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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내 손을 잡지 마오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khk@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03-25 09:43

박정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어릴 때 어른들께 자주 듣던 말이다. 나쁜 버릇이 한 번 몸에 배면 고치기 힘들어 늙어서까지 계속 되니 좋은 습관을 들이며 살라는 뜻이었다. 영어에도 이와 같은 말이 있다. ‘Old habits die hard.’ 영화 ‘다이하드’의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가 불사조마냥 절대 죽지 않는 거처럼 몸에 밴 습관도 여간해선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실 어릴 땐 이 말에 수긍이 가질 않았다. 살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때가 고치면 되는 거지 설마 나쁜 버릇을 여든까지 끌고 갈까 싶었다. 그런데 버릇이란 게 계속 하며 사는 거라 크게 나쁘다는 인식 없이 그냥 끌고 가는 게 아닌가 싶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의 잘못된 버릇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걸 볼 때마다 습관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느끼며 여든까지 간다는 말을 실감하곤 한다.

병원 중환자실은 병세가 심각한 환자를 돌보는 곳이다. 간호사들은 긴장된 상태로 눈으로는 기계를 모니터하며 분주한 손놀림으로 환자를 돌본다. 삐삐 울리는 기계음을 제외하곤 정적에 휩싸여 고요하기까지 한 중환자실. 순간 그 정적을 깨며 우렁차게 울려 펴지는 외마디 쌍욕! 간호사들은 일제히 손을 멈추고 반색을 하며 그 쌍욕을 날린 환자에게 달려간다. 바로 의식이 없던 환자가 깨어나는 순간이다. 이 감동의 순간이 고운 말로 시작되면 좋으련만 많은 분들은 이렇게 쌍욕으로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간호사들은 그 욕이 너무 기쁘지만 말이다. 

평소 힘들 때 욕을 하던 사람은 반드시 중환자실에서 이렇게 깨어난다. 그분의 말버릇인 것이다. 그렇게 깨어난 환자가 그 뒤로 아무리 점잖게 굴어도 간호사들은 그저 웃는다. “난 당신의 숨겨진 본색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간호사들끼리는 고운 말 쓰며 살자는 말을 자주한다. 그런데 설마 내가 중환자실에 누울 일이 있겠어? 물론 드문 일이다. 그래서 운 좋게 여길 잘 피했다 치자, 그럼 다음엔 또 수술장이 기다린다. 평소에 욕하던 사람은 마취에서 깰 때도 욕을 한다. 

필자도 제왕절개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진짜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 병원에서 수술할까, 아님 다른 병원으로 갈까? 마취에서 깰 때 이쁜짓을 할지 미운짓을 할지 알 수가 없어 고민을 했다. 그래도 최고의 의료진이 있다는 병원이니 또 거기다 직원감면까지 받을 수 있느니 그냥 다니던 병원에서 받기로 했다. 척추마취를 했지만 문제가 생겨 진정제를 맞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열댓 명의 의사 간호사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나를 보며 피식 피식 웃더니, “다시 봤어.”라는 애매한 말을 남기고 나갔다. “헉! 뭔 짓을 한 거야? 설마 욕했나?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보지?” 너무 걱정이 돼 수술한 배가 아픈 줄도 몰랐다. 나중에 친한 레지던트를 붙잡고 물으니 미운짓은 아니고 애기짓을 했다고 했다. 하도 당차게 일하던 사람이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습. 수술 내내 무섭다며 목소리까지 애기처럼 바꿔 별 소리를 다하더라는 거다. 결국 그렇게 털렸다. 당찬 척 했지만 사실 속에 숨기고 살던 겁쟁이인 내 모습을.

사실 버릇이라는 게 어디 말버릇뿐이겠는가? 먹고 자고 싸고 이 모든 게 제각각인 걸 보면 인간의 삶 속에 버릇 아닌 게 없다. 그런데 이 모든 버릇이 한꺼번에 털리는 순간도 있다. 요즘은 평균수명이 길어져 치매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치매는 기억을 지우는 병이다. 그러나 이 치매도 습관은 못 지운다.

우리가 흔히 인디언이라 부르는 원주민(First nation people) 할머니가 입원을 했다. 그나마 피부색이 같다고 나를 이웃집 딸로 믿는 할머니는 나만 보면 달려와 손을 잡았다. 그 날도 손이 잡힌 채 용무가 급한 할머니의 화장실로 끌려갔다. 그런데 볼일을 끝낸 할머니가 화장지를 딱 한 칸만 떼더니 닦았다. 너무 놀란 난 달려가 변기 물을 내리며 할머니에게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손부터 씻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똥이 둥둥 떠내려가는 변기에 손을 쑥 넣더니 씻었다. 정말 말릴 틈도 없었다. “헉! 그럼 지금까지 그 손으로 날 잡고 다녔던 거야?” 

원주민 보호구역이라는 데가 수돗물이 꽐꽐 쏟아지는 곳이 아니다. 물도 물자도 부족한 곳에서 살던 할머니의 습관이다. 그날부로 식사 전에 손을 꼭 씻기라는 내용을 할머니의 간호계획에 첨가했다. 깊은 숲에서 살았으니 대충 나무 밑에서 볼일을 보던 분들도 있다. 용무가 급했던 어느 할머니는 병동에 세워놓은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냅다 달려가 그 밑에 볼 일을 봐 놨다는 웃지 못 할 얘기도 전해진다. 자기 단장을 잘 하던 할머니는 97세가 돼도 아침마다 립스틱을 바르고, 평소 차별하는 마음을 품고 살던 사람은 치매에 걸리면 대놓고 인종차별을 한다. 항상 웃고 살던 사람은 치매에 걸려도 매사에 웃고, 감사함이 넘치던 사람은 뭘 해줘도, “스윗하트! 땡큐 땡큐!”를 연발한다. 간호사이기 이전에 사람인지라 그런 환자에게는 뭐라도 더 해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물론 평소 화를 잘 내던 사람은 툭하면 격한 욕과 함께 짜증을 낸다. 그런 환자 방은 들어가기가 무섭게 빠져나온다. 기운이 너무 탁해 피하게 된다. 흔히들 미운 치매가 있고 예쁜 치매가 있다고 한다. 의학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는 건 아니고, 평소 그 분의 습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누구도 벽에 똥으로 아트를 하다 죽길 원하진 않는다. 하지만 치매 앞에서 자긴 예외라고 장담할 사람도 없다. 다만 열린 마음과 좋은 습관을 들이며 산다면 혹시 치매에 걸리더라도 최소한 예쁜 치매로는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찬 공기 속에 묻어나는 봄기운을 깊이 들이마시며 경쾌하게 출근을 한다. 병동에 막 들어서는데 원주민 할머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애써 눈길을 피하며 “님아! 제발 내 손을 잡지 마오!”를 주문처럼 외보지만, 그걸 알 리 없는 할머니는 집념어린 몸짓으로 나를 향해 다가온다. 나는 별 수 없이 뒤로 감췄던 손을 다시 내 놓는다. 오늘도 난 꼼짝없이 저 할머니에게 손을 내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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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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