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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 이종언 감독, 죽음보다 삶으로 기억하기

김수진 기자 ks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10-04 11:39

<생일>, 세월호 다룬 최초의 극영화이자 100만 관객 영화
제 38회 밴쿠버국제영화제 초청
때로 어떤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지독하게 낫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지난 2014년 4월 16일의 사건이 그러하다. 세월호가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지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곁을 떠난 학생들의 유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시간은 아직도 5년 전에 머물러 있다.

이창동 감독의 <시>(2010), <여행자>(2009), <밀양>(2007) 등의 영화에서 연출부로 함께 작업하며 내공을 켜켜이 쌓아온 이종언 감독은 데뷔작 <생일>을 통해 인간에 대한 섬세한 고찰을 담백한 어조로 담아내 상처입고 지친 영혼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다. 괜찮지 않기에 괜찮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냥 관객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스크린 앞에 함께 있어주고, 그 슬픔에 공감해줄 수 있도록 꾸밈없이 화면에 담아낼 뿐이다.

영화 <생일>은 세월호 사건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순남(전도연 분)과 정일(설경구 분)의 가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아들 수호(윤찬영 분)를 잃고 2년여동안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던 순남은 정일의 설득으로 유가족들의 '생일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그리고 수호의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각자 간직했던 특별한 기억을 서로에게 선물하며 '수호가 없는 수호의 생일'을 축하한다.

다큐멘터리 장르가 주를 이루던 세월호 관련 영화 사이에서 최초로 극영화로서 이야기를 풀어낸 <생일>은 지난 4월 한국 개봉 당시 100만 관객을 극장가로 불러들이며 ‘세월호 영화의 대중적 성공’이라는 의미있는 결실을 맺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우디네 극동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부일영화상 등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돼 작품성 또한 인정받은 <생일>이 올가을 밴쿠버 국제영화제를 찾아 지난 27일과 29일에 성황리에 상영을 마쳤다. 이를 위해 지난 28일 밴쿠버를 찾은 이종언 감독을 만나 그의 작품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Q. <생일>은 어떤 영화인가

<생일>은 세월호 사건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2014년 4월 16일, 사건이 일어났던 그날의 일을 조명하진 않는다. 그 일이 있고 몇 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유가족과 친구들이 간직하고 있는 상처들, 그 아픈 마음들을 일상 속에서 담담하게 그려내는 이야기다.

Q. <생일>이 세월호 관련해서는 최초의 극영화다. 기존에는 다큐가 주를 이루었는데, 극영화라는 '꾸며낸 이야기'의 형식을 통해 이러한 사건을 전달하는게 부담스럽진 않았는지

이 영화를 만들며 내가 했던 가장 큰 걱정은 실제 있었던 일과 내 상상이 버무려져 이야기가 재창조됐을 때 혹여 조금이나마 유가족에게 다시 상처를 입히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절대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글을 처음 쓰는 순간부터 촬영의 마지막 순간까지 매순간 나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고, 조금이라도 의심이나 걱정이 생기면 유가족들과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제작을 마치고 배우들과 안산 유가족 분들 계신 곳에 가서 상영회를 가졌는데, 그때 한 유가족 분이 '다큐보다 더 다큐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만큼 자신들의 상황을 잘 반영해 보여줬다고. 그 말을 들으니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고 기뻤다.

Q. 실제 있었던 일이고 너무나 비극적인 사건이었던만큼 조심스러운 소재일 수 있는데, 이 사건을 영화화 해야겠다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2015년 여름부터 안산에 위치한 치유공간 '이웃'에서 유가족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했다. 그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가까이서 그분들을 지켜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의 아픔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봐주고, 주목해주고, 관심을 갖고 공감을 하면 그분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 그날 TV를 보며 상처입은 모든 이들도 서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Q. 직접 오랜시간 함께 해서 그런지 영화에서 디테일이 많이 느껴진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감정선 묘사가 섬세한데, 그런 부분도 실제 모습을 반영했나

