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이민 결정했을 때, 그 마음 기억나나요?”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8-30 11:09

극단 하누리, 열세번 째 정기공연 '논두렁 연가'


인천공항에서 밴쿠버까지의 비행 거리는 약 8200km. 컵라면까지 합쳐 기내식을 서너번은 먹어야 마침내 랜딩이 가능한 먼 거리다.

하지만 요즘에는 ‘8200’이라는 숫자나 태평양의 깊이 같은 것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 창만 열면 어디서든 한국과의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화상통화로 부모의 안부를 물을 수 있고, 친구의 승진 소식에 축하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물론 거의 실시간으로 답글이 전송된다.
 
그런데도 왈칵 쏟아지는 게 있을 수 있다. 어떨 때는 어린시절 뛰어놀았던 동네도 그리움의 대상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향수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참으로 스마트해진 세상인데도 말이다. 밴쿠버 한인사회에서는 이민자의 이런 마음을 달래줄 소중한 이벤트를 매년 가을 만날 수 있다. 극단 하누리의 연극 공연이 바로 그것이다.




                                                                                                             사진제공=하누리



하누리의 작품들은 찬란한 여름이 막을 내리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하는 우기의 거의 맨 앞에 무대에 올려지곤 했다. 2011년의 ‘짬뽕’이 그랬고, 지난해 ‘오동리 소방서’도 가을에 찾아왔다. 올해에는 10월 3일 ‘논두렁 연가’가 관객들 앞에 선다.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은 김현석씨와 배우 정훈희, 신만재, 윤시나, 황준필, 박상엽씨, 그리고 분장을 맡은 김선아씨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이들은 단 5회 공연을 위해 1년을 투자하는 ‘연극쟁이’들이다.


“연극이 없다면, 너무 따분할 것 같아요”

‘논두렁 연가’라… 뭔가 토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제목이네요. 어떻게 이 작품을 선정하게 된 건가요?
김현석: 현재 한국에서 상연 중인 작품인데, 우연한 기회에 대본을 접하게 됐어요. 다 읽고 들었던 첫 생각은 ‘아, 바로 우리 얘기구나”라는 거였어요.

어떤 내용이길래 그렇게 느낀 거죠?
김현석:간단히 소개하면 이래요. 회사 발령으로 해외로 나가게 된 손자와 이를 반대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연극이지요. 손자가 외국으로 떠나면 다시는 못볼 것 같은 마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방해공작을 펼칩니다. 때로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또 때로는 눈물이 핑 돌기도 하죠. 이민이라는 큰 결심을 한 우리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런 모습이 꽤 익숙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만재: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이에요. 아마 많은 분들이 ‘논두렁 연가’의 메시지에 공감할 것 같습니다.

작품을 결정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연출이 ‘올해는 이걸로 하지’라고 하면 다들 따르는 건가요?
정훈희: 아니요, 단원이라면 누구나 작품을 추천할 수 있어요. 한해 공연이 끝나면 한두 달 쉬다가 바로 다음 작품 준비에 들어가는데, 이때 단원들에게 숙제가 주어지요. 
(정훈희씨는 하누리의 사무장으로, 극단 창단 때부터 함께 한 최고참 중 한 명이다.)

어떤 숙제죠?
김현석: 선배들로부터 각자 대본을 구해오라는 명령이 떨어지죠. 이렇게 작품들이 모여지면, 그 중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또 한인들에게는 어떤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을 지를 놓고 회의를 시작합니다.
정훈희: 단순히 내용만 훝어보는 게 아니라, 배우들이 직접 대본을 읽어보고 작품의 느낌을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그렇게 추리고 또 추려서 그해의 작품이 결정되는 거죠.

그렇다면 한번의 정기공연을 위해 거의 1년을 쏟아붓는 거네요. 좀 부담스럽지 않나요?
김현석: 아니요, 전혀요. 연극이 없다면 제 일상이 너무 따분해질 것 같아요.

그래도 준비하는 과정이 그렇게 쉬워보이진 않는데요.
김현석: 물론 그렇긴 하죠. 연극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은 단원 중에 아무도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좀 힘든 부분은 있을 거에요. 저는 무대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고, 다들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일하는 혹은 공부하는 틈틈이 연극을 준비하는 거군요.
황준필: 저 같은 경우는 프로 배우가 꿈이에요. 학교(밴쿠버필름스쿨)에서 영화를 전공하기도 했고…. 그런데도 연극을 준비하는 동안은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가 있어요. ‘내가 뭐가 좋다고 이 일을 하는 걸까?’라고요. 어떤 금전적인 보상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연습 자체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드니까요.

