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그냥 마트 가서 사 오면 되지. 요즘 누가 집에서 송편을 빚어요.”
추석을 앞두고 함께 송편을 만들자고 권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송편을 사러 마트에 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요즘은 그렇구나…’ 변화하는 명절 풍속을 따라갈 준비가 안 된 나는 가슴 한편이 서늘했다. 세상은 이미 변해버렸는데, 내 손만 예전의 추석을 붙잡고 있다.
결혼 후에는 차례를 지내지도, 대가족이 모이지도 않지만 나는 추석마다 송편을 빚는다. 해마다 해온 일을 내 손이 기억하고 있어서일까. 그만두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다. 게다가 일하기 좋아하는 내게 떡 만들기는 즐거운 놀이이기도 하다. 손끝으로 다듬어 낸 고운 결실, 솥뚜껑을 열 때 피어오르던 하얀 수증기와 은은한 솔향, 웃음소리 가득한 부엌. 그 모습들이 추석이다.
쌀가루를 준비하고 밤과 깨소, 해콩을 마련해 친구와 이웃을 불러 함께 빚곤 했다. 번잡한 부엌에서 쌀가루가 날리고, 수다에 빠져 물 보충을 잊어 찜솥을 태우기도 했다. 정신없이 손을 놀리다가 속을 빼먹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왁자지껄한 웃음이 반죽에 스며들면 송편은 그 온기까지 품는다. 명절은 음식만 차려 내는 일이 아니라, 함께 손을 움직이며 마음을 나누는 일이었다.
유년의 추석은 더욱 풍성했다. 방앗간에서 빻아 온 쌀가루를 어머니는 땀을 흘려가며 익반죽하셨고, 숙모들은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다. 강원도에서 시집온 숙모는 손가락 두 개로 가운데를 꾹 눌러 감자송편처럼 만들었다.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말이었다. 동네 돌잔치마다 불려 다닐 만큼 손끝이 야무졌던 어머니의 송편은 참 고왔다..
다른 떡과 달리 송편은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 알 한 알에 마음이 들어간다. 이쁘게 만들고 싶은 마음과 손끝의 솜씨가 만나야 비로소 맵시 있는 송편이 된다. 솥에는 솔잎 한 켜, 송편 한 켜를 켜켜이 놓았다. 송편이 쪄지는 동안 집 안에는 청아한 솔향이 퍼졌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솥뚜껑을 열 때의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는 찐 송편 몇 개를 따로 골라 씻지 않고 바구니에 담아 대들보에 걸어두셨다. 시간이 지나도 쫀득하게 두기 위한 지혜였다. 어린 나는 그것을 그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추석 상에는 송편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미끈거려 잘 먹지 않던 토란국도 있었다. 결혼 후 남편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큰 솥에 끓여내면서야 나도 그 맛을 알았다. 차례를 마치고 나누어주시던 약과의 달콤함은 어린 내 눈에 보물 같았고, 알록달록한 옥춘은 색을 도둑맞기 전에 얼른 입에 넣어야 했다. “대추를 먹어야 늙지 않는다”라던 어른들의 농담까지, 그 모든 것이 ‘추석’이라는 이름으로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다.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만들고 먹으며 웃던 시간, 이불 속에 모여 속닥거리던 사촌들의 이야기, 부엌에서 끊이지 않던 숙모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누군가 불쑥 내어주던 따끈한 송편 한 조각. 그 송편은 음식이라기보다 가족의 유대감과 애정이었다. 한 접시 가득 담긴 송편을 바라보며,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웃음과 오래된 부엌의 솔향을 다시 만나고 싶다.
세월이 흘러 어느새 내가 집안의 어른이 되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이미 먼 길을 떠나셨고, 이제는 내가 그 시절의 풍경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젊은 주부의 “힘든 일 하지 마세요”라는 말이 묵직하게 가슴에 와닿았다. 이제는 명절 음식도 주문해 먹고, 긴 연휴에는 여행을 떠난다. 방앗간은 사라지고, 재래시장 떡집과 전집 앞에 줄을 서서 음식을 사는 시대가 되었다. 명절의 풍경도 달라졌다.
그런데도 지난 추석, 새 동네 모임에서 나는 습관처럼 말했다. “오후에 송편 빚을 건데, 필요하신 분들은 우리 집으로 오세요. 단, 직접 빚으셔야 해요.” 이웃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래도 내 또래의 한 분이 찾아와 주었다. 우리는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담아 송편을 빚었다. 저녁에는 손녀에게도 반죽 한 덩어리를 건넸다. 한참 조물조물하더니 떡으로 만들어 달라며 내민 쟁반 위에는 해바라기꽃이 활짝 웃고 있었고, 토끼 한 마리가 귀엽게 앞발을 들고 서 있었다. 그 작은 손끝에는 아직 세상을 새롭게 빚을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오랫동안 내 손끝을 거쳐 간 것은 한 줌 떡 반죽만이 아니었음을. 어머니와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아늑한 감각, 함께 웃고 나누던 시간, 그 모든 것을 다시 어린 손녀에게 전하는 일이었음을. 송편 하나를 빚는 동안, 한 세대의 마음이 다음 세대로 건너가고 있었다.
세월은 몸보다 먼저 손끝에 주름을 남긴다. 악력이 헐거워져 예전처럼 앙증맞고 야무진 모양으로 다듬기도 쉽지 않다. 언젠가는 이 정겨운 일손마저 놓아야 할 날이 오겠지만, 정성을 다하던 감각과 온기만큼은 여전히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 줄 것이다.
추석이 다가온다. 마음은 벌써 송편을 어루만진다. 언젠가 이 손으로 송편을 만들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내가 지켜온 것은 송편만은 아니었음을 기억하고 싶다. 손에서 손으로 건너간 체온과 사랑은 글썽이는 세월 속에서도 오래도록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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