아무래도 실제 유가족 분들의 성격과 감정을 많이 참고하게 됐다. 어떤 분은 연대하고 활동하며 함께 어려움을 견디려 노력하고, 또 어떤 분은 아직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그 누구하고도 소통하고 싶지 않은, 극중 순남(전도연 분)처럼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분도 있었다. 어떤 성향의 분들이든 그 마음이 충분히 다 이해가 됐기에 영화에 다양한 캐릭터로 녹아든 것 같다. 맨 처음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결심했을 때 유가족 분들에게 먼저 말씀을 드렸는데, 그랬더니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고 유가족 관련 활동할 때 같이 가겠냐 먼저 물어봐주시고, 내가 그분들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많이 주신 덕분에 그분들의 다양한 성격과 감정선을 영화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Q. 망자(亡者)에게는 제사를 지내는데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일을 축하한다는게 인상깊었다. 이 영화에서 생일은 어떤 의미를 갖나

영화 속 '생일 모임'은 유가족 사이에서 실제 있었던 모임이다. 희생자 아이의 생일에 유가족, 친구,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 각자 기억하는 그 아이의 모습을 서로 공유하는 모임이다. 부모가 기억하는 모습, 형제·자매가 기억하는 모습, 친구들이 기억하는 모습이 각기 다르다. 실제 그 모임을 지켜보면 의외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내가 아는 우리 아이의 모습은 이러한데, 학교에서 저런 모습이 있었다니, 또 학원에서는 그런 모습이 있었다니. 각자의 기억의 조각을 맞추며 사랑하는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더 다채롭게 기억하기 위한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유가족들은 영화에서처럼 아직도 희생된 아이들의 방을 하나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놔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마음 안에 있고, 아직 옆에 살아 숨쉬는 것만 같고, 아직 모든 순간에 생각나고, 바람결에도 생각나고··· 그런 아이들의 제사를 지낸다는 건 그들을 죽은 자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제사를 지냄으로써 아직도 내 곁에 살아있는 것 같은 아이들을 죽었다고 애써 억지로 인정하는게 아니라, 생일 모임을 통해 아직도 곁에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다.


Q. 영화속 ‘피치맥’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아이들 사진을 음식 앞에 두고 유가족들끼리 웃고 떠들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준비하는 장면이 ‘유가족들은 이러한 모습일 것이다’라는 나의 고정관념을 건드리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그 장면 역시 실제 내가 유가족 분들과 납골당에 다녀오며 직접 겪었던 상황을 참고했다. 유가족에 대한 고정관념, 이해한다. 유가족들을 가두는 시선과 편견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노란 옷을 입거나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유가족들이 밖에서 밥을 먹으면 ‘밥을 먹네?’, 웃으면 ‘웃네?’ 이런 시선들이 알게 모르게 있다. 사실 사람이 24시간 울 수는 없는건데 말이다. 그분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보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참 기묘한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이쪽 분들은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는데 저쪽에서는 또 한바탕 울고 있고, 또 좀있다 보면 저기서 울음을 그치고 웃고 떠들고 있는데 이쪽에선 다시 오열하고 있고··· 이렇게 그분들은 웃을 일이 있어도 편하게 웃지만은 못한다. 그런 그분들의 상황을 이 영화를 통해 더 많은 분들이 이해함으로써 그분들이 고정관념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Q.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이 있긴 한데, 아직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번에도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생일>보다는 더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Q. 상처입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많이 기울이는 것 같다

그쪽으로 저절로 마음이 간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살면서 어떤 소재를 다룰지, 어떤 영화를 만들지 꼭 제한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방향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싶다, 내가 잘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런 한계선을 두고 싶진 않다. 아픈 마음이나 행복한 마음이나 다 소중히 만나고 싶다.

Q. <생일>의 관객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내가 처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건 스크린을 통해 나 자신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영화관에 앉아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등장인물에서 나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스크린은 거울이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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