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편지를 쓰면서 정보를 전하고 마음을 전하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예전에는 편지를 쓰는 일이 하나의 정보 전달을 위한 통신 수단이기도 했으며, 편지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의식에 가까웠다.
책상 앞에 앉아 편지지를 고르고, 펜을 선택하고, 첫 문장을 몇 번이고 썼다가 다시 지웠다. 펜을 쥐고 편지지를 마주하던
시간에는 속도가 없었다. 생각은 천천히 문장이 되고, 그
문장은 손의 리듬에 따라 종이에 스며들었다. 잉크를 이용한 펜글씨로 편지를 쓴다면 그 정성은 더했다. 펜의 잉크가 편지지에 닿으면 사각거리는 소리와 내용에 열중해서 편지를 쓰다 보면 손끝에 잉크가 묻은 자국마저
그날의 정성을 들인 흔적이 되어 몇 일을 갔다. 봉투를 고를 때도 작은 설렘이 있었다. 그 봉투에 주소를 또박또박 적고, 마지막 받는 사람의 이름을 적는
순간까지도 정성은 이어졌다. 최종적으로 밀봉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읽어보며 아쉬운 문장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문장에는 솔직함이 묻어 있었다.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붙일 때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보낸 편지가 잘 도착할까?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용이 마음에
들까? 우표 하나를 고르는데도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우체통에 넣는 순간 수신인의 주소로 나의 편지는 여정이 시작된다.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내
마음이 상대에게 닿기까지 걸리는 며칠의 시간 동안 수만 가지 아름다운 상상을 채워 가슴 부풀게 내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로 인해 나의 감정이 무르익는 성숙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현재는 SNS의 발달과 함께 편리함이 더해져 우리는 점점
빠르게, 더 가볍게, 더 얇게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펜이나 도구 없이 손가락 끝으로 작성한 문자는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이미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을 섞어서 보내는 문자는 긴 문장이
필요 없는 줄임의 단어들로 대신하여 정보나 개인의 감정을 전달하는 시대가 되었다.
손 편지 시절에는 편지를 받는 쪽도 설렘이 충만하였다. 우편함을
열거나 우체부 아저씨가 직접 손으로 전해주는 편지를 받아 들 때 가슴은 쿵쾅거린다. 보낸 사람을 확인하고
친척이나 가족 관계자도 설렘이 있지만, 행여 오매불망 기다리던 이성에 대한 답장이라면 주체할 수 없이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와 함께 얼굴에 홍조를 띠면서 봉투를 뜯는 손 떨림과 종이가 찢겨 나가는 소리, 봉투 안의
소중한 편지지가 펼쳐지는 그 느낌, 그 안에 글자로 표현된 누군가의 감정과 체온이 느껴지는 숨소리, 여백에 남은 종이의 주름까지 모든 것이 살아있는 감정으로 다가와 도저히 디지털로 담을 수 없는 생생한 혈류의
흐름과 맥박 같은 것이었다.
펜을 쥐고 편지지에 마음을 전하던 시절에는 편지를 쓰는 그 순간만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상황에
대한 시공간의 개념을 상실한다. 편지를 써 내려가는 순간은 상대방을 나의 편지지에 새기면서 아름답고
고귀한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것은 문장이 되고, 문장은 나의 손끝을 통한 펜의 끝에서 종이에 인쇄된다. 지우개로 지운 흔적, 볼펜으로 쓰다가 틀린 경우에 두 줄을 긋고 고쳐
쓴 현장까지, 잉크가 번진 자리, 글씨의 크고 작은 떨림까지
편지를 쓰는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당시의 글자는 정보가 아니라 정(情)이고, 사람의 체온이고, 향기였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다. 손 편지의 내용에는 그 사람의
고유한 인품이 담겨있으며, 그 사람의 숨결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기쁠 때의 글씨는 춤추듯이 날아가고, 슬플 때의 글씨는 눈물자국처럼
얼룩이 되어 번지기도 한다. 이성 간의 펜팔이라면 어느 책에 나오는 아름답고 고운 문장을 인용하여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펜글씨로 편지를 쓰는 그
순간은 상대방을 상상하면서 함께 보내는 환상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는 단순히 손가락으로 주고받는 문자가 그런 편지로 대체되었고, 글은
빠르게 흘러가고 마음도 글 못지않게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효율은 높아졌다고 할 수 있으나 진실의
깊이는 얕아졌으며, 속도는 빨라졌지만 기대와 설렘의 시간은 사라져 버렸다. 디지털의 SNS가 발달한 지금은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디지털
기기의 문자를 확인하고 하루 종일 수백 개의 문자와 마주하게 된다. 다정한 연인 사이에도 손가락 끝으로
보낸 편지는 즉시 읽지 않은 문자 옆의 1의 숫자가 편지(문자)를 보낸 사람의 마음을 더 초조하게 만들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화가
만들어지고, 결국은 손쉽게 그 편지는 보낸 사람이 취소를 할 수도 있는 시대에 우리는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미 익숙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더 선명한 현실이다.
사라져 가는 풍경에 대한 그리움이 생길 때마다 사라져 가는 풍경을 붙잡고 싶다. 누렇게 바랜 편지 한 통을 붙잡고 코끝에 대고 희미하게 남아 있는 향기도 맡아보고 그 편지지를 다시 펼치는 순간
나는 오래전의 그 시절 그 감성으로 돌아간다. 아날로그의 편지는 사라져가는 단순한 그리운 풍경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정(情)이 담긴 진실의 감정과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인간 본연의 태도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더 얇고 가벼운 문명의 이기를 내놓으며 유혹하지만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사라져 가는 풍경에 대한 그리움이 여전히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저리며 머리가 텅 비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영원히 물속에
잠긴 고향으로 남아 있다. 펜글씨의 사각거리는 소리 대신 닥닥 거리는 키보드와 차가운 유리를 손가락 끝으로
만지는 현재의 삶들이, 부드러운 종이의 숨결과 펜으로 생동감 있는 소리를 느끼면서 나의 체온이 담긴
편지를 쓴다는 것은, 아날로그로 치유되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조금은 느리지만 깊이 생각하고,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표현하며, 진솔하면서 글로서 책임 있게 남기는
태도이며, 그 안에는 인간의 본질이 살아있고, 오래 기억되는
개인의 역사가 남아 있는 인간다운 손 편지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디지털 문화 속에서 더 많은 글(문자)을 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이에 눌러쓴 손 편지의 아날로그 감성은 디지털로 간편화되는 우리의 삶 속에 영원히 묻혀 잊혀 가는 풍경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가슴 찡하게 여운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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