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희/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요즘은 남녀노소 누구나가 스마트 폰을 매개체로 하여 SNS 활동, 동영상 특히 짧은 동영상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으며, 오죽하면 아이가 태어나면 유튜브를 안고 태어난다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인쇄된 책을 오프라인에서 읽는 모습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일처럼 참으로 보기가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가 메시지” 라고 전자 미디어를 통한 하나의 지구를 정확하게 설계한 이 말이 영상 매체가 지구의 온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동영상과 함께 시청할 수 있고, 특히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짧은 동영상들은 한번 시청을 하게 되면 자동으로 알고리즘을 형성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상들이 우리들의 맑고, 밝고, 순수한 정신을 조금씩 갈아먹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순간 즐겁고, 흥미롭고, 흥분까지 시키는, 그러나 감동과 교훈은 없고, 순간 즐거움으로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시간 죽이기에 우리의 생활들이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무분별한 영상매체가 오프라인의 고전문자와 글들을 점진적으로 햇빛이 없는 동굴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활자로 인쇄된 오프라인 책의 장점들이 무시된 채, 온라인의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표현과 자극들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과 마음의 정서를 황폐한 숲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세월이 더해 간다면 점점 이런 현상은 더 심화해 수많은 고전의 문학과 역사와 철학 그리고 각종 예술 등 엄마 품 같은 마음의 고향인 글과 책들이 빛이 없는 어둠의 동굴 속으로 깊숙이 파묻히고 점점 더 깊이 파 들어가 결국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의미와 즐거움은 글 속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전혀 몰랐던 삶의 숨은 진실을 발견하고, 다가올 삶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고대와 현대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나의 정의롭고 도덕적인 삶의 등대가 되어 주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는 그 순간만은 봄의 새싹들이 연둣빛 새 생명을 이야기하면서 살며시 피어오르게 하는 희망의 산책로이며, 여름의 미루나무 아래 정자에서 꿀맛 같은 낮잠을 부채질하는 산들바람과 같고, 가을 단풍이 풍요로운 오솔길을 걸으며 자연에 동화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상쾌한 공기이며, 봄부터 이어지는 곡식이 황금 들판을 지나 풍요로운 결실로 창고 가득 채우고, 겨울의 따스한 온기가 있는 온돌방 구둘에서 먹는 군고구마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풍성함과 여유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 한가? 잠시라도 개인 시간의 여유가 생길 때 책을 읽는 모습이 사라졌다. 출근길 버스나 지하철에서 가방을 무릎에 바치고 그 위에 읽고 싶었던 책을 펼쳐놓고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책을 읽던 직장인과 학생들, 맑은 공기와 따스한 햇살이 온몸을 감싸는 인근 공원의 벤치에 홀로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중년 여인의 모습들, 한겨울 오후 조개탄으로 피어오르는 난로 앞에서 뜨개질이 지루하면 고전을 읽던 할머니의 모습들, 여행을 가기 위해 버스나 기차의 플랫폼에서 출발시간을 기다리며 책을 읽던 여행객의 즐거운 모습들 등이 지금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스마트 폰의 동영상이 대체되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이 나의 이 글에 심리적으로는 공감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행동적으로는 동의하기가 어려운 것이 지금 우리의 일상이 너무도 쉬운 것과 편한 것, 흥미로운 것, 흥분을 시키는 것에 익숙해져 습관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 환경에서 쉽게 벗어나거나 변화를 주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에 대한 순응이 아닌가 한다. 인간의 타고난 선천적인 욕망, 그 본능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이기도 하고, 이성이 어느 정도의 본능을 지배하거나 관리할 수는 있지만, 빠르게 한계를 표출하는 의지가 약한 것이 또한 인간
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한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성선설이 되었던 성악설이 되었던, 인간은 태어나 성숙하면서 이성이 본성을 억누르면서 인내하고, 도덕적 우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 다른 영장류의 동물과 차별화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진적으로 본능에 이끌려 가기 쉽고, 편하고, 단순한 것들만 쫓아가면서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 가는 것을 무슨 연유인가? 