼 좋아해주었다.
어머니께 소식을 알렸을 때 그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다. 나에게 훌륭한 프로그램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버클리 음대에 큰 감사를 표한다.

 

 

 

<존군 어머니(전현주 씨)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죠”>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아이들의 교육 때문이었다. 지나친 경쟁과 모든 것을 사교육에 의존하는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어린시절에 자유를 주고 싶었다. 만약에 한국에 있었다면 나도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이민을 선택했다.

존 군이 음악에 소질을 보인 것은 언제부터인가?
큰아이가 존이 뱃 속에 있을 때부터 바이얼린을 했고, 우리 부부가 워낙 음악을 좋아해서 어릴 적 부터 무수히 라이브 콘서트를 다니는 등 존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음악에 노출되어 있었다.
존이 악기를 처음 배운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피아노를 배웠는데 선생님 학생들 중에서는 항상 두각을 나타냈다. 빨리 습득하고 진도도 빨랐지만 무엇보다 감정 표현이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달랐다. 아이가 곡을 이해하는 척 가식을 떠는게 아닐까 싶어서 오버한다고 많이 놀리기도 했다. (웃음)
그러다가 존이 초등학교 7학년을 마친 여름에 사촌의 드럼세트를 가지고 놀았는데, 그 때 큰 아이가 존이 드럼에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한번 시켜보자고 제안을 했다. 존도 하고 싶다고 해서 그 때부터 드럼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1년 반동안만 개인레슨을 했고, 나머지 기간의 드럼실력 계발은 연습이나 다른 사람과의 많은 연주를 통해서, 그리고 학교 밴드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드럼연주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실력을 키우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존 군의 학교 생활은 어땠는지.
존의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이 수학을 비롯한 전반적으로 아이의 학업실력이 뛰어나다고 월반을 제안했다.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을 해 4학년에서 6-7학년 멀티클래스로 월반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공부보다는 음악에 미쳐서 살았기 때문에, 늘 B학점이 한 두 개있는 우등생(Honor roll)정도의 학생이었지, 아카데믹 과목에서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나도 한국엄마이다보니 그런 면이 아쉬웠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거의 학교 전체의 밴드활동을 존이 리드하는 입장이었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정말로 음악이 좋아서 하는 거라 말릴 수가 없었다.
존은 학교에 갔다오면 자고 먹는 시간이나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 이외의 모든 시간을 음악과 관련있는 것에만 썼다. 연습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다른사람의 연주비디오를 보거나,작곡을 하는 등 하루종일 바쁘게 보냈다. 학교 숙제가 있으면 그것을 하는 시간을 아까워 할 정도였다. 음악 이외의 다른 걸 하는 시간은 낭비라고 생각해서 투덜거리곤 했다.

존 군이 어떤 학생이었나?
책임감이 많고 굉장히 성실한 아이다. 아침에 학교가라고 한번도 깨워준 적은 없을 정도다. 음악에 관해서는 모든 스케줄이나 계획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다.
하지만 다른 생활에서 꼼꼼하거나 계획성있는 타입은 아니다. 잘 잊어버리고 자기가 싫어하는 일은 절대로 하기 싫어한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도 거의 없다. 고집이 너무 세다. 자기가 한번 생각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옆에서 설득을 해도 소용이 없다. 설득하는 동안은 잘 경청을 하지만 결론을 낼 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음악을 해서인지 학교에서는 인기가 있는 편이라 친구들이 아주 많고, 파티에는 절대 빠지지 않을만큼 사교적인 편이다.

재즈 드럼으로 음악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나?

존은 11학년 때부터 북미에서 열린 여러 재즈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기 시작했다. 존 역시 드럼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이미 존이 드럼으로 대학을 가겠다고 할 것을 알고 있었다. 놀랍지도 않았고 큰 갈등도 없었지만 똑똑한 아이라 공부를 해도 잘할텐데라는 아쉬움은 다소 있었다. 하지만 존이 음악에 전념하면서부터 조금씩 내 욕심은 스스로 포기하고 접어야했다. 공부는 존이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니까 강요할 수 없지 않은가.

자녀에 대한 특별한 양육 방침이나 교육 방법이 있었는지? 특히 부모로써 예술성을 길러주기위해 어떻게 방법을 취했나.
사실 존에게는 둘째라서 많이 신경을 못써준만큼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그래서 아이가 더 강하게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요구한 것은 바르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인간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정도였다. 우리 부부는 아주 기본적인 사람 됨됨이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이라 아이들이 어떤직업을 갖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그저 소시민적으로 밝고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음악을 시킨 것도 음악과 함께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바탕에서 시작된 발상이었다. 전공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는데, 이유는 전공을 하게 되면 또 다른 경쟁의 시작이고 스트레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존은 전공을 하겠다고 했고, 존이 잘하고 좋아하며 스스로가 한 선택이니 말릴 수가 없었다.
예술성을 길러주기 위해 특별한 교육법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예술가가 타고난 예술성이나 소질이 있다고 저절로 훌륭한 예술가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연습이 없이는 소질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이 생각이다.


단지 존의 아빠가 화가로 전업작가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이 좀 달랐다. 아이들에게 뭔가를 일방적으로 시키거나 주입하려고 하지 않는게 아빠의 교육방침이다.
큰 아이의 바이얼린과 존의 피아노 외에는 돈을 주고 레슨을 해주지 않은 대신에, 부모로서 서포트를 한 것이 있다면 음악에 관한 악기나 책을 사거나, 콘서트나 연주 여행을 갈 때 어떤 것이라도 해주었다. 해보고 싶다는 악기는 무조건 해볼 수 있도록 사주거나 빌려주었고, 가고 싶다는 콘서트는 학교를 빠지고라도 가게 도와주었다.
또 한가지가 있다면 가족 모두가 음악을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주 어릴적부터 우리가 듣는 음악들을 그대로 같이 듣고 자랐다. 그래서 초등학교 6~7학년 때는 이미 남들 앞에서 기타나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불러줄 정도가 되었다.

아이들이 틈틈이 가족 콘서트를 열어 연주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부모로서 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존이 버클리 음대에도 합격하니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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