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나가지 않고 쉬는 날에 오히려 일찍 눈이 떠질 때가 있다. 창문에 어슴푸레 푸른 여명이 비치고 그것을 한 번 본 뒤로는 벌떡 일어나고 만다. 커튼을 제치고 산 밑의 마을을 잠시 내려다본다.
썰물같은 푸른 어둠에 잠겨 있다. 간밤에 내린 눈때문에 세상이 새삼 청순해 보인다. 천지가 창조되던 때처럼 하늘도 땅도 구분이 없다. 멀리 도로에는 달리는 차도 눈에 띄지 않고 과묵하기 그지없다. 백 년된 소나무에 사는 다람쥐들도 간밤에 배부르게 먹고 자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다. 이웃집의 스트롸이터, 세바스찬, 바우져도 아직까지 짖지 않고 있다. 실내 공기가 넘실대는 소리가 들릴 만큼 먹먹한 정적 뿐이다. 세상 모든 생물들이 겨울의 마녀가 쳐 놓은 덫에 걸려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 홀로 깨어 있다는 상쾌함이 전신을 휘감는다.
어제 밤 잠자리에 들면서 다시는 눈뜨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나 길고 피곤했던 하루였기에. 그런데 이렇게 일찍 눈이 떠져 고요한 아침이 생경하고 평화로웠다. 이런 기분은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몰라. 애처롭고 짠한 마음에 두 팔로 허공을 껴안았다. 온전한 이 시간을 사랑하는 거야. 그러면서 한편으로 흐르는 이 시간이 곧 과거가 되는 것에 아쉬워 어쩔 줄 몰랐다. 행복한 슬픔이 전신으로 퍼지며 서있기가 버거워 몸이 뒤틀렸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은 재빠르게 나의 뺨을 튕기며 과거로 들어가버렸다.
물 한 잔을 천천히 따라 마시며 오늘은 어떤 종류의 커피를 만들까 생각했다. 그 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에스프레소가 마시고 싶다. 까맣고 먹물처럼 진한 그것은 아직도 전신에 남아 꿈틀대며 금방 지나간 찰나를 생각나게 했다. 과거는 내가 벗어 놓은 허물이기에 생의 중요한 한부분이다. 밖은 온통 하얗고 내가 살고 있는 산과 저 아래 세상사이에 정적의 검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먹물같은 그것이 떠올랐는지도 몰랐다.
아직까지도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를 뽑기 위해 전통적인 방식을 사용한다는 비알레티 포트를 오븐에 얹었다. 손보다 작은 크기의 포트는 너무 작아 직접 오븐에 올릴 수가 없었다. 큰 냄비 안에 넣어 커피를 추출해야 했다. 빈 냄비를 오븐에 올려놓고 데워지는 동안 커피를 갈았다.
향긋한 커피 내음에 가슴이 설레었다. 세상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 중 하나가 커피가 아닐까, 무인도에 표류하더라도 말이다.
포트의 맨 아래칸에 물을 채우고 필터에 커피가루를 넣었다. 알맞게 치대면서 필터를 채워야 크레마(Crema)가 잘 형성된다고 한다. 크레마는 이탈리아어로 크림을 뜻하며 에스프레소 추출 때 생기는 갈색 크림층을 뜻한다. 포트의 압력에 의해 커피가 추출될 때에 원두의 아교질성분, 지방성분, 수용성 성분이 커피의 표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에 발생하며 이 크레마는 크레마층 밑의 커피와 외부 온도를 단열시켜주는 역할을 하여 빨리 식는 것을 막아주어 커피를 더욱더 맛있는 상태에서 마실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윽고 에스프레소가 만들어졌다. 진한 커피위에 적당한 크레마가 형성되어 있었다. 데미타세(demitasse)잔에 따랐다. 데미타세는 아주 작은 크기의 에스프레소 커피잔이다. “워메, 애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이렇게 쬐끄만데다 어떻게 커피를 마신데, 만든 까닭이 있겠지만서도 난 어떻게 쓰는 줄 모릉깨 너가 갖고가서 써라.”
어머니는 그러면서 고등학생이던 딸에게 일찌감치 결혼선물이라며 떠 안겼다. 누군지는 몰라도 어머니에게 데미타세를 선물한 그 지인은 꽤나 유행을 아는 분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에 단발머리 필자도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며 한참을 들여다 보았었다. 장난감같은 꼬마잔을 들고 창문 앞에 서 밖을 본다. 밖은 아직 새벽 미명이다. 목 울대를 넘기는 진한 에스프레소는 푸른 꿈을 꾸며 눈밭을 달려가는 단발머리 여학생을 쫓고 있었다. 아련한 추억이 밀물로 가슴 가득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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