이런 의지가 약한 인간들이 본능에 동화되어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나 스스로가 먼저 책을 읽고 그 책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며, 기회가 주어지면 책 읽기를 강조하고 권유하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맬 때 그 방향을 알려주고, 내가 희망을 잃고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 책은 희망의 빛을 제공해 준다. 또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신적 빈곤함에 황폐했던 마음을 의욕적인 삶으로 가슴을 부풀게 하는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책은 처음에는 작은 휴식을 제공하고, 점진적으로 우리를 좀 더 성숙한 삶으로 서서히 진화시킨다. 고대 원시시대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주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재산가나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는 빈한한 사람이라도 책을 읽는 순간 누리는 혜택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독서는 비현실적인 세상을 마음대로 상상할 수도 있으며, 그 순간만은 내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사실과 허구 속에서 책을 읽는 나는 손쉽게 아주 다양한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누린다. 책은 무지개가 되고, 책은 희망이 되고, 책은 지침서나 길잡이가 된다. 책 속에 우주 삼라만상의 진리가 있는 것이다. 어떤 책은 사색을 하게 만들고, 때로는 눈물 나게 하거나 조용히 미소 짓게 만들기도 한다. 책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게 하기도 하고, 흥분을 시키지는 않지만 흥미로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어떤 책은 도덕적 진리가 서려 있으며, 어떤 책은 과학적 신기술이 담겨있고, 또 어떤 책은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적 삶의 교훈이 실려 있다. 고전, 과학, 기술, 학문, 문학, 자연, 지도, 그림, 예술, 시가 있고, 소설이 있고, 수필이 있다. 지구의 어느 아주 조그마한 나의 공간에서 고대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것, 우주의 어느 공간까지 마음껏 자유롭게 만나고 간접적으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책을 펼쳐 읽는 사람만이 누리는 최고의 특권일 것이다.
또한 단순히 책만 읽는다고 해서 독서의 본질은 아니다. 책을 읽고 그 책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습득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하며, 때로는 긍정적인 다른 방향으로 응용하여 진정한 내 삶의 일부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가 닮아 가려고 하고, 내가 흉내를 내는 것도 도움은 되겠지만, 독서가 주는 진정한 본질의 목적은 간접경험을 통한 타인을 흉내 내는 삶이 아닌 내가 주인공이 되는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는 매개체 역할이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했다. 책을 읽는 습관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 먼저 가볍게 읽을 수 있고, 내용의 이해도 쉬운 책들부터 친하게 되는 습관을 만들어가야 한다. 쉬운 책, 그리고 나의 관심 분야로 흥미로워하는 종류의 책, 그림이나 사진이 곁들인 책 등을 선정하여 부담 없이 시간 날 때 마다 짬짬이 책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발견해가야 한다. 나이가 중년을 넘어서면 노안을 핑계로 책과 더욱더 멀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활자가 큰 책들을 중심으로 간단한 내용부터 자주 접해보자. 상대적으로 출판사에도 중년 이상을 위한 활자가 큰 책을 발간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
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책 속에 답이 있다. “남아수독 오거서(男兒須讀 五車書)”는 “여남수독 오거서(女男須讀 五車書)”로 고쳐 쓰여 져야 할 것이며, “서중자유천종록(書中自有千鍾祿)”이라 실리주의에 밝은 중국인들을 책 속에 많은 재물이 있다고 송나라의 진종(眞宗)은 학문의 중요성을 책을 통하여 재물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의 정신적 생체가 녹아 있고, 공자와 맹자의 인생철학이 스며 있는 책들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삶이 내가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거울에 비춘 듯이 조금은 흉내내는 자신을 조명하게 된다.
오렌지를 짜면 오렌지 즙이 나온다. 물론 포도를 짜면 역시 포도즙이 나온다. 책을 펼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읽어 간다면 나의 삶에 보탬이 되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고,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으로 임한다면 당연히 책이 부여하는 본질의 의미를 왜곡한 채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책은 사색을 하게 만들고, 꿈이 스며 있으며, 느낌과 의지가 있다. 우주로 나아가는 길이 있고, 바다로 향하는 길도 있으며, 하늘을 나는 길도 있다. 책은 나의 길잡이이고 또한 나의 스승이다.
책을 읽으면 지식(知識)이 늘어 나는 것도 있지만, 지성(知性)이 성장하여 맹목적이거나 본능적 사고에 의하지 아니하고, 지적인 판단에 의거하여 슬기로운 삶을 살아가는 기반이 된다. 여러가지 문명의 이기에 밀려 주옥같은 책들과 그 책을 읽는 그리운 풍경이 빛을 잃은 동굴 속에서 침묵하고 있다면, 그것이 독자로 인하여 빛이 있는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그들은 나의 지혜롭고 윤택한 삶을 위해서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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