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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6-02-27 16:15

차상: 그리움의 온도 – 이주령

그리움은 서늘하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은 가슴에 얼음덩어리를 안고 있는 것처럼 서늘하다. 세월의 흐름에도 그리움은 겨울의 온도에 머물렀다.

   아버지의 마지막 겨울이었다. 겨우내 입고 다니던 겉옷이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무렵이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다음 날 아침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패혈증 쇼크로 사경을 헤매고 있던 아버지를 만나러 다녀온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 언제 다시 위급한 상황이 올 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도 나는 일주일 뒤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야 했다. 직장에서 받은 간병 휴가가 며칠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캐나다로 돌아온 후 아버지에게 통증이 잦아들고 의식이 있을 때면 가족의 도움을 받아 영상 통화를 했다.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에 전화벨이 울리면 걱정과 불안으로 뒤척이다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만났다. 극심한 고통을 견디며 초췌해진 얼굴로 아버지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귀가 어두워 잘 들리지 않았고, 콧줄을 끼고 있어 말하기도 힘겨웠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그저 웃기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잠에서 깨어 마주했던 골격만 남은 야윈 미소가 생전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아버지는 그날 밤을 넘기지 못했다.

   당신에게 가는 길은 멀고도 더디었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승객들 틈에서 나는 숨죽여 울었다.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몰랐다. 아버지는 입관을 마치고 반듯하게 누운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손은 가슴 위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고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은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혼이 빠져나간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던 생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 위로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 얼굴에 내 얼굴을 묻고 속으로 울부짖었다. “아버지, 저 많이 기다리셨지요. 제가 너무 늦게 왔어요.” 얼음처럼 차가운 체온이 내 몸으로 전해져 왔다. 누르고 있던 통곡이 터져 나왔다. 흐르는 눈물이 아버지의 볼을 타고 내려갔지만, 얼어붙은 얼굴은 녹지 않았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보면 그리움의 끝은 차가워진 몸을 안고 있었던 마지막 순간에 멈추어 있었다. 마음은 서늘해지고 청회색의 슬픔에 젖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슬픔이 아려와도 나는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참척의 고통 속에서 통곡 대신 일기를 써 내려갔던 고 박완서 작가를 생각했다. 그녀는 말했다. “고통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이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었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들어주었다. 매일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기를 즐겼고, 화초를 아꼈다. 아버지의 손이 닿으면 죽어가던 식물도 살아났다. 음식을 가리지 않았고, 밥상을 두고 불평하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국수를 참 좋아했다. 따끈한 국물에 담긴 면은 뭐든 다 즐겨했다. 그중에서도 당신이 가장 좋아했던 건 엄마가 만든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낸 담백한 잔치국수였다. 엄마는 “하루 세 끼 국수를 내어도 좋아할 사람”이라며 아버지의 국수 사랑이 유별나다고 했지만, 자주 끓여 냈다. 함박웃음 짓는 아버지를 보고 싶어서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당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음식을 한 번도 만들어 드린 적이 없었다. 엄마에게서 배운 대로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색색의 고명을 얹어 정성껏 잔치국수를 준비했다. 처음으로 내가 차린 국수를 아버지에게 올렸다. 따뜻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온몸으로 온기가 퍼졌다. 눈물이 쏟아졌다. “괜찮다. 얼마나 먼 길인데 오느라 고생 많았다.” 아버지는 나를 위로하며 미소 짓고 있었다. 가슴속에 있던 얼음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오늘, 당신의 기일을 맞아 잔치국수를 준비한다. 따뜻한 국물 속에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리움이 온기를 입는다.



