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한힘 심현섭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1-02 16:15

한힘 심현섭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며칠 뒤 한국으로 떠난다는 김시인을 만났다.
왜 떠나려 하느냐는 말에 그는 말했다.
“여기는 더 이상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
그의 입에서 ‘외롭다’는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는 늘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외롭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여름 한 철에는 정원 가꾸는 일을 노는 날도 없이 하다가 낙엽이 지는 가을이 오면 어디론가 훌훌 날아가곤 하였다. 궁금해서 연락을 하면 ‘여기는 티베트입니다. 네팔입니다.’ 하다가 또는 몽고 평원의 게르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화려한 유럽 여행은 제쳐두고 남미 같은 야생의 문명을 보러 다녔다.
물론 동행자 없이 항상 홀로 다닌다. 이번에도 한국 가면 일본 여행이나 오래간만에 가야겠다고 했다. 온천이 나오는 지방 도시에서 자신의 말로 거지처럼 여행한다고 한다.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많고 몇 끼씩 굶다가 길거리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자는 건 제일 싼 여인숙에서 딱 하루씩만 잔다고 한다.
여행을 하자는 건지 고행을 하자는 건지 분간이 안 가는 여행이다. 그것이 그가 사는 삶의 스타일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인생이 바로 ‘방랑’이라고 했다. 방랑 같은 인생 속에서 그는 매일을 방랑하며 사는 셈이다.

한국에서 음식점을 하며 돈도 어지간히 벌었는데 이혼하는 바람에 거의 다 주고 자기는 빈 주머니가 되었다고 한다. 살아가는 데 돈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열심히 움직이면 돈이 생기고 있는 만큼 쓰면서 사는데 돈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어찌 어찌 하다가 캐나다로 이민을 오고 밴쿠버에서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스시집에서 일을 하다가 직접 스시집을 운영하기도 하였는데 오래 못하고 그만 두었다. 다음에는 작은 트럭을 하나 사서 잔디를 깎고 정원을 손질해 주는 일을 시작했다. 단골이 생기고 잘 했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그는 그 일을 오래도록 했다. 일당이 쏠쏠하다고 자랑도 했다. 어느 날 집으로 초대해서 갔더니 조그만 마당이 딸린 이층 목조집인데 전부 세를 주고 자신은 1층 한 구석에 있는 작은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사람 하나 누우면 다 찰만한 작은 방 한 가운데 둥근 상 위에 양주 한 병과 치즈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집에서 술을 마신다고 한다. 술을 마시면서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하고 더러는 시를 쓰기도 하였다. 그가 쓰는 시는 난해하다. 그 만큼 외로운 삶을 살아본 사람이라야 겨우 이해가 가는 시였다. 가끔 마시는 술이 아니라 일이 끝나고 나면 거의 매일 마신다고 한다. 마시다 취하면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든다. 다음 날 일이 있으니 늦게까지는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얼굴은 언제나 붉은 빛으로 까맣게 타있고 닳아빠진 모자를 쓰고 앞에 앉으면 별로 말이 없다. 칠십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아이도 없고 가족도 없고 일가친척도 없는 혈혈단신이다. 몇 년 전 집값이 많이 올랐다며 집을 팔아서 한국에 텃밭이 있는 작은 집을 사겠다고 했다. 집을 사면 정주를 해야 하는데 떠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알고 보니 아파트를 샀고 집에서 살 날짜가 일 년에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아 관리가 쉬운 아파트에 살기로 했다고 한다.

