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아침부터 짙은 먹구름이 낮게 깔렸다. 피로에 지친 몸은 금방이라도 비를 출산할
구름만큼이나 무거웠다. 늘어진 몸을 마냥 침대에 묻고 싶으면서도 한편 누군가 로부터 이해
받고 공감대를 헤집으며 교류하고 싶었다. 바쁘다는 핑계와 생활의 염려로 멀어진 문학과
인간적 소통의 단절이 가져온 결핍감 때문이었으리라. 몸을 일으켜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집을 나섰다.
타국에서 모국어를 등지고 살아가는 이의 고달픔을 달래기 위한 선택이었을까? 발걸음이
멈추어 선 곳은 친숙한 말과 글이 공존하는 북 콘서트였다. 김영수 작가의 네 번째 수필집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로 감미로운 기타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이민 생활의 고립감과
무력감을 느낄 때면 나는 고국의 언어에 이끌려 책을 펴고 나의 의지에 반하여 찾아 드는
인생의 좌절과 고독을 삶의 보편적인 초상으로 바라보려 했다. 북 콘서트에 모인 사람들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은 지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의 문학과 인생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흐르는 신뢰와 교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사한
분위기를 돋우어 주었다.
나는 작가의 책을 두 손에 받아 들었을 때 ‘어느 물고기의 독백’이라는 제목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다소 말랐지만, 강단이 있어 보이는 작가의 모습 속에서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기괴한 물고기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대감마저 들었다. 라이브로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에 맞추어 책장을 넘기고, 어느 물고기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것은 삶의 무게에 억눌려 신음하는 자아를 타인의 작품 속에 투영하고 위로 받기 위한
방어 기제의 발로였다.
나는 물고기였다. 어부가 쳐 놓은 그물에 걸려 횟집으로 팔려 와 도마에 눕는 순간 나의
이름은 물고기에서 생선회로 바뀌었다. 더는 생명이 없는 하얀 살덩이가 된 내 몸을
바라보았다. 한때 나는 저 살과 뼈로 대양을 가르며 부러움 없이 헤엄쳤지. 때로 수면 위
공중으로 뛰어올라 세상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심연의 바닥에 닿을 만큼 깊이
은신하기도 했다. 터질 듯 부레를 부풀려 보란 듯이 우쭐거린 적도 있고, 한없이 작아져
위축되기도 했다. 먼 바다까지 나아가 터를 잡고 지내는 동안에는, 물 가까운 바다를
벗어나지 못하는 고기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 어느 물고기의 독백 中
작가는 자신을 물고기에 비유하며 삶에 대한 묵직한 사색과 통찰을 진솔하게 풀어갔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니 수필은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며,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라던 피천득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인생의 고난과
외로움을 깊이 깨닫고 초연히 일주문을 넘는 작가의 뒷모습이 수필이라는 문학 형식을 통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작가의 작품에 이끌려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따라
걸었다. 넓적한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는 상상을 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밖으로
나오니 먹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마법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손에 들린 한 권의
수필집이 옥죄어 들었던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주고 피로에서 회복시켜 주었다. 어머니의
품처럼 관대한 모국어의 이끌림은 이렇게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고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를 갖게 하는 내 삶의 비타민과도 같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권은경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