그래도 매년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일종의 만족감 때문인가요?
황준필: 아마도요. 그게 저도 참 신기해요. 
박상엽: 저는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는데, 하누리에 들어간 후 성적이 많이 떨어졌죠. 그래서 부모님 걱정이 많았는데, 한번 맛들인 무대는 쉽게 포기가 안 되더군요. 왠지 뭔가 끌리는 게 있어요.




                                                                                                            사진제공=하누리



“재밌게 준비한 작품, 마음껏 즐기시길”

하누리에는 어떻게 가입하게 된 건 가요?
박상엽: 준필이형 연극하는 거 보고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연습 장소에 따라가게 됐어요. 그때 덜컥 인연을 맺게 된 거죠. 여러 사람을 한번에 사귈 수 있게 된 것, 이게 저는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신만재: 저는 2011년 ‘짬뽕’ 무대에 섰는데, 그 전까지는 연기를 해본 적인 단 한 차례도 없어요. 우연히 단원 모집 광고를 보게 됐고, 오디션을 봤고, 그래서 한 식구가 된 거에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거군요.
신만재: 예, 그랬죠. 하지만 얻은 것은 많아요. 저는 예전부터 한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동경해 왔는데, 하누리에서 저 스스로 그런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게 무엇보다 뿌듯합니다.

오랫동안 하누리와 함께 하겠군요.
신만재: 아니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에 돌아갑니다. 언제 다시 올지는 모르지만 말이죠. 저 뿐만 아니라 준필이나 상엽이도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하누리가 많이 쓸쓸해질까 벌써부터 걱정이에요.

다시 ‘논두렁 연가’ 얘기를 해볼까요? 올해에는 하누리에서 직접 연출을 맡았는데, 한국 극단과 조율이 잘 안 됐던 건가요?(2011년 ‘짬뽕’ 때와 지난해 ‘오동리 소방서’ 때는 한국에서 연출이 초빙됐다.)
김현석: 그런 건 아니에요. 처음부터 우리끼리 해보자는 생각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고집을 부렸어요. 잘 할 수 있다고, 해볼 수 있다고. 선배들을 포함해 다른 단원들이 결국에는 제 뜻을 따라주었죠.

고집을 부린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김현석: 누구보다도 하누리를 잘 알고, 배우들의 능력이나 처한 상황을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극 전체를 이끌 적임자는 나라는 어떤 자신감 같은 게 있었어요. 

다들 다른 업이 있으니까, 스케줄 조정 같은 것은 큰 문제겠네요.
김현석: 그렇지요. 한국에서 연출이 오면 그 분 스케줄을 생각해야 하니까 그런 면에서 다소 어려움이 생기죠. 어찌됐건 연출을 맡으면서 제가 단원들에게 한 얘기는 하나에요.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재밌게 연습하자고. 그게 가장 중요한 거니까.

그렇게 즐겁게 준비했는데, 막상 연극이 막을 내리면 무척 허탈하겠어요.
정훈희: 공연이 끝나도 ‘연습하러 가야하는데’라는 생각이 버릇처럼 들 때가 있어요. 그때는 너무 허전하지요. 어떨 때는 연습장소를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눈물이 핑 돌기도 해요. 그만큼 연극이 재미있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다는 얘기겠지요.

이번 공연은 어떤 분들이 즐기면 좋을 것 같나요?
김현석: 그거 있잖아요. 좀 상투적인 문구…’남녀노소 누구나 다 환영합니다!’. 가족들이 한자리에서 한참 웃다 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사진제공=하누리