코비드 기간 동안 영 소식이 없더니 나를 핏 메도우 블루베리 농장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밴쿠버 병원에서 간경화가 많이 진행되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진단을 받고 한국으로 가서 죽을 준비를 했는데 정밀 검진 후 오진이라는 게 밝혀졌다고 했다. 어쨌든 죽다가 다시 살아난 기분으로 한 동안 술도 안 마셨는데 얼마나 산다고 먹고 싶은 술도 안마시고 살겠느냐는 생각에 조금씩 다시 마시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떠나면 언제 오느냐‘고 내가 불쑥 물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씨-익 웃더니 ’지금으로서는 돌아올 기약이 없네요. 있고 싶을 때까지 있으려고요.‘ 정원일은 남에게 넘겨주고 은퇴한 셈이라 일도 없고 밴쿠버 생활을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전에는 암자를 찾아 며칠씩 머물고는 했는데 이번에도 깊은 산속 외진 암자를 찾아 전국을 일주해 보겠다고 하였다. 언젠가 스님 한 분이 당신은 중이 될 팔자라고 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사는 모습을 보면 나는 왜가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가에 멍하니 홀로 서있는 왜가리는 둘이 있는 걸 못 보았다. 그렇다고 홀로 서 있는 왜가리는 외로움을 느낄까? 보는 사람은 왜가리를 외롭게 여기겠지만 왜가리 자신은 지나가는 물고기에 온 신경을 기우리며 긴장하느라 외로울 사이가 없다. 
“한국에 가도 외롭긴 마찬가질 텐데 어떻게 지내려고?”
걱정스럽게 내가 물었다.
“일을 계속 하면 외로움을 느낄 사이가 없는데 일을 안 하니까 힘이 들어요. 그래서 그동안 해오던 그림 작업을 더 열심히 하고. 시 쓰기도 부지런히 하면서 시집도 출판하고, 한두 가지 일들을 더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역시 여행 다니는 게 제일 좋지요.“
은퇴자의 삶에서 이럴 때 ‘바람의 사나이’가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한국 가면 누님들도 찾아보고 친구들도 만날 터이니 좋겠다고 내가 말했다. 
“한국에 있을 때나 캐나다에 와서나 누님들은 서로 보지 않는 사이에요. 만나고 싶지 않아요.”
큰 누님은 미스코리아 나갈 만큼 미인인데 지금도 예쁘다고 한다. 누나들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컸는데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외톨이가 되었다. 자세한 가정사는 알 길이 없고 누님들은 다 잘 산다고 한다. 한번은 제주도에 놀러가자고 해서 같이 갔는데 으리으리한 신라호텔에 방을 잡아 ’나는 이런 방에서는 잠을 잘 수 없다‘고 호텔을 뛰쳐나와 찜질방에 가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들어가니 누나가 한숨을 쉬면서 “너는 정말 어찌 할 수가 없구나”하더라는 말을 했다. 이것은 그의 삶을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동생을 생각해서 좋은 호텔을 잡았는데 도저히 잘 수 없다며 뛰쳐나간 그런 동생을 이해하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누님의 성의를 봐서라도 자기 취향이 아니라도 하룻밤 못 잘게 뭐냐고 내가 말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는 단호했다. 
“아니오, 잘 수 없어요.” 목소리에 힘이 담겼다.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왜 느끼는 것인가?
혼자 있으면 외로운 것인가.
혼자 있다는 것과 외로움은 같은 것인가.

외로움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사랑의 목마름이다. 
사랑하거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상태이다. 
사랑 밖에 있을 때 외로워진다. 
사랑 결핍상태이다.

「외로움은 주관적 현상이다. 인간관계가 희박하거나, 아니면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친밀감의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해서 인간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외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에드먼드 버크는 완전한 고독을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으로 보았다. 평생을 고독하게 사는 삶은 인생의 목적 그 자체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존 로크는 외로움이 자연에 어긋난 인간의 상태라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신이 인간을 자신의 동족들과 어울려 살 수밖에 없게끔 창조했기 때문이다」
<외로움의 철학> 노르웨이의 철학자 라르스 스벤젠

