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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4-03-15 15:14

2024년 밴쿠버문학 신춘문예 공모전 대상
1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푸시킨의 시가 서두에 놓인 기사였다. 퇴근을 앞둔 마지막 교정이었지만, 이미 야근이 계속된 터라 피곤이 몰려왔다. 고골이 푸시킨을 200년에 한번 나올법한 작가라고 치켜세운 부분에서는 집중력을 잃고 교정지 위에 빨간 펜으로 기다란 선을 긋고 말았다. 그러다 나의 관심을 끈 건 뜻밖에도 푸시킨의 아내였다. 푸시킨은 러시아 상류층 사이에서 미인으로 소문났던 나탈리아 니콜라예브나 곤차로바에게 청혼하고, 1년 후 결혼했다. 하지만 아름다웠던 그녀는 결혼 이후에도 염문설에 휩싸였고 끝내는 그녀와 염문설이 난 한 남자와 결투를 하면서 푸시킨은 죽음을 맞았다. 여기까지 교정을 보다가 얼마나 아름다운 얼굴일까 호기심이 들어 인터넷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나탈리아 니콜라예브나 곤차로바]
여자의 초상화는 다양하게 남아 있었다. 하얀 피부에 오뚝하게 선 코, 고운 눈썹과 깊이 있는 눈매, 목에서 어깨로 떨어지는 가냘픈 선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장발의 남자 사진이 있었다. 그의 사진 밑에는 기다란 러시아 이름, 그러니까 [나탈리아 니콜라예브나 곤차로바]가 적혀 있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사진을 클릭하자 인터넷 창이 한 블로그로 이동했다. 


2
대학교 3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야간 수업을 들었으므로 주간 수업을 마친 윤해가 내 강의 시간까지 뭘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포켓볼을 치자고 했다. 저녁 시간 당구장은 담배를 물고 당구대 끝을 노려보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도서관에서는 시들했던 눈빛들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초크로 당구대 끝을 비비며 왜 웃느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나 당구 선수하면 인기 많을 것 같지 않아?” 
그러자 당구장에 있던 남자들이 일제히 내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모두가 하던 당구를 멈추고, 뭔가에 홀린 듯 입을 벌린 채. 자세히 보니 남자들의 시선은 내가 아닌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높이 매달아놓은 자그마한 텔레비전이었다. 그 속에서 한 걸그룹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찰랑이는 황금색 미니 원피스를 입은 그녀들은 빛이 나고 있었다. 
나는 괜히 심드렁해져서 윤해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너는 왜 안 보냐? 여자가 봐도 너무 예쁘다.” 
“그냥. 나는 다른 음악 장르가 좋아서.”
그는 초크를 내려놓고 순서를 정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공을 쳤다. 

“그래서 무슨 음악이 좋은데?”
해보나마나 한 포켓볼 대결에서 나는 윤해에게 지고, 치킨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치킨이 나오기 전 우리는 뻥튀기를 가운데에 두고 맥주를 마셨다. 윤해는 과묵한 편이지만 이따금 웃기는 재주가 있었다. 
“키노의 음악이 좋아.” 
“키노? 일본 사람이야?”
“80년대 활동한 러시아 밴드야. 보컬이 고려인 3세래.” 
“보컬이 고려인이라고?”
“너 고려시대를 떠올린 건 아니지?”
이런 이상한 지점에서 윤해는 웃겼다.  
“너 러시아어 할 줄 알았어? 들으면 뜻을 알아?”
“아니. 번역해놓은 걸 찾아보는 거지.”
“80년대에 활동한 거면 우리가 막 태어나서 천에 둘둘 쌓여 있을 때잖아. 나는 오래된 이야기가 좋더라.”
“나도 오래된 이야기가 좋아. 그래서 키노에게 끌린 건지도 몰라.”
윤해는 반갑다는 듯 맥주를 들어올렸다. 나는 기름이 잔뜩 묻은 오른손으로 맥주잔을 들어, 윤해의 잔에 부딪쳤다. 
“근데 그 밴드는 어떻게 알게 됐어?”
“내가 우리 이모 얘기한 적 있지?” 
“응. 피아노 전공했다는 이모.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잖아.”
“맞아. 이모가 러시아어를 한글 발음대로 적어서 벽에 붙여놓고 그 앞에서 노래를 불렀거든. 난 그때마다 이모가 뭘 하는지 궁금해서 열린 이모의 방 틈을 쳐다보곤 했어.”
윤해의 이모는 벽에 붙은 가사를 진지한 표정으로 불렀다고 했다. 가끔 가사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눈을 찌푸리며 어려운 발음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윤해는 낯선 이모의 모습을 숨죽이고 쳐다봤다. 긴 머리를 정갈하게 반 묶음 하고 피아노 의자에 걸터앉아 우아하게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모는 노래를 마치면 자신을 보고 있던 윤해에게로 고개를 돌려 조용히 웃었다.
“윤해야, 그 노래 부를 줄 알아?”
“당연하지. 이모가 나가면 이모 방에 붙은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불렀으니까.”
“불러줘. 어떤 노랜지 듣고 싶어.”
우리는 남은 치킨을 포장하고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렇게 도착한 노래방에서 윤해는 러시아어 자막 노래를 능숙하게 불렀다. 노래를 듣고 있으니 윤해가 점점 더 좋아졌다. 
“윤해야, 이모는 키노를 어떻게 알게 된 거야?” 
그가 노래를 부르다 말고 나를 쳐다봤다. 물론 앞의 질문은 노랫소리에 묻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뭐라고?” 
우리는 음악을 끄지 않은 채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내 얼굴 가까이로 다가와 귀를 기울였다. 
“이모 말이야. 이 노래를 어떻게 알게 됐을까 궁금하다고!”
그러자 윤해는 나에게 굽혔던 몸을 펴고 흘러나오는 음악과 무관하게 에코 가득한 마이크에 대고 대답했다. 
“이모가 좋아했던 남자가 즐겨 부른 노래였대. 이모는 온통 그 남자한테 영향을 받고 변했어.”


