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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받은 선물 같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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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9-06-10 17:09

섬별 줄리아 헤븐 김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선선한 바람이 가을 공기를 뱉아 내며 계절변화가 시작되던 지난해 9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 당시 나는 가까운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일주일이 지나 갈 무렵 병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좀 더 정확한 검사가 필요하다며 밴쿠버 다운타운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검사예약을 하라는 친절한 전화였다. 그 다음 날에는 암 3기에서도 볼 수 있는 세포를 지난번 조직검사에서 발견했다는 결과 지를 가정의로부터 전해 받았다. 병원건물 밖으로 걸어 나오는 동안 내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침착하고, 마음에 동요 또한 전혀 생기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온 김에 장도 보고 집 안으로 들어서니,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벨이 울렸다. 다음 주 초에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제일 빠른 검사 날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런데, 그 시기에는 내가 책임감을 갖고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 놓여있던 상태라 그 전화는 내겐 난감하고 그다지 달갑지가 않았다. 검사를 받고 난 후에 혹여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일에 지장이 생길 것이고, 그로 인한 파급 또한 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도중에 하던 일을 내 사정으로 인해 그만두는 것은 책임의식이 강한 내 성격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검사날짜를 내가 선택하고 고를 수 없다는 딱딱한 답변이 즉각 돌아왔다. 하던 일도 마저 해야 하고, 날짜도 안 맞으니 검사는 받을 수 없을 것 같고, 도움을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도 그 다음 날 다시 전화가 와서 내가 원하는 날짜에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 일로 인해 굳이 생각해본 적 없던 캐나다라는 국가에 대해 나도 구성원이라는 소위,‘우리’라는 개념을 고취시켜 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정밀검사를 받기까지 한 달 여의 시간이 주어졌다.

늘 하던 대로 우리 집의 식사 전 기도는 아들아이가 했다. 식전 기도를 하던 아들의 기도 속에 엄마를 빨리 낫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 말이 나왔다. 아들 아이의 기도가 끝나자, 나는 당분간 엄마를 낫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의아해하는 아들아이에게 물론 남이 해주는 중보기도도 중요하지만, 엄마가 직접 하나님께 하는 기도가 더 중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런데, 엄마 자신이 지금 무엇에 포커스를 맞춰 기도해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병을 낫게 해 주세요” 하는 기도도 맞는 답이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크리스천이니 “하나님 곁으로 빨리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도 옳은 답이라 어느 것에 내가 중점을 두고 기도해야 하는지 당사자인 나조차 모르겠고, 정말 헷갈렸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아멘.”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는 이 것 한 가지 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너무나 평온했다. 그리고, 의미 있고 재미있는 시간도 내게 주어졌는데, 그 시간 속에는 뜻밖에도 잊고 있던 숨겨진 시간들이 있었다. 보잘것없는 인생이지만, 갑자기 찾아 온 죽음 앞에 차분하게 나의 지난 날을 뒤돌아 보고 되짚어 보니 그 때마다 내가 얼마나 행운아였는지 새삼 깨달아 가는 귀한 시간이었다.

광화문 통 아이로 수영장이 딸린 근사한 별장에선 아기씨로 불렸고, 초가 지붕도 간간히 볼 수 있던 사 대문 안에서 잔디 깔린 정원과 연못 한 가운데에서 솟아 나오는 분수마저 신기해 하는 동급생들로 인해 우리 집은 늘 북적거렸다. 흑백 TV를 보던 시절에도 AFKN(지금의 AFN Korea)을 통해 이미 칼라로 텔레비전을 보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나.

 그 다음은 캐나다로 오기 전까지의 삶을 떠 올려 보았으나, 그 또한 일일이 열거하긴 뭐하지만, 여한 없이 살았다는 기억과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빅토리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나의 주로 시인하고 받아들인 십 여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돌이켜 보니 쉼 없이 눈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남들 눈에 지금의 내 모습이 형편없어 보인다 해도 분명 나는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고, 바뀌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님께 예쁨 받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던 나. 사람들과도 부딪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애를 썼으며 끊임없이 돌아보며 겸손해지려고 나를 죽여가며 흘리던 눈물.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열심을 내어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생각하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이 눈물에 섞여 입 밖으로 흘러 나왔다. 마침내, 기도의 방향이 정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불시에 찾아들 지도 모를 나의 죽음에 대해 아들과 진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일 테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치료는 거부하기로 했다. 병이 깊어져 누워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 지금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살고 싶다고 아들에게 부탁을 했다. 다행이, 3년 전에 집 근처에 있는 ‘오션뷰’라는 공원묘지에 화장해서 들어 갈 자리 하나를 마련해 두었다. 재로 변한 내 뼈 가루가 들어 갈 곳도 있으니 구체적으로 나의 장례식에 대해 아들과 이야기 나누기가 어렵지 않았다.