긴 이야기로 커피 한 잔이 부족했다. 우리는 헤어지면서 내년 봄에 온양역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역 앞에 있는 김시인의 단골 소머리국밥집으로 가서 소주 한 잔 하자고 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위잉잉!“뭐야! 기분 나쁘게.”나는 이어폰 볼륨을 좀 더 높였다.‘바보야, 그래가지고 들려? 더 높여야지!’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이상하네? 녹음할 때 잡음이 들어갔나? 내 귀가 잘못됐나?’나는 이어폰을 뽑고 면봉을 찾아 귀를 후볐다.‘아악! 하지 마! 아파!’“엄마야!”나는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안은 고요했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 음악을 더 크게 틀었다.‘히히, 볼륨을 더, 더 크게 올려야지!”“누, 누구야?”소름이 오소소...
이정순
절친 2024.04.30 (화)
   자연 속에는 서로 반겨주는 친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울긋 불긋 물든 단풍과 그와 잘 어울리는 단짝 낙엽, 따스한 봄 볕과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개나리, 흐르는 강 줄기와 강물에 치덕 치덕 내리는 빗줄기. 며칠 전 강변에서 비 님과 호젓한 시간을 보내었어요. 우산에 떨어지는 사근 사근 빗방울 소리 들으니 공연히 실룩 거리는 입에서 맥없는 웃음이 나왔어요.저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꼭꼭 숨겨둔 절친이 있어요....
박혜경
송금 전표 2024.04.30 (화)
낡은 지갑 속에서낡은 쪽지 한 장을 발견 한다아버지 이름으로 입금된 송금 전표싸늘한 시체처럼 싸느랗게 떠오르는 이름 석 자이제 그 이름으로 입금 시킬 아버지가 없다적은 금액 속에 묻어 나는 까만 눈물풍수지탄風樹之嘆, 풍수지탄風樹之嘆내 얄팍했던 지갑이 원망스럽다아니다, 아니다 얇은 지갑이 죄가 아니다지갑 속에 숨어 있던 내 양심이 죄다아버지께 송금된 마지막 교신이 세상 큰 바다를 건너가신 마지막 흔적이제는 입금 시킬 곳 없는...
이영춘
봄밤 2024.04.22 (월)
언제 와 닿았을까벚꽃잎 살랑이는 듯한 손짓어리여린 초록빛 말 한마디깡깡 얼었던 맘을 동그랗게 녹여내고눈 녹아 흐르는 개울물처럼속살대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마음이 간질거린다사랑이 왔구나
이인숙
곁에서 2024.04.22 (월)
첫 인터뷰를 했다. 캐나다로 돌아와서 쓸 수 있는 글과 써야 하는 글 사이에서 고민했다.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한인 이민자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을 기록하고 싶었다. 평범한 이민자인 부모님의 낡은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이다. 이민자는 모국에서 만큼 인정받을 기회가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이야기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알아주는 이 없는 한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휘발되기 전에 쓰고...
김한나
  머리가 허연 사내 하나가 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와 동네 골목을 산책 중이다.산책하고 싶어 한 게 개였는지 사내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강아지가 앞장서고 사내가 뒤를 따른다. 강아지가 길모퉁이에 멈춰 서 있다. 아랫도리를 낮추고 볼일을 보는 개를 사내가 조용히 기다려준다. 꽁초 한 개비 마음 놓고 못 버리는 인간의 거리에 천연덕스럽게 응가를? 무슨 상관이냐고, 갈 길이나 가시라고, 녀석이 흘끔 위 아래로 훑는다. 녀석이 일어선다....
최민자
시와 종교 2024.04.22 (월)
고통과 시련으로 가슴에 든 멍을 씻어주는시는 훌륭한 마음의 의사무언가 될 듯 안 될 듯할 때의 괴로움이無 자의 깊은 화두가 되어참회의 순간으로 깨달음을 구하네꽃잎이 지고 말라도 봄 날봄바람은 다시 찾아와꽃을 다시 피우고나비로 다가와 시의 향기를 풍기네때론, 울긋 불긋 가을 바람에귀뚜리 소리가 눈물 짓게 하고하얀 눈 발이 날리는 겨울에는외로움에 시를 쓴다네보고 읽고 듣는 시마다시구는 생겨났다 사라져도생의 길잡이로깨달음이...
강애나
풍경 속 평온 2024.04.15 (월)
햇빛 가리개 구름은머리에 하이얀 솜털을뒤집어 쓴 산봉우리를살포시 허공을 헤엄친다하늘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바다의 모습은 그지없이 평온하다바다와 산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그냥 묵묵부답으로 본연의 자태를 취할뿐아무런 댓가를바라지 않는다하늘과 산과 바다를멀리서 지켜보는저 학동은 그지없이유유자적한데저 멀리서 뜬금없이먹구름 하나가비를 몰고오네 
구대호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