3
장발의 남자 사진을 클릭하자 이동한 블로그에서는 키노의 보컬, 빅토르 최를 소개하고 있었다. 키노는 대학 시절 윤해가 좋아한다고 했던 밴드였지만 나는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아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었다. 우연히 오늘에서야 밴드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빅토르 최와 나탈리아 니콜라예브나 곤차로바가 왜 함께 검색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인터넷은 검은 바다처럼 이따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타나기도 하니까 그것이 이유가 아닐까 짐작하기만 했다. 
교정을 미뤄두고, 키노의 노래를 듣다 회사를 나왔을 땐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다. 회사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 정도다. 몇 년간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출퇴근을 해오다 돈을 부지런히 벌려면 회사 근처에 살며 체력을 비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마련할 돈은 없었지만 돈이 계속 필요하니 얻어야 했던, 이상한 집이었다. 이혼하고 고생하다 몸이 망가진 엄마는 평균 수명에 한참 못 미치는 나이에 돌아가셨고 동생은 결혼해서 살고 있었다. 혼자 사는 작은 집은 잠시 머무르는 장소처럼 안정감이 없었다. 집으로 걸어오는 사이,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언니, 아빠가 드디어 죽었어.”
오늘은 동생이 혼인신고를 하면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보겠다고 한 날이었다. 아버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우리는 매년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나는 문자를 확인하고 들뜨지 않으려 발걸음을 차분히 누르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와서는 불도 켜지 않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이 집에 들어서면 느꼈던 불안함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철새가 계절을 따라 이동하기 전에 잠시 발붙이는 작은 땅처럼 나도 이 집에서 언제든 떠날 마음으로 지냈던 거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사는 안정감을 나는 이때까지 가져본 적이 없었다. 뛰어온 것도 아닌데, 숨이 부족했다. 두통이 찾아오더니 이내 천장이 돌기 시작했다. 
 그때 빙글빙글 천장을 휘저으며 불쑥 나타난 주먹 하나가 얼굴을 때렸다. 나는 스프링처럼 침대에서 튀어 올라 집 밖으로 나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 돌아보니 뒤따라오는 검은 형체가 있었다. 어둠을 이끌고 올라온 그것은 죽은 아버지였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만든 환상에 쫓길 때마다 나는 그 두려움에 붙잡히지 않으려 뛰어야만 했다. 도망치는 건 나의 자랑이었다.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를 피해 뛰어다닌 어린 날이 이 밤까지 이어졌으니, 달리는 건 도망의 역사로부터 단련된 거였다. 계속해서 달리다 보니 동네의 오르막 끝에 다다랐다. 그러자 마지막 집에서 동생을 둘러업은 엄마가 어린 내 손을 잡아끌며 뛰어 나왔다. 두려움에 떠는 세 모녀는 아버지의 형체를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향해 소리쳤다. 
“엄마! 이제 괜찮아.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아도 돼!” 
달리던 엄마가 멈춰 서서,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검은 아버지는 멈춰선 세 모녀를 지나치고도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어둠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점점 멀어지면서 작아지고 새까매졌다.


