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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바다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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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12-27 16:21

강은소 /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고향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어머니의 존재다.
 코비드를 핑계로 미루었던 고향 방문을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는 미끄러지듯 서서히 바퀴를 굴리다 순간 떠오른다. 점점 점이 되는 집과 산, 호수와 강 그리고 바다, 밴쿠버의 일상이 멀어져 간다. 창밖 저 어둠이 걷히면 마주할 고향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어머니 품속처럼 따스하고 아늑하겠지. 어머니가 살아 계시니 고향이 더 의미 있다. 어머니와 고향, 둘 다 기다려지는 만남이다.

 2023년 새해 달력을 살펴보니 음력 2월이 두 번이다. 양력 3월 22일부터 4월 19일까지가 음력 2월 윤달이다. 윤달은 음력을 사용하는 지역에만 있다. 음력만 사용하던 동양 문화는 태양의 움직임을 담지 못해 계절 변화를 알기 어려운 점이 있어 절기력을 함께 사용한다. 1년을 24절기로 나눈 절기력은 태양의 운동에 따른 계절과 기후 특징을 잘 나타내므로 농사와 생활에 적용돼 왔으니, 음력은 단순한 달의 력曆이 아닌 태음태양력으로 발전했다. 실제로 음력을 24절기에 맞추기 위해 없는 달을 만들어 넣은 덤이 윤달이다. 음력 1년은 양력 1년의 주기보다 약 11일이 짧아, 3년에 한 달 또는 8년에 석 달로 대략 19년에 일곱 달의 여벌 달을 넣어 맞추어 준다. 만일 윤달을 전혀 넣지 않으면 17년 후에는 오뉴월에 눈이 내리고 동지 섣달은 더위로 고통을 받게 된다.
 예로부터 윤달은 공달, 썩은 달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 문화다. 공달은 하늘과 땅의 신이 사람에 대한 감시를 잠시 쉬는 시간으로 불경스러운 행동을 해도 벌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공달에 하는 행동은 했더라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기에 결혼과 같은 행사는 피하고 묘지 이장이나 수의를 만들어 두곤 한다. 여하튼 윤달에 행하는 어떤 일이 길하다, 흉하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의 문화일 뿐이다. 윤달에 하면 좋은 일, 나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윤달의 시간을 적절하게 생활에 활용하면 된다.
 어머니는 어느 해 9월 윤달에 윗대의 묘지 이장을 단행했다. 묘제를 지내는 조상의 산소와 더불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무덤을 정리하여 화장한 다음 모두 자유롭게 놓아드렸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문무대왕릉이 있는 감포 앞바다에서 훨훨 보내 드렸다. 우리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언제나 감포 바다로 간다. 종갓집 며느리로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어머니 생각에 선산의 묘소 관리는 변하는 현대생활 속 뿔뿔이 흩어진 집안과 자손에게 바윗덩어리 같은 짐이다. 당신의 나이 어느새 77세, 늘어진 주름살만큼이나 무거워지고 있으니,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자손이 편하도록 모든 짐은 당신이 안고 간다는 마음으로 윤달을 택해서 일을 치르셨다. 어머니의 깊은 뜻을 새기며 맏딸로서 당신에게 힘이 될 일이 무엇일까 곰곰 궁리했다.
 윤달에 수의를 마련하면 병치레 없이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멀리 떠나와 살다 보니, 필요할 때 어머니 곁에서 살뜰히 보살펴드리지 못해 항상 죄스럽다. 그해 윤달은 지났으니 다가오는 윤달에 어머니 수의를 준비해 둔다면, 한 해가 다르고 하루를 다르게 느끼실 어머니의 몸과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지 않을까. 살아 계실 때, 함께 맛있는 것 먹고 좋은 구경 열심히 다니고 멋지게 차려입도록 도와드리면 당연히 좋겠지만 여건이 맞지 않으니, 떠나실 때라도 제대로 갖추어진 옷 한 벌은 해 드려야겠다. 어머니가 우리 곁에 오래 머물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짐했다. 마음속 간절했던 순간은 이미 흘러간 세월 속 기억이다. 벌써 두 번의 윤달이 지나갔지만, 딸은 아직도 수의를 준비하지 못했다.
 다가오는 2월 윤달에는 꼭 어머니의 수의를 마련해야지, 다시 다짐한다.

 하늘은 맑고 끝 간데없다. 지난번 방문 때는 바깥 활동을 하기에 심각했던 미세먼지와 황사가 코로나 영향으로 한풀 꺾인 탓인지 공기는 상쾌하고 여기저기 색색이 물든 늦가을 정취가 사람을 불러 모은다. 속초, 설악산, 양평, 남이섬을 거쳐서 서울 숲까지 돌며 단풍 든 가슴에 낙엽의 의미를 담았다. 나뭇잎은 말없이 떨어져 한 생을 마무리한다. 사람의 한평생도 그렇게 조용히 마침표를 찍고 잠들면 좋겠다.
 알차게 짠 서울 여정은 순식간에 흘렀다. 동창 모임에 나가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고, 유학생 엄마로 아이들 유학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와 수다를 떨고, 오랜만에 만난 문우와 진지하게 문학 얘기도 나누었다. 모처럼 시댁 식구와 어울려 여행도 다녔다. 실내에선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못하지만, 때맞춘 결혼식과 장례식까지 도리를 다했다.
 여정의 나머지는 오롯이 어머니와 보내는 일정이다. 대구행 SRT 도착 시간을 미리 계산한 어머니는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 나와 계신다. 3년 만에 뵌 어머니. 당신 의지대로 말을 듣지 않는 몸 때문에 많이 약해진 모습이다. 지난 봄 어머니는 직장直腸 일부를 잘라내고 다시 연결했다. 노령이라 빠른 회복을 기대하며 로봇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대변 주머니 없이 퇴원했으니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당당한 걸음걸이를 자랑하던 두 다리는 힘이 빠지고 등과 어깨, 목은 웅크려져 왜소해진 어머니, 당신 모습에 가슴이 저린다.
 어머니의 시간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1년에 한 번 씩 열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이라도 다 꼽을 때까지 함께하기를, 당신의 남은 시간이 누구보다 더 편안하기를 바란다. 오그려 움츠린 몸을 펴보라 자꾸 권하는 여동생의 말은 축 처진 어머니 귓바퀴를 치고 흩어진다. 파도가 거칠게 밀려온다. 어머니와 여동생, 우리는 옷깃을 파고드는 습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스냅 사진을 남긴다. 언젠가 당신이 그리울 때면 우리는 오늘처럼 감포 바다로 달려오겠지. 먼 훗날 우리가 그리울 때면 누군가는 또 우리처럼….
 누군가 그리워지면 우리는 모두 바다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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