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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순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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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5-09 09:15

한승탁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동물도 부부사이를 아는가? 취미로 짓는 농지 일부에 블랙베리 등 잡초가 많이 자라 동물을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금부터 약 10년 전 한 쌍의 염소를 가축공판장에서 사왔다. 약 5년 지나자 어미와 새끼를 합쳐 25마리까지 불어났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했던가? 개체수가 많아지니 이런저런 문제로 취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15마리 정도는 염소 울타리가 그런대로 수용할 수 있었으나 그 이상이 되니 울타리가 좁아 울타리 밖으로 데리고 나와 어미는 목에 줄을 매어 말뚝에 매고 새끼와 중간 크기의 염소는 울타리 밖에서 방목하였다. 이것이 문제였다.

  어느 날 식구들이 점심을 하고 있는데 이웃에 사는 분이 허겁지겁 우리 집으로 와서 “당신 염소들을 경찰이 잡아가고 있으니 빨리 가보라”는 것이었다. 수저를 놓고 급히 염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매어 놓은 어미들은 잘 있는데 방목한 10여 마리의 염소들이 가까운 고속도로로 나간 것이다. 누군가 동물 보호소에 전화하여 동물보호 기관 남자 직원 둘이서 커다란 매미채로 염소들을 잡아, 자기네 차에 싣고 있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염소를 잡으려 허둥대는 모습이 우습 광 스러웠다. 하지만 웃을 수 없어 참고 “우리 염소인데 왜 잡아가느냐?”고 약간의 항의 섞인 말을 하니 “당신의 염소 새끼들이 교통을 방해하여 잡아서 당신 집에 갖다 줄 테니 걱정 말고 운전 면허증이나 가지고 오시요!” 한다. 순간 아이구 큰일 났구나! 벌금 티켓을 떼려는 구나 생각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200불의 벌금 티켓을 받으니 많다는 생각이 들어 항의하니, 천 불을 부과할 수 있는데 봐준 거라고 한다. 순간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에서 염소들로 인하여 교통사고라도 나서 차들이 파손되거나 행여 사람이 죽는 일이 생겼다면?”하는 끔찍한 일을 상상하니 200불은 아주 저렴한 벌금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 큰 일이 발생하기전에 하루라도 빨리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염소 공판 때를 생각해보니 5일 후인 토요일이라 싫어도 닷새는 기다려야 했다.
  
  이런 소동이 있은 지 이틀이 지나 동물 보호 협회 직원이라는 제복을 입은 여성 두 명이 “염소 집이 어디에 있느냐? 조사할 게 있으니 안내하세요?”하는 것이었다. 여러 항목을 체크하고 나서 건네 주며 한 달 안에 개선하라는 것이다. 안 하면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조사한 종이를 받아 보니 “집과 울타리가 염소 수에 비해 작다.” “어미 염소 발톱이 크다.” “염소 밥통과 물통 수가 적고 깨끗하지 않다.”는 등 여러 항목이 체크되어 있었다. “내가 분주해 내 발톱도 잘 못 깎는데 염소 발톱까지 깎아주어야 하느냐?”말하며 조만간 모두 팔아 치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토요일 염소 공판일이 되어 몇차례 차에다 실어 날라 모두 팔아 치웠다. 서운한 생각과 시원하다는 생각과 교통사고를 유발시키지 않아 고마운 생각이 드는 등 만감이 교차하였다. 모두 팔아 치운 지 한 달쯤 지나자 얘기한대로 또 두 명의 여직원이 다시 방문하여 현장을 조사하겠다고 한다. 염소 집으로 안내하면서 “말썽꾸러기 염소들을 모두 팔아 치웠다.”고 말하자 현장을 확인한 후 웃으며 간 뒤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고속도로로 나가는 말썽을 부리기에 염소를 모두 처분하고 두어 해가 지나니 주변에 다시 블랙베리를 비롯하여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오히려 염소들이 똥 오줌을 누어 그전보다 더 잡풀들이 무성해졌다. 염소를 살까 말까 망설이다 하도 풀이 연하고 좋아 이윽고 봄철에 다시 한 쌍의 염소를 공판장에서 사왔다. 염소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암놈이나 수놈이나 모두 뿔이 자라서 크면 울타리를 부수고 수놈은 간혹 사람에게 덤비는 흉내를 내어 약간의 위협적이기도 하여 새끼일 때 뿔이 생기지 않도록 약물 처리를 하거나 불로 지지어 뿔을 없애야 뿔이 자라지 않게 된다. 따라서 공판장에서 구매해온 한 쌍의 어린 염소의 뿔자리에 불로 살짝 그슬러 뿔이 나지 않도록 처리하였다. 그런데 좀 바쁘기도 하고 게으른 탓에 두어 번 불과 뿔이 자라지 않게 하는 연고처리를 해주어서 암놈은 뿔이 나오지 않았는데 수놈은 암놈과 똑같이 처리를 해주었는데도 남성 호르몬이 강해서인지 뿔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조금씩 자라기 시작하여 제법 단단한 뿔이 나왔다. 이렇게 수놈의 뿔처리를 못해주고 수놈이 아빠의 역할을 할 정도로 성장하여 새끼도 몇 마리 생겼다. 염소새끼가 커지면 다시 고속도로로 나갈까 우려되어 젓 땔 즈음에 팔아 치웠다. 