4
내가 어렸던 나날 동안 엄마의 도망에는 일리가 있었다.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집안 살림을 집어 던지는 것에서부터 기어코 엄마를 잡아 패는 래퍼토리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어린 나이에도 엄마의 그늘진 몸과 후회에 가득 찬 걸음걸이를 보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언제든 도망갈 이유는 충분해서 나는 유치원에서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부르다가도 집으로 뛰어오곤 했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자 엄마의 도망은 길어졌고 아버지에게 붙잡혀 들어올 때마다 폭력의 강도는 점점 세졌다. 
엄마가 도망간 어느 밤엔 아버지가 무엇도 참지 못하고 온갖 걸 던졌다. 그리고 상다리를 부러뜨려 나에게 휘둘렀다. 상다리에 튀어나와 있던 못이 팔을 깊이 찔렀지만 소리 지를 새도 없이 방으로 몸을 숨겨야만 했다. 그날 아버지가 술기운에 쓰러지자 나는 잠든 동생을 들쳐 업고 조용히 집을 나왔다. 멀리 달아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아파트 옆 동으로 들어가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물론 쉽게 문을 열어주는 곳은 없었다. 다행히 따뜻한 날이어서 놀이터에서 동생을 무릎에 눕히고 꾸벅꾸벅 졸았다. 이것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물들었던 어린 날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모든 퍼즐을 맞추려면 나는 더 많은 폭력에 아파하고 도망가는 엄마의 뒷모습과 잠든 동생을 보며 외로워야 한다. 하지만 이 고통은, 외로움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이해될 수 없는 버거운 불덩이인 것이다. 내 안의 커다란 불이 나를 활활 태워서 재가 되어 날아다니길 바랐다. 그래서 어디로든 떠돌다가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안전한 곳에서 웃으며 사는 엄마를 스치고, 놀이터에서 노는 동생을 스치고, 홀로 처참하게 늙는 아버지를 스쳐 여기저기로 흩날리길 원했다. 하지만 재가 되기에는 난 너무 어려서 한참을 더 살아야 했다.


5
윤해는 내가 불안해할 때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 기다리면 죽는 날이 온다고.”
“그래도, 나는 아빠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4학년 1학기의 초여름이었다. 우리는 볕이 좋은 날엔 도서관 앞의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누구나 죽게 되어 있으니, 조급해하진 마. 행여 네가 먼저 죽게 된다고 해도 그때부턴 그 기억으로부터도 해방이니까, 여러모로 해결되는 거야.”
“너무 남 일처럼 말하는 거 아니야?”
“지켜보라는 거야. 시간에 따라 서서히 죽어갈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폭력은 반응이 있을 때 더 격렬해지잖아. 그냥 가만히 나는 폭력 없이도 당신이 죽을 거라는 걸 알아, 하는 무관심으로 바라봐. 그런 태도도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어.”
초여름 특유의 부드러운 바람이 마음을 가라앉히듯 불었다. 나는 윤해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았다. 그때 맥락 없이 윤해의 이모가 떠올랐다. 
“윤해야. 이모는 어쩌다 사라진 거야?”
“꽤 오래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어. 가방이 컸어.” 
그날 윤해의 할머니는 이모가 여행을 가겠다며 큰 가방을 꾸리자 쓰러지셨다. 더 이상 피아노도 치지 않겠다는 이모 때문에 속을 앓던 차에 화병이 폭발한 것이다. 할머니가 쓰러지자 이모는 가방을 들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윤해는 그날 집안 식구들의 눈치를 살피며 잠을 설쳤다. 그러다 어른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이모의 방문을 살짝 열었는데, 이모는 가방을 손에 든 채 키노의 노래 가사 앞에 서 있었다고 했다. 윤해가 이모에게 “괜찮아?” 하고 묻자 이모는 윤해의 키에 맞춰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윤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윤해야. 크거든 사랑을 해. 사랑하지 않으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이모가 사라졌다는 할머니의 외침에 가족 모두가 깨어난 건 동 트기 전, 새벽녘이었다.

