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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5-08-29 15:37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불성무물"이라 쓰인 화선지를 탁자 위에 펼치시며 선생님께선 잠시 감회에 젖으셨다.
“오늘 초대에 대한 답례로 내가 좋은 글귀를 하나 써봤어요. 참 쉽지 않은 인연인데---, 이석 선생, 조 여사, 앞으로 열심히 정진하기 바라요.”
정성은 모든 것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중용의 “성자물지종시 불성무물( (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의 글귀를 강조해 말씀하신 선생님께선 발긋한 오미자화채 맛을 음미하시며 아득한 시간 저편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계셨다.
교내 장미 정원에 자리 잡은 한옥 별채의 서예반 분위기와 학년마다 다른 특별 활동을 위해 애쓰시던 이사장님, 교장 선생님 그리고 몇몇 선생님들과의 일화며 동방 연서회 주최 서예 대회에 대한 스승과 어린 제자가 공유했던 시간의 이야기들이었다. “이석 선생님, 그동안 정말 열심히 쓰셔서 전시회에 좋은 작품들을 내 주셨어요.”자상하신 사모님의 덕담도 이어졌다.
중학생인 내게 서예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의 근황을 나는 6년 전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평생을 후학들에게 서예를 가르치신 선생님께선 밴쿠버에 이민 오신 후 한국 문화의 불모지인 이곳에 서예를 뿌리내릴 계획을 갖고 계셨다. 연로하신 선생님께서 편찮아 지신다면 배울 기회를 잃을 것이라는 내 조바심에 이런저런 이유로 시작을 미루던 남편은 어느 날부터 먹을 갈아 줄 긋기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사위가 한국에서 올 때 가져온 문방사우 일습은 장인님 은퇴 후 취미 생활을 예견한 귀한 선물이었다.  

드디어 5년 전 어느 가을 날 나는 남편의 학부모 자격으로 선생님을 찾아 뵙게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나는 가뭇하게 윤기 나는 찰진 약식을 만들기에 분주했다. 꽃잎 모양의 틀에 잣, 햇밤, 대추가 든 약식을 꼭꼭 눌러 담아 식힌 후 아끼던 함지박에 정성 들여 담았다. 하늘이 높고 푸른 가을 아침 선생님 댁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인연의 만남에 대한 예감으로 마음이 푸근했다.
예상대로 선생님께선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지만, 선생님 모습은 크게 변함이 없으셔서 인자하게 웃으시며 어깨 너머로 붓을 잡아 주시던 친근함을 떠올릴 수 있었다.
40여 년 전 선생님께 서예를 배웠었다고 인사를 드리니 어찌나 호탕하게 웃으시며 반가워하시던지 아득한 그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남편은 선생님 서예 교실의 문하생이 되었다. 선생님께 체본을 받아와 꾸준히 연습하며 결석이라고는 없는 성실함에 힘입어 일취월장의 필체를 다듬어 가고 있다.
올해 두 번째 서예 그룹전에 출품한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얻기도 했다. 서예는 먹물을 머금은 붓으로 선의 움직임, 변화, 힘 그리고 감정을 나타내며 글자의 의미로 정신을 전달하는 예술이다.
하얀 화선지 위에 붓을 들어 고전 속의 선비와 시인을 만나는 일은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시간이 될 것이며 퇴색되지 않는 정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서예 보급에 힘쓰시며 깊은 신앙생활 안에서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계신 선생님께서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빌며 주신 글귀와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있다.
"불성무물(不誠無物), 성실함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는 근본이며, 성실함을 통해 존재하며 발전해 나간다. 성실함이 없다면 그 어떤 존재도 있을 수 없으며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재물과 권력을 갖은 사람이 아니라 성실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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