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그린 하우스는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오래된 요양 병동이다.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은 노란 벽돌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오십 년이 넘은 낡은 건물은 새로 들어선 병동 맞은 편에 낮게 웅크리고 있다.
요양원이나 장기 요양시설에는 에버그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 많다. 상록수는 사철 내내 잎이 푸른 나무를 이르는 말이다. 맑은 공기와 생명력이 가득한 상록수 숲의 인상과 달리 요양 병동은 잿빛 하늘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탁한 공기와 음식물, 소독약, 그리고 환자들의 분비물이 뒤섞인 퀴퀴한 냄새가 공간을 채우고 있다.
병동에 들어서면 층마다 중앙 로비에 둥근 탁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있다. 나뭇결이 드러난 황갈색 오크 탁자의 상판은 군데군데 파이고 긁히고 갈라져 세월의 흔적이 배어있다. 환자들은 탁자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거나, 물리 치료사들과 오락이나 스트레칭 같은 간단한 운동을 한다. 몸의 균형을 잡고 앉아 있는 환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탁자에 얼굴이 닿을 듯 기울어 있거나, 한쪽 어깨 위로 목이 꺾여 있다. 몸을 가누지 못해 두꺼운 띠로 허리와 가슴을 둘러 의자에 묶여 있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은 혼자 힘으로 식사를 할 수 없어 요양 보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환자들의 얼굴은 빛바랜 창호지처럼 희고 누렇다. 피부색, 성별, 생김새도 다르지만, 그들은 닮아 있다. 초점 없는 시선은 허공을 바라보거나, 지나가는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다닌다. 환자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희미하게 보이는 미소에 애써 밝은 표정으로 답한다. 그들이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병동에는 평균 연령 팔십오 세의 노인성 질환을 겪는 환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더러 중년의 환자들도 있다. 돌봐 줄 가족이 없거나, 혹은 가정에서 돌볼 형편이 되지 않아 입원하게 된 사람들이다. 그중에 오십 대 중반의 여성이 있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입원해 팔 년이 넘도록 요양 병동에서 지내던 환자다. 그녀의 가족은 주말마다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했다.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을 그리워하는 세 명의 자녀가 있다고 했다.
입원 환자가 병원 밖으로 외출하는 경우 약국에서는 그동안 복용할 약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 스무 가지가 넘는 약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준비하는 일은 통상 바쁜 업무에 부담을 가중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하고 중환자실로 옮겨지거나 다시 요양 병동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언제부터인가 외출 약 처방이 내려오지 않았고,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약을 준비하며 한숨을 내쉬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주말마다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들의 얼굴이 그려지며 가슴이 저렸다.
요양 병동 환자들에게 죽음은 늘 가까이 있다. 예견된 죽음이 찾아와 그들과 함께 떠나는 일이 일상처럼 여겨진다. 몸은 병들고 노쇠하여 스러져 가고 있지만,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 속에 평온함이 있다. 마치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 속에서 꿈꾸듯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고 박경리 작가의 고백처럼 삶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붙들고 놓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나온 생의 많은 부분이 기억 속에서 흐려지고 사라졌지만, 그들의 현재는 가장 소중했던 찰나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은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회상하며 상실과 그리움의 시간을 살아낼 수 있다. 세 아이의 엄마였던 중년의 여인과 파리하게 미소 짓던 노인 환자들이 자신의 차례가 되어 강을 건너간 이후에도 그들 생의 행복했던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살아있는 이들과 만난다.
에버그린 하우스는 늘 푸른 기억이 살아있는 숲이다. 나도 그 숲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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