첫째로 장례식은 따로 하지 말아라.

까만 대리석 벽 안으로 들어 가는 그 시간에 엄마의 지인 몇 분만 함께하면 좋겠다. 사실, 덩그러니 남겨진 채 쓸쓸해할 두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엄마 된 마음이 작용한 결정이었다.

두 번째는 검은 옷은 입지 말라고 해 줘.

나는 당부사항을 꼼꼼히 적어가며 나의 장례에 대해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검은 상복을 입는 장례문화가 왠지 예전부터 거부감이 생기고 싫었다. 더 더욱이 신랑 되시는 예수님의 신부로 하늘나라 파티에 가는 기쁜 날인만큼 나를 축하해주러 오는 문상객들의 복장 또한 화려하고 밝은 색의 옷차림으로 즐거운 시간이 되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로는 엄마가 좋아하던 빨간 장미를 예쁘게 포장해서 한 송이씩 선물로 나눠드리고, 아들과 즐겨 부르던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를 부르며 마지막 인사를 하자고 끝을 맺었다. 촉촉해진 아들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어느 새 엄마의 죽음도 담대하게 받아들일 만큼 의젓하게 자랐는지 감사가 또다시 연이어 나왔다. 말없이 나의 두 손을 잡아 끄는 아들 아이의 젖어 있는 양 손이 믿음직하고 안심이 되었다.

 

내게 주어졌던 일도 순조롭게 마무리 되고 책임완수 하니, 드디어 검사 날이 되었다. 처음 와 본 병원은 층 마다 훤히 들여다 보이는 유리 벽면에 마치 커다란 배 안에 앉아있는 듯한 모습으로 소파가 나열되어 있었다. 보트 형상을 한 건물 내부가 정말 창의적이고 훌륭한 건축설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건물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있던 때에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내가 누운 침대 벽에는 모니터가 붙어 있어서 의사 선생님의 검사 진행과 설명을 들으며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모니터를 들여다 본들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환히 비쳐지는 내 몸 속의 기묘하고 오묘한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진다면? 남들이 들으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만큼 나는 그 상황이 덤덤했다.

“당신 몸에서 암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는데요.” 날카로운 금속성의 목소리를 가진 의사의 말에 예상을 빗나간 나의 반응이 그들에겐 의외였나 보다.

“No cancer!” 내가 영어를 못 알아 들어서 그런가 싶은 지 그다지 크지도 않은 검사실에서 간호사가 친절하게 외쳐댄다.

  “Why?” 내가 낸 소리라곤 왜? 왜라고 묻는 내가 이상했던지, 홈닥터에게 연락이 갈 거라고 말을 했다. 조직검사에서 발견된 암 세포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나는 계속 “왜?”라는 외마디 질문만을 뱉어냈다.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살고 싶다고 병을 고쳐 달라고 한 적이 없다. 하늘나라로 빨리 불러 주심에 감사하다는 기도만 했었는데...... 암 세포가 발견되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보다 되려, 이 상황은 뭐지? 왜~에? 라는 물음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집을 나서기도 했지만, 나름 긴장은 되었던지 베개에 머리가 닿자 마자 곧바로 곯아 떨어졌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깊은 숙면을 취하고 오랜만에 단잠에서 깨어나는데, 갑자기 울컥하더니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무 제단 위에 귀하게 얻은 사랑하는 아들을 올려 놓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행하려는 아브라함의 믿음. 그 순간의 모습을 보시던 하나님. (창세기 22장1~18)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기쁜 마음을 갖던 나의 믿음 역시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성경구절에 쓰여진 그대로 시험을 통과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장 13절)

불과 몇 달 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 일로 인해 나는 새로운 인생을 덤으로 얻은 기분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때 벌어졌던 일은 내게 있어선 선물 같은 시간을 안겨 주었다.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똑 같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기회에 나의 장례식도 준비할 수 있었으니 나는 참으로 복이 많고 행복한 사람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권해 주고 싶다. 당신 자신의 ‘나의 장례식’을 스스로 정리 해 보라고. 아마도 새로운 삶 하나가 덤으로 얻어지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2019년 3월 12일 행복한 나의 장례식을 꿈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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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 2019.12.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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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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