“이모는 그날 이후 사라졌어.”
바람이 잦아들 때쯤 윤해에게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윤해, 너는 지금 살아 있어?”
윤해는 내 뺨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벤치 근처에서 들린 소리에 몸을 숙이고 두리번댔다. 그러자 윤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어디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
“어디?”
“어, 저기다. 저기에서 방금 또 들렸어.”
나는 벤치 앞 잔디밭에 놓인 검정색 비닐봉지를 가리켰다. 윤해가 비닐봉지를 집어 들어 안을 살폈다.
“거북이야.”
“거북이? 누가 갖다버린 건가? 비닐봉지에서 꺼내놓고 가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검정색 비닐봉지에서 거북이를 꺼내 잔디밭에 내려놨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가는 거북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거북이는 보통 말썽을 부리는 녀석은 아니잖아? 비닐봉지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너무 깜깜하다고 생각했겠지.”
“응. 깜깜한 비닐봉지 안에서 이 밤은 이상하게 미끄러지네 하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이런 밤도 있구나. 내가 이런 밤도 겪어보는구나.”
윤해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왜?” 
“사실, 나는 네 시가 별로라고 생각했어.”
나는 윤해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졸업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시를 쓰던 시기였다.
“내가 시 읽어줄 때마다 힘들었겠는데? 왜 진작 말하지 않고.”
“그야 재밌으니까 힘들지 않았지.”
“뭐야, 별로였다며.”
“시에 담긴 이야기가 재밌었어. 시보다는 이야기에 더 소질이 있는 거 아닐까?”
나는 어느새 사라진 거북이를 찾아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모르겠는 나의 미래와 제 기능을 잃은 소질, 그리고 붙잡고 싶은 윤해와의 관계 앞에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시를 쓰던 와중에 나의 모든 감각이 윤해의 이모에 대해서 쓰고 싶어 한다는 걸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이모를 변하게 한 무명의 남자에 대해 쓰고 싶었다. 나는 윤해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해야, 너의 이모를 변하게 했다는 그 남자를 모티브로 시를 써 봐도 될까?”
“글쎄. 그 남자, 이모가 반했다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사람이었어.”
“왜 그렇게 생각해?”
“얼마 전에 일주일 정도 시골에 갔던 거 기억해?”
“응. 교수님한테 얘기도 없이 빠졌었잖아.”
“그 남자가 보낸 우편물이 집에 왔어. 그래서 가족 모두가 모이게 됐던 거야.”
윤해와 가족들은 ‘저는 유영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남자의 편지, 이모가 남자에게 남긴 편지, 이모의 여권, 그리고 눈 쌓인 자작나무 숲 사진을 둘러싸고 앉았다. 가족들은 그 순간 이모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고 한다.
“미안해. 그 남자로 이야기를 써보겠다니. 내가 철이 없었어.”
“아니야. 써도 좋아. 다만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걸 강조해서.” 
‘그 자작나무 숲 사진이 보고 싶어’라는 말이 순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조심성 없는 생각에 놀라 서둘러 윤해와의 전화를 끊었다. 


6
윤해와 나는 졸업 후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취업을 했다. 서로를 보려면 몇 시간이 걸렸다. 자주 못 보는 것만큼 빠르게 마음이 멀어지는 일도 없다는 걸 알게 된 시기였다. 그래서 윤해는 서둘러 결혼하길 원했지만 나의 폭력적인 가정사를 윤해의 집에서는 탐탁지 않아 했다. 폭력의 기억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시기라 윤해 부모님의 태도에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 더 이상의 노력을 하고 싶지 않았다. 윤해도 놓아버리고 싶었다. 어쩌면 윤해를 사랑한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해서 헤어진 게다. 그의 탓도, 그의 가족 탓도 아닌 이별이었다. 나에겐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남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사랑은 이성과의 교제에서 늘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하지만 윤해를 통해 왜곡되고 따뜻한 적 없던 사랑의 개념이 많이 치유되었다. 결국 모든 추억과 헤어짐의 이유 끝에서 윤해에게 고마움만 남았다.