<논두렁 연가>
날짜: 10월 3일(목)~5일
시간: 목요일 7시 30분, 금요일과 토요일은 4시 30분, 7시 30분.
장소: Shadbolt Centre for the Arts (James Cowan Theatre)
주소: 6450 Deer Lake Ave. Burnaby.
문의: 한남여행사 (604)931-3366, (778)887-1321, (604)552-2828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로열컬롬비안병원 이선영
‘한 우물을 파다보면…’이라고 시작되는 문장이 ‘언젠가는 이루어질거야’라는 말로 완성되기까지에는 계량하기 어려운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가정’이...
트뤼도 자유당 대표의 ‘허심탄회'한 기자회견
저스틴 트뤼도(Treadeau) 연방 자유당(Liberal) 대표(42세)가 밴쿠버를 방문해, 16일 소수민족 언론과 기자회견을 했다.트뤼도 대표는 1964년부터 84년까지 한 해를 제외하고는 총리로 장기...
캐나다 6·25 참전용사 워렌 바이넬씨
1952년 5월 흔들리는 군함 안. 기계를 좋아하던 스물두 살 청년은 정비복 대신 군복을 입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면서 마음에 자리하기 시작했던 긴장감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밴쿠버시경(VPD) 최병하 경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에 선뜻 떠오르는 답이 없을 때, 평균적인 사람들은 저절로 막막해진다.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직업 안내서를 들춰봐도 ‘내게 꼭 맞는 길’은...
이민 1세인 부모들이 1.5세로 분류되는 자녀들에 대해 갖기 쉬운 착각 중 하나. “어려서 왔으니까 별 문제 없이 밴쿠버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영어도 뭐 저절로 늘지 않겠어?”자기...
써리메모리얼병원 배재현
의료분야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병원 속을 살짝 들여다 보면 의사나 간호사 이외에도 각양각색의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 한지붕 아래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BC한인보건의료인협회 성영주 회장
처음 밴쿠버 땅을 밟았을 때만 해도, 취직부터 그 모든 것이 순조로울 거라 믿었다. 내가 가진 이력만 내밀어도, 상대방은 황송한 듯 ‘웰컴 인사’를 건넬 줄 알았다. 하지만 이민을...
건강 강연회 여는 박정환 박사
오는 11월 4일부터 9일까지 밴쿠버 안식일교회에서는 '밴쿠버 교민을 위한 박정환 박사 초청 건강페스티벌'이 열린다.동 행사에 강연차 한국에서 방문하는 박 박사와 이메일로 인터뷰해...
주사파 핵심 인물에서 북한 인권운동가로 전향한 김영환씨
주체사상(주사)파의 핵심으로 활동했던 김영환(51·사진)씨가 18일 밴쿠버를 찾았다. ‘강철서신’이라는 이름의 문건 하나로 북한 주체사상을 학생운동권의 핵심 이념으로 만들었고, 최근...
VIFF 초대작 ‘나인뮤지스 오브 스타엠파이어’ 감독 이학준
“스타는 결국 우리의 욕망이 만들어 낸 아바타”한류는 뭔가 있어 보이는 남자 배우들의 일본 진출과 함께 시작됐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강남스타일’을 통해 마침내 전세계 곳곳에...
BC실업인협회 한대원 회장
BC주정부가 주류법 개정을 목적으로 주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engage.gov.bc.ca/liquorpolicyreview/)를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에 그로서리 업계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매장...
“김연아를 1등석에 올린 브라이언 오서처럼…”
‘김연아’라는 이름과 가장 쉽게 연관되는 검색어는? 대부분 사람들의 머릿속에 입력되는 첫번째 단어는 아마 피겨 스케이팅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검색어 리스트 어딘가에는...
“한인 2세 꿈의 무대 이끈 티칭프로 브라이언 정”
그에게 골프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운동이었다. 부모의 권유로 어린 시절부터 채를 잡게 됐지만, 달걀보다 작은 공을 홀컵까지 툭툭 쳐나가는 게 전부인 이 스포츠를 그는 좋아할 수...
극단 하누리, 열세번 째 정기공연 '논두렁 연가'
인천공항에서 밴쿠버까지의 비행 거리는 약 8200km. 컵라면까지 합쳐 기내식을 서너번은 먹어야 마침내 랜딩이 가능한 먼 거리다.하지만 요즘에는 ‘8200’이라는 숫자나 태평양의 깊이 같은...
최우정씨 “힘든 만큼 보람된 직업, 취업률도 상대적으로 높아”
데이케어 교사가 되는 길은 꽤 만만해 보인다.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비교적 짧은 데다, 일자리 정보도 쉽게 접할 수 있어서다.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이런 생각이...
신재경 BC주의원 인터뷰
지난 5월 BC주총선에서 BC주 제1야당 BC신민당(BC NDP)의 기세는 당당했다. 대다수 여론조사는 정권 교체를 예상했다. 신민당의 한인후보로 나선 신재경 후보에 대한 시각은 낙관적이었다....
경력 40년, 밴쿠버 대표 '강태공' 강신정씨
1992년에 만들어진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주인공은? 우선 등장하는 이름은 말할 나위없이 브래드 피트겠지만, 20여 년 전 극장 간판에 대한 기억이 보다 선명한 몇몇 사람들은 물...
박찬봉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박찬봉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평통) 사무처장이 밴쿠버를 방문해 23일 버나비 시내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16기 평통 캐나다서부협의회 출범식에 참석했다. 박 사무처장이 이끄는...
서부캐나다한인산악회 이순근씨의 유쾌한 산행 예찬
낯선 땅에 정착한 이민자에게 성공은 무엇일까? 넓직한 마당을 과시하는 하우스와 그 앞에 주차되어 있는 고급 자동차가 성공의 첫 번째 모습이 될 수 있겠다. 반듯하게 자라나 부모의...
3년 임기 마치고 귀임하는 KOTRA 양국보 관장
“제가 한 게 뭐 있나요. 다 무역관 직원들 덕입니다.” 3년간의 밴쿠버 무역관 생활을 마치고 귀임하는 양국보 관장의 소회다.4일 귀국 비행기를 타는 양 관장은 밴쿠버 발령 전 가졌던...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