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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한카문학상 산문(수필)부문 으뜸상-‘연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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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6-07-23 09:26

김호정/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가을이 깊어질 무렵이면 나는 종종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바다와 맞닿아 있는 강들을

떠올린다. 넓은 대양을 떠돌던 장성한 연어들이 제 몸을 붉게 물들이며 고향으로 돌아오는 계절이다.

 

이곳 북미 서부와 캐나다 서부 해안의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태평양에는 저마다의

빛깔과 특징을 지닌 다섯 가지 종류의 연어가 있다.

 

가장 웅장한 몸집으로 연어의 왕이라 불리는 킹(King) 연어, 은빛 날렵한 몸매로 물 위를

힘차게 도약하는 실버(Silver) 연어, 강인한 턱을 지니고 가죽처럼 단단한 몸으로 흐름을

버텨내는 첨(Chum) 연어, 그리고 등 뒤에 귀여운 혹을 볼록하게 솟구치며 가장 먼저 무리 지어 돌아오는 핑크(Pink) 연어까지. 이들은 저마다의 시간과 속도로 가을 강변에 다채로운 생명의 파노라마를 펼쳐놓는다.

 

그 눈부신 연어의 무리 중에서도 유난히 내 눈길을 붙드는 것은 단연 사까이(Sockeye,

홍연어) 연어다. 산란기가 되면 바다에서의 빛나던 은빛 몸을 지워내고, 마치 온 삶을

불꽃처럼 태워 올리듯 온몸을 진홍빛으로 강렬하게 물들이는 녀석들이다. 머리는 짙은

초록빛을 띠고, 등은 활처럼 단단하게 굽어진다. 죽음을 향해 가는 쇠락의 몸임에도 바다를 거슬러 강으로 향하는 연어 떼들은 찬란하고 장엄하다.

 

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 가장 뜨거운 빛깔을 뿜어내는 저 비장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특별히 사까이 연어는 오직 자연에서만 살아간다. 다섯 가지 연어 중 사까이를 제외한

연어들은 인간의 기술로 양식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사까이 만큼은 인공적인 가두리 안에서 결코 길러낼 수 없다. 오직 태고의 거친 자연 속에서만 고유한 숨을 쉬는 생명체다.

 

강에서 태어나 망망대해로 나갔다가 수천 킬로미터의 대해를 돌아 다시 자신이 태어난

모태의 강으로 귀향하는 회귀본능. 거센 물살과 폭포를 뛰어오르며 긴 여정 끝에 고향에

도착한 연어는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인간의 눈에 허망해 보이는 연어들의 죽음은 소멸이 아니다. 그 주검은 강과 숲의 자양분이 되고,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모태가 된다. 한 마리의 삶은 닫히지만 강은 다시 붉게 물들 계절을 준비한다. 그렇게 회귀는 한 생명의 끝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열어젖히는 경이롭고도 겸허한 의식이 된다.

 

우리 집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연어들의 마지막 회귀지로 유명한 헴락

밸리(Hemlock Valley)가 나온다. 유독 서리가 일찍 내렸던 어느 해 10월이었다. 물빛보다

연어의 등이 더 많아 보이던 그 강가에서, 나는 어린 두 딸의 손을 꼭 잡고 회귀하는 연어 떼를 마주했다.

 

그 장엄한 자연의 거친 숨결을 눈앞에서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였다. 이미 겨울을 준비하는 듯 서늘한 숨결을 품고 위용을 갖춘 산세에 굽이치는 급류 속은 진홍빛 연어들의 거친 몸짓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강가에 바짝 붙어 서서 물살을 거스르다 날카로운 바위에 몸이 찢긴 연어들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폭포를 뛰어오르는 붉은 몸들이 허공 위로 번쩍

떠오를 때마다 아이들의 작은 눈망울이 놀라움으로 흔들리며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굉장하다. 엄마, 저 연어 피 나. 너무 아플 것 같아. 왜 저렇게까지 올라가는 거야?”

 

딸아이의 작은 손끝이 내 손안에서 가늘게 떨렸다. 상처 입은 생명을 향한 아이들의 순수한 안타까움은, 오히려 거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서 더 깊은 경외가 되어 강가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운 본향을 향해 평생의 힘을 다 쏟아부으며 물길을 거스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던 이민 초기의 삶이 붉은 물결 위에 투영되어 가슴을 조용히

비추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소명을 다하고 누워 있는 연어들의 주검 위로 수많은 새 떼가 큰 원을 그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한 공간에서 교차하는 치열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주검들은 허무하게 썩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유난히 푸르고 깊은 숲의 일부가

되어주는 죽은 연어의 몸. 끝없이 이어진 원시림과 태고의 냄새를 머금은 강물, 그리고 제 몸을 바쳐 숲을 키워낸 연어의 붉은 물길이 한데 어우러져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웅장한 풍광을 이루고 있었다.

 

연어는 제 죽음으로 숲을 키우고, 숲은 다시 그 강물에 새로운 생명을 품어 안는다.


-이외 수상작은 캐나다 한국 문협 카페, “한카문학상”에 전문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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