윤해와 헤어지던 날, 그가 나를 두고 멀어지는 뒷모습이 어색하기만 했다. 내가 너의 볼을 매만졌던 적이 있었나? 나에게 키노의 노래를 불러줬던 게 너였었나?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던 날들은 꿈이었나? 이런 기억들이 넘어진 어린아이의 한바탕 울음처럼 쏟아졌다. 윤해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윤해를 만나며 소원했던 기도문들이 의미를 잃고 거리에서 나뒹굴었다. 그것들은 미처 주울 새도 없이 뻥뻥 발에 채여 날아갔다. 걸어가는 윤해의 곧은 등, 흔들리는 어깨와 팔, 다리, 전체적인 뒷모습을 차근차근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다급히 혼잣말로 인사했다.
“윤해야, 잘 가.”
바람도 불지 않는데 윤해가 손에 쥐어주고 간 것들이 날아갈까 힘을 주어 붙들었다. 무명의 남자가 윤해의 가족에게 보낸 편지와 윤해의 이모가 무명의 남자에게 남긴 편지, 그리고 자작나무 숲 사진이었다. 이야기가 된다면 언제든 써도 좋다면서 윤해가 주고 간 것이다. 두 개의 편지는 윤해와 헤어지고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후에야 읽을 수 있었다. 그 편지들은 기억에서 희미해져 있다가 얼마 전 빅토르 최를 소개한 블로그를 보고 다시 꺼내 읽게 되었다.

무명의 남자가 윤해의 가족에게 보낸 편지
‘저는 유영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여행을 오랫동안 계획했었습니다.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여행은 순조로웠습니다. 하지만 눈이 내리는 벌판을 창밖 배경으로 삼아 오랜 시간 열차를 타는 건 좋은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방금 지나간 것 같았던 자작나무 숲이 다시 열차를 향해 오고, 앞서 기다리던 숲은 그새 사라져버리는 풍경의 연속이었습니다. 동그랗게 말린 풍경이 열차를 자기 안에 놓고 굴리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무너진 세계로 떨어진 것처럼 무기력해져 있었는데 유영은 자작나무 숲을 하염없이 보며 눈을 떼지 못하더군요. 유영이 사라진 건 열차에 탄 지 며칠이 흐른 후, 짧게 정차하는 역을 지나면서입니다. 화장실을 다녀와 보니 그녀가 없더군요. 통로를 살피며 유영을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차가 속도를 내기 직전에 창밖을 보니 유영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녀가 쌓인 눈에 푹푹 빠지는 발을 힘겹게 옮기며 자작나무 숲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열차는 점점 빨라졌고 속수무책으로 그녀와 자작나무 숲을 두고 떠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자리에 남긴 편지로 마음을 달래보려 했지만 결국엔 무책임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후로 저는 꿈에서 시베리아의 바람소리와 자작나무 숲의 광활함에 시달리다 깨곤 합니다. 지금이라도 그녀가 내렸던 곳으로 저도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그녀의 소식을 뒤늦게 전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녀가 저에게 남겼던 편지도 함께 부칩니다.’


윤해의 이모가 무명의 남자에게 남긴 편지
‘내가 이 먼 나라까지 오게 된 건 당신을 사랑해서예요. 하지만 더 이상 사랑하는 것은 열차 안에 없어요. 열차 밖에 있어요. 나는 여기에서 내릴 테니 당신은, 당신의 목적지로 계속 가요.’ 


7
윤해와 헤어진 후 시 하나를 제대로 완성한 적이 없었다. 번번이 연애에도 실패했고, 편집 일에만 몰두하면서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다. 텍스트로 가득한 종이 무더기에 파묻혀 사랑이 없는 상태의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 나는 버려진 돌이어도 괜찮다고, 삶에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했었다. 그러다 푸시킨의 아내를 검색하면서 빅토르 최를 알게 되었고 다시 윤해를 떠올리며 그와 보냈던 시간들을 찬찬히 돌아봤다. 그 추억 사이에서 윤해에게 살아 있냐고 물었던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됐다. 난 사랑을 하지 않으니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윤해가 내게 주었던 사랑을 떠올릴수록 그의 이모가 사랑을 좇아 내린 자작나무 숲을 상상할수록 죽어 있는 내 삶이 보잘 것 없어 보였다.

토씨 하나 고치지 못하게 하는 러시아 문학 교수는 오자를 고친 나의 무례함을 물고 늘어졌다. 그는 전화로 온전히 화를 풀지 못해, 편집실까지 찾아와 나에게 원고 뭉치를 던지며 일방적인 화풀이를 해댔다. 교수가 돌아간 후 나는 가만히 윤해를 떠올리며 교정지 위에 긁적였다.
‘내가 했던 가장 착한 일은 너야. 나는 선량하고 싶어. 버려진 돌처럼 차가운 물성에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아. 나도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서 살아 있고 싶어졌어.’