   그런데 문제는 수놈인 아빠였다. 뿔을 가진 수놈이 어미 암놈을 이런저런 이유로 귀찮게 하는 것이었다. 맛있는 빵을 간식으로 주면 뿔 달린 머리로 암놈을 제압하여 빵 그릇에 얼씬도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 만이 아니다. 심심하면 뿔로 암놈의 머리를 받고 두 발로 뛰면서 어미와 싸우는 것인지 사랑의 표시인지 수놈이 어미를 귀찮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은 사랑표시의 하나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뿔이 근질근질 해서인지 아니면 심심해서인지 수놈이 뿔을 이용하여 목재 울타리를 부수는 것이 문제였다. 몇차례 부순 울타리를 보수하고 좀 화가 나서 몇차례 때려주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뿔제거에 실패한 대가의 피해가 크고 불편하여 수놈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토요일 오후가 동물 공판장에서 염소를 판매하는 날이므로 토요일 오전 10시경에 수놈을 울타리에서 목줄을 이용하여 끌고 나와 밴 짐칸에 싣기 위해 울타리에서 끌고 나왔다. 울타리안에서 밖으로는 쉽게 끌고 나왔으나 차고까지 가는 동안 아내인 암놈이 울타리 안에 그대로 있어서 인가 잘 따라오지 않아 어렵사리 차고까지 끌고 와 차의 짐칸으로 싣기 위하여 경사진 판자를 놓고 수놈을 태우려 하는데 소가 푸줏간 가는 것을 알아차려 눈물 흘리며 안 가려 한다는 얘기처럼 쉽게 차에 실을 수가 없어 내가 차안으로 들어가 목줄을 당기고 아내가 회초리를 적당히 뒤에서 때려 겨우겨우 차에 싣고 공판장에 가서 팔아 치웠다.

  문제는 암놈 어미였다. 새끼 들을 팔아서 허전했는데 이젠 남편 수놈까지 안보이니 안절부절 불안해하는 모습이다. 좋아하는 간식 빵을 주어도 몇개 먹고는 울타리 안을 서성대며 남편 수놈을 찾는 기색이다. 평소에는 잘 울지도 않던 암놈이 울기도 한다. 내 생각에 쓸쓸해 보였는데 아내 역시 그렇게 생각하여 보기에 쓸쓸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한달이 지나도록 맥없이 울타리 안을 걷고 홀로 사는 것이 안스러워 조만간 새 남편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동물도 자신을 괴롭히고 귀찮게 한 남편이 없어지면 편하리라 생각했는데 저토록 허전해 하고 맥없는 삶을 사는 것을 보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삶에서 아내와 남편도 이런 저런 이유로 서로 티격태격 다투어도 둘이 사는게 좋다는 것을 미물의 동물을 통해서 증명되었다. 우리 모두 동시에 천국으로 가기는 쉽지 않겠지만 최대한 행복하게 살다가 비슷한 시기에 죽음이라는 헤어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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