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노란 꽃술을 내민 흰 감자꽃 한 다발을 남편이 말없이 건넨다. 수확기를 앞두고 감자 알을 굵게 만들기 위해 꽃을 따내는 남편 옆에서 나는 잠시 감자꽃을 들여다 본다. 희고 보드라운 꽃잎 가운데 샛노란 꽃술을 뾰족이 내민 감자꽃은 너무나 앙증맞다.
키 큰 미루나무 가지에 모여 앉은 멧새들이 소리 높혀 재잘대기 시작한다.
“하얀꽃 피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바람을 타는 억새들의 사열을 받으며 콜로니 농장으로 가는 길 풍경은 언제나 평화롭다. 멀리 눈 덮인 골든 이어 산이 보이고 코퀴틀람 강이 흐르는 너른 들판에는 매, 흰머리 독수리, 왜가리들이 공중을 가르며 날고 있다.
5년 전 콜로니 농장으로부터 텃밭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메일을 받았을 때의 반가움은 우기의 지루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유기 농법의 퇴비 만들기, 삽으로 땅을 깊게 파엎고 발효된 거름을 섞어 흙을 잘게 부수기, 적절한 시기의 씨앗 파종과 모종 이식, 물 주기, 토마토 고추 깻잎의 곁순 따주기….
몇달을 기다린 후 알 굵은 감자와 마늘을 캐고, 푸릇한 잎사귀 사이를 헤치며 오이와 호박을 딸 때면 결과는 정성과 노동 시간에 비례해 얻어진다는 자연의 법칙을 터득하게도 된다.
새소리를 들으며 다른 이들의 텃밭을 돌아보는 일은 즐거운 학습 체험이다. 모종 시기와 구입처, 핏 모스와 거름을 섞어 흙을 만드는 법 그리고 생소한 작물 이름들에 대한 설명을 밭 주인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다. 가끔 모종과 씨앗을 서로 나누고 많은 채소를 수확한 사람들은 노숙자 급식소에 기부를 하기도 한다.
250여명 회원이 텃밭 농사를 짓는 이곳에선 경험을 함께하는 훈훈한 공동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도시 생활의 삭막함에서 벗어나 서로가 소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타인과 나, 자연과 동식물 모두가 서로 연관돼 존재한다는 개념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고립과 결핍으로부터 벗어나길 원하는 사람들의 긍정의 에너지다.
삶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소유와 축적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 도시의 반생태적인 소비의 주체에서 생산의 주체가 되고자 땀 흘리는 이곳은 도시의 오아시스가 아닐까!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자연 속에 어우러져 진정한 휴식을 얻는 이곳은 도시의 보석 같은 존재로 내게 다가온다.
보금자리를 찾는 멧새떼가 줄지어 하늘을 날고 은은한 들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온다. 오이와 호박 넝쿨을 받침대에 묶어주고 물을 듬뿍 준 후 연장통을 정리한다.
해질 무렵 텃밭에서 노을빛 솜털 구름과 환하게 피어난 감자꽃들이 내게 가만히 말을 건넨다.
“지금 이곳에 있음에 행복하라! 기쁜 마음은 겨울도 두렵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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