편집장은 내게 그만두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러시아 문학 교수 때문이라고 했다. 아니 푸시킨의 아내 때문이라고 대답을 정정했다. 편집장은 어이없어 했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퇴직서를 내고 집에 돌아와서 짐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침대를 뺀 나머지 가구들은 원래 놓여 있던 것들이라 처분하느라 애 먹지 않아도 되었다. 책꽂이에서 책들을 꺼내고 보니 뒤편에 숨어 있는 책 한 권이 보였다. 오래전 윤해에게서 받은 책이었다. 책에 쌓인 케케묵은 먼지를 후 하고 불자 요란한 헛기침이 나왔다. 어느 정도 헛기침이 진정되고 고개를 들었을 때 현관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상상해왔던 윤해의 이모와 어린 윤해였다. 그녀는 윤해의 작은 키에 맞춰 몸을 수그리며 말했다.
“윤해야. 크거든 사랑을 해. 사랑하지 않으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어린 윤해는 이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바라봤다.  
불덩이를 안고 살던 내게 윤해는 근사한 사랑을 알려줬다. 이모에게서 일찍이 깨우친 살아가는 방법을 내게 알려준 것이다. 단출한 짐을 금세 싸고 빈 방에 앉아 한때는 사랑했던 우리의 잔상을 떠올렸다. 조용하고 작은 방에 먼지들이 나풀대는 게 보였다. 아무도 없는 현관에서는 바깥바람 소리가 들렸다 희미해졌다.


8
내가 이제와 무엇을 사랑할 수 있는지 곰곰이 떠올렸다. 그 대상이 윤해가 될 수 없는 건 확실했다. 그럼 무엇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내 안에 놓인 차가운 돌을 마주하고 물었다. 돌은 오랜 고민 없이 스스로의 몸에 답을 새겼다. 
‘자작나무 숲으로.’
이미 사랑으로 기울어진 방향은 정확했다. 윤해의 이모가 들어섰던 자작나무 숲. 어쩌면 오래전부터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길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동안 모은 목돈과 퇴직금 전부를 동생에게 보냈다. 회사도 그만뒀으니 당분간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이후에는 러시아로 가는 일을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러시아의 겨울은 매서웠다. 가져간 두꺼운 옷을 겹쳐 입고 독한 술을 마셔도 잠시만 열차 밖으로 나가면 곧 얼어 죽을 듯한 추위에 몸이 떨려왔다. 열차는 한국에서 지내온 시간들을 잊게 할 만큼 부지런히 달렸다. 시간은 소용없었다. 열차는 그저 달렸고 눈은 계속해서 내렸으며 낮에도 밤에도 자작나무는 끊임없이 나를 따라왔다. 그렇게 며칠을 달렸을까. 비슷한 자작나무 숲을 계속 봐왔는데도 부쩍 마음이 가는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열차가 그 숲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작나무 숲이 열차를 향해 오고 있었다. 
열차에서는 잠시 정차할 거라는 방송이 흘렀다. 열차가 속도를 늦추자 그 자작나무 숲은 더욱 거대해 보였다. 자작나무의 메마른 가지 위에 눈이 쌓이고 있었다. 연약한 가지는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앙상한 것들은 모여 있으니 더욱 외로워보였다. 고고하게 높이 솟은 나무들을 보며 사랑은 혼자서 온전히 설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오히려 외로움이 서로에게 기대어 있을 때 사랑과 다른 차원의 위로가 된다는 것도. 
‘그래, 이곳이 윤해의 이모가 내렸던 자작나무 숲이야.’

열차가 멈추자 나는 모든 것을 자리에 두고 내렸다. 눈을 맞으며 자작나무 숲 가까이로 다가갔다. 뚝 떨어져 나온 작은 세상처럼 뭉쳐 있는 자작나무 숲. 숲 속의 내부는 하얗게 내리는 눈마저 빨아들일 듯 새까맸다. 
슬픔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어떤 것도 가볍게 다룰 수 없는 개인적인 무게를 지닌다. 그만큼 자기의 슬픔은 타인의 이해를 구하기도 어렵다. 그렇게 각자는 외로워서 서로 사랑한다. 나는 사랑했던 오래된 마음만 지닌 채 차가운 돌처럼 살았다. 하지만 지금, 자작나무 숲에 다다르고서야 온전히 살아있다는 마음이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망연히 서서 눈을 맞으며 자작나무 숲을 바라봤다. 등 뒤로 열차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열차가 달리는 소리, 눈 내리는 소리, 힘이 약해 부서지는 나뭇가지 소리, 새가 날아오르는 소리, 윤해의 노랫소리, 쌓인 눈 위를 푹푹 밟으며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소리.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는 엄마의 걸음걸이. 나는 엄마를 향해 팔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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