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선택을 시작한다.
일어날 것인가, 조금 더 누워 있을 것인가. 창문을 열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커피를
마실지, 물로 하루를 시작할지. 그런 사소한 선택들이 겹겹이 쌓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것을 선택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저 늘 그래
왔다는 이유로, 익숙하다는 이유로 하루를 산다.
그래서 가끔은 삶이 내가 정한 방향이 아니라, 어디선가 밀려와 떠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고, 뒤를 돌아보면 많은 시간이 흘러 있다.
그제야 사람은 묻게 된다.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지나온 길이었을까.
사람들은 인생을 운명이나 팔자라는 말로 설명하길 좋아한다. 잘되면 타고난 복이라 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팔자를 탓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말을 너무도 쉽게 듣는다. 누군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팔자가 좋다”고 하고, 일이 풀리지 않으면 “타고난 게 이 모양”이라며
한숨을 쉰다. 그렇게 말하면 마음은 잠시 편해질지 모른다. 책임이 삶이 아니라 운명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돌이켜 보면, 대부분의 순간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말
한마디를 할지 말지 망설이던 순간, 돌아 설지 한 걸음 더 나아갈지 고민하던 시간, 그때의
선택이 생각보다 먼 훗날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선택보다 상황을 먼저
떠올리고, 환경을 먼저 원망한다. 그러다 보면 불안한 마음은 커지고, 누군가 대신 답을 내려
주기를 바라게 된다.
사람들이 미래를 점치고, 사주를 들여다보는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일 것이다. 불확실한
내일 앞에서 확신을 얻고 싶은 마음. 잘 될 것이라는 말 한마디에 안도하고, 나쁜 말
앞에서는 조심하며 살아보려는 몸부림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선택은 되돌릴 수 없고,
지금의 삶은 어제의 선택 위에 서 있다. 내일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의 선택뿐이다.
요즘의 삶은 더욱 숨 가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선택지는 오히려 줄어든 것처럼
느껴진다. 돈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고, 사람과의 관계마저 계산이 개입된다. 많이 가질수록
마음은 더 분주해지고, 관계는 얇아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이고, 각자의 울타리 안에서 조심스럽게 살아간다.
그럴수록 선택은 더 무거워진다. 무엇을 선택하느냐 보다, 무엇을 포기하느냐가 더
중요해지는 시기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무엇을 삶의
중심에 둘 것인지를 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사람은 더 이상 정답을 찾기보다 방향을 고민하게 된다. 빠른
길보다 오래 가도 후회하지 않을 길을 생각한다. 남들이 부러워할 선택보다, 스스로 견딜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선택이 당장은 눈에 띄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삶의 결이 달라진다.
돌아보면 지금의 나는 수많은 선택의 결과로 여기 서 있다. 그 중에는 잘한 선택도 있고,
지금도 마음에 남는 선택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선택을 통해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이
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인생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하며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묻는다.
이 선택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그리고 이 길 끝에서, 나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선택은 그렇게, 오늘도 말없이 우리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래서 선택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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