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숙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장
저 위에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실 때
그분만이 아는 예치금이 담긴 통장 하나 목숨에 붙여 주셨어요
찾기 싫어도 날마다 줄어드는 통장인데요
건강이라는 이자가 붙어 조금 불어나긴 해요
건강하게 살려면 이렇게 하라 이걸 먹어라
눈으로 귀로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세상만사가 나는 예외란 듯 맘 내키는 대로 살아왔지요
나무 한 그루도 잘 돌보지 않으면 푸른 이파리 벌레 먹고 갈변하듯이
환갑, 진갑 다 지나온 지금 안일하게 살아온 대가를 치르는 중이에요
쭈그렁바가지 삼 년 간다며 골골해도 오래 살라던 시어머니
팔십 오수를 누리다 하늘로 가셨는데
내 통장 잔고는 얼마나 남아있을까요
생일을 맞을 때마다 예금통장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해요
여름을 지나며 옷 서랍을 정리하는데
입지 않고 그냥 낡고 있는 옷들 위로 올해 산 옷들이 거드름 피우고 있어요
번쩍 꾸짖는 소리 섬광처럼 스쳐요
'살아온 세월보다 남은 시간이 더 짧단다.'
그래요
먹물 같던 머리 하얀 서리꽃 밭이니
무언가를 더 장만하기보단 하나씩 버리고 정리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어요
그 어느 날 느닷없이 잔고가 영이 된다고 해도 가뿐히 날아갈 수 있게요
그런데요
잔액을 알면 더 열심히 살지 않을까요
하나님,
아주 잠깐만 통장 잔액을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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