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희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코로나 바이러스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별러 왔던 동생들의 방문길도 열렸다. 혼자 사는 큰동생과 막내 부부가 서로 때를 맞추어 드디어 나를 찾아 주었다. 8월은 분주한 달이었다. 아들 집 아래층(Suite in law)에 사는 나의 조용한 공간이 형제들의 만남으로 꽉 찼다. 거동이 불편한 큰동생의 방문은 어렵사리 준비한 여행이었기에 뜻깊었고, 미국에서 찾아온 막내 부부의 방문은 여의찮은 형편에서 용단을 내린 여행이었기에 감사할 일이었다. 일찍이 작고하신 오빠를 빼고 우리 6명 형제가 모두 모이기엔 이런저런 이유로 불가피했다. 이번에는 3남매만 모였다.
5년 전 형부가 아직 생존해 계실 때였다. 한국에 사시는 언니 내외분이 LA에 사는 조카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우리 6남매가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이벤트를 갖게 되었다. 그때도 방학을 이용한 8월 중순경이었다. 형편이 넉넉한 형부는 애와 어른 모두에게 두툼한 봉투 하나씩 선물을 했다. 그때 모인 친척들은 애들까지 거의 50명이나 되었으니 형부가 큰맘 먹고 거금을 쓰셨다. 조카들이 준비한 전체 가족 모임의 이벤트를 마련했다. 벤치와 피크닉 테이블이 구비된 아름다운 파크를 통째로 빌렸다. 웬만한 식당에서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하기가 쉽지 않은 숫자였다. 우리 형제 중에는 처음 보는 조카며느리도 있었고 조카들이 낳은 3세 아기들을 처음 보는 형제도 있었다. 혈육이라는 끈 때문인지 모두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곧 어울렸다. 아이들도 처음 만났지만, 금세 친구가 되어 놀았다. 큰 조카들은 운동도 하고 어린아이들은 게임도 하고, 우리 어른들은 1세대 2세대로 나누어 그늘에서 담소를 즐겼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전담한 조카가 단체 사진을 찍었다. LA를 떠날 때 조카는 각 가정에 사진을 인화하여 돌렸다. 그 사진은 두고두고 기념되었다.
파크에서의 행사가 끝난 후 우리 여자 형제 4명은 우리끼리의 행사를 또 했다. 큰 조카가 디즈니랜드 건너편 길에 있는 마리오트 호텔 리조트에 큰 방을 예약해 준 덕분에 우리 여자끼리의 달콤한 시간을 가졌다. 호텔 방에서 우리는 모두 동심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사는 언니는 그 당시 81세였는데 우리들을 만난다고 많은 선물을 챙겨 오셨다. 호텔 침대에 선물 보따리를 풀어 진열하셨다.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드레스, 손가방 등.... 그리고 우리의 만남을 재미있게 하려고 특별한 물건을 준비해 오셨다. 조그만 기계 안에 뽕짝 음악을 잔뜩 녹음 해 오신 것이다. 원래 클래식이나 듣던 언니였는데. 언니는 음악을 틀어 놓고 ‘얘 우리 춤추고 놀자’ 우리는 동심으로 되돌아 가 엉덩이를 흔들고 춤추며 놀다가 서로를 쳐다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디즈니랜드에서는 매일 저녁 폭죽을 터트린다더니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길 건너에서 폭죽이 터졌다. 우리 넷은 의자를 창가로 끌고 와 나란히 앉아 팡팡 터지는 불꽃놀이를 관람했다. 육신은 병들고 늙었으나 마음은 여전히 젊어 있었다.
그 후 5년이 흘렀다. 그동안 형부는 하늘나라로 떠나가셨고 우리들은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선뜻 만나보지 못했다. 더욱이 코로나가 지구를 휩쓸고 지나간 지난 3년은 하늘 문이 닫혀서 더욱 그랬다. 온다온다 하던 동생들이 드디어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래 동네 아우님은 많은 식구가 먹을 음식 걱정부터 해 주었다. 그리고 내 일손을 덜어준다고 육개장 국을 큰 냄비 가득 끓여 왔다. 이웃사촌이라지만 내게는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귀한 사람이다. 어려울 때 급할 때 늘 내 곁을 지켜 주는 착한 이웃이다. 또한 학교 후배 부부는 하루 시간을 할애하여 투어를 제공해 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딸과 아들 내외가 휴가 중이어서 후배 부부의 선의의 투어 제공은 받지 않았어도 마음은 훈훈했다. 자기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주겠다는 그들의 선함이 나의 마음을 더없이 훈훈하게 해 주었다. 이웃과의 관계란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역시 사람은 만나면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어야 한다. 밴쿠버는 그 두 가지가 있으니 최고의 관광지가 아닐까! 낮에는 밴쿠버 구석구석 탐방하고 저녁이면 막내 동생의 음식 솜씨로 우리들은 행복했다. 매일 저녁 잔치였다. 나는 배추김치나 겨우 만들어 먹는데 동생은 오자마자 오이 열무김치와 며느리가 좋아하는 배추겉절이부터 담갔다. 매일 저녁 다양한 메뉴가 상에 올랐다. 멍게 샐러드, 매운탕, 낙지볶음, 돼지 목살 묵은지 찜, 이모 표 김밥과 유부초밥... 가히 달인의 경지다. 우리 아이들은 그랜빌 아일랜드(Grandville Island)에서 사 온 게와 해산물로 밴쿠버 특산물 요리로 상을 차렸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 주는 메뉴라야 기껏 김치찌개 정도인데... 며느리를 포함한 우리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모, 여기로 이사 오세요’ 라 할 정도로 이모의 요리 솜씨는 달인의 경지였다.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도 있는 법이다. 2주간 동생들의 방문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혼자 사는 큰동생에게는 몇 끼 식사가 해결될 것들을 챙겨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막내가 떠날 때도 BC 특산물 이것저것을 챙겨 넣어 주었다. 부디 잘 살라 기도하면서.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크거나 작거나 가족 상봉은 진한 혈육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큰동생은 떠나기 전에 기념으로 제 조카들에게 화초 하나씩 선물을 했다. 뒤뜰 화단에 조카와 함께 또 다른 가족 상봉의 기원을 심어 놓고 떠났다. 8월도 벌써 다 지나고 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김춘희 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