차하: 버드나무 꺾꽂이 – 전상희

지난가을 폭풍우가 심하게 불던 다음 날, 주말이어서 농가 창고에 펌퍼를 가지러 들렀더니 집 앞 오래된 버드나무 큰 가지가 꺾여졌고 그 주변엔 수많은 가지도 바람에 날려 길 위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이게 무슨 영문인지? 놀라서 늙은 버드나무를 보았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구멍도 깊게 파이고 혹도 여기저기 생긴 늙은 나무 둥치는 꺾여진 큰 가지를 떨군 것이 차라리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듯 여전히 굳세게 버티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가 하고 생각하며 부러진 나뭇가지를 모아 한곳에 쌓아두다가 문득 차라리 꺾꽂이해서 새로운 아기 버드나무를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창낭창한 젊은 버드나무가 연못 주변에서 자라면 아름답겠지 어쩌면 작은 물고기라도 키우고 싶어질 거야…. 하고 아직 만들지도 않은 연못과 자라지도 않은 버드나무, 있지도 않은 작은 물고기들을 그려 보니 갑자기 없던 열정이 생겼다
그래서 차 안에 가지고 다니던 정원용 가위로 싱싱한 가지들만 골라서 30-50센티미터로 잘라 잘 정리 한 뒤 큰 쓰레기봉투 안에 넣고 물을 어느 정도 채워서 집으로 가져왔다.
그 늦가을 물을 넣은 쓰레기 봉투 안에 버드나무 꺾꽂이 묘목을 묶어 두고서 일주일을 고민하던 끝에 다시 시골로 돌아가 농가 뒤뜰에 심어두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왔고, 겨울은 변함없이 동장군과 풍장 군을 몰고 왔다. 여전히 겨울빛이 짙은 노바스코샤의 3월 초 말뚝처럼 땅에 심어둔 묘목 중에 몇 그루가 생존한 듯 담론의 그 특유의 색으로 가지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집의 버드나무들도 담녹색으로 이미 가지가 변하여 마치 봄 눈이 난 듯하였다. 신기하게도 봄나무의 색을 알고 나니 멀리서도 어떤 것이 버드나무인지 확연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무의 종류마다 각기 다른 색깔로 가진 끝으로부터 생기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을 때도 나무를 유심히 보면 가지의 색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임산부의 배가 나날이 알게 모르게 달라지듯이 나무는 봄을 잉태한 눈을 조금씩 부풀리며 부지런히 가지에 물을 길어 올리고 있었다.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며 오늘을 허비하는 법이 없었다.
이제는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멀리 보인다. 큰 나무 둥치에 가지가 많아서 늘어지고 마치 담녹색 잎이 무성한 듯한 나무는 버드나무이고, 비슷한 담록에 좀 더 누런빛으로 땅에서 한 무더기씩 많은 가지로 올라온 무성한 나무는 개나리고, 멀리 농가에 줄을 맞추어 자라는 밝은 붉은 빛이 감도는 작은 나무는 블루베리이며, 또 흰색 자작나무는 연기가 피어오르듯 가지 끝에서 회색빛이 감돌면서 나뭇가지 끝에는 서서히 생기가 보인다. 마치 산 여기저기 연기가 피는 듯  각 종류의 나무마다 설명할 수없는 오묘한 기운과 빛깔들이 있다. 숲도 마치 사람들처럼 성격과 개성이 있는 것이다.

얼어붙은 듯 황량한 나무들이 기운과 에너지를 모으며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가. 우리들의 외로운 시간과 성숙의 시간을 대하듯 겸손하게 나무들을 보게 된 것은 얼마나 감사한 경험이었던가. 버드나무를 꺾꽂이하면서 알게 된 나무들의 겨울과 또 봄을 향한 애틋한 성장, 작은 가지 하나에서도 뿌리를 내리며 스스로 치유하는 생명력. 나무와 자연의 섭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나무와 같은 성장과 뿌리 내림이, 그리고 우리 각자의 개성대로 아름다운 삶의 색깔과 목적을 찾는다면 삶이 얼마나 의미 있고 보람될까?
머지않아 작은 연못가 버드나무에 싹이 자라고 푸르고 낭창한 가지가 실바람에 흐드러진 것을 꿈꾸는 한 그루 버드나무의. 마음이 되어 본다.


장려: 작은 시작 앞에서 – 이혜진

요즘 나는 작은 창업 일기로 하루를 채운다. 달력에 적히는 일정은 소소하고, 숫자로 남는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이미 치열한 레드오션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안에 남아 있는 작은 장점을 한 번쯤은 믿어 보기로 했다. 거창한 포부 대신, 오래 묵혀 두었던 마음을 꺼내어 천천히 적어 내려가는 일. 그것이 지금 나에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동력이 된다.

애초부터 이 일은 내 꿈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교육 콘텐츠 사업을 시작한 아들을 돕다 보니 자연스럽게 곁에 서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더 분주해져 있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 누구도 나에게 반드시 해야한다고 요구하지 않았고, 실패해도 잃을 것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발걸음이 바빠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시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큰아이는 부모가 자식을 보듯 나를 대견해한다. 조심스럽게 경과를 공유하면 “엄마, 좋다. 너무 잘됐다.”라며 나를 치켜세운다. 작은아이는 또 다르다. “엄마, 그냥 취미로 해. 스트레스 받지 말고.”라며 염려가 섞인 응원이다. 남편은 뭐 그저 웃으며 응원한다. 내가 에너지 돋는게 보기 좋은가 보다. 각자의 언어는 달라도 그 마음들이 모여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이 창업에는 투자금도, 화려한 전략도 없다. 오직 나의 시간과 정성, 원래 하던 일이지만 그것을 더 사업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있을 뿐이다. 잠들어 있던 나를 깨운다고나 할까,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광고와 홍보의 세계 앞에서는 종종 멍해진다. 블로그에는 조심스럽게 창업을 알렸지만, 여러 SNS는 나를 낯설고 구식인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알고리즘, 릴스, 해시태그 같은 단어들은 머릿속에 있지만 구현이 쉽지 않다. 아직은 손에 익지 않는 일들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블로그 첫 글에 이렇게 적었다.

“작은 시작이지만, 진심으로 하는 일은 언젠가 결실을 맺는다.”

진부한 문장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솔직한 고백이었고,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다짐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나는 늘 스스로에게 한계를 씌우며 살아왔다. 이 나이에 시작해도 될까, 나는 특별한 게 없는 사람 아닐까. 그런 질문들로 나를 묶어 두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삶을 멀리서 구경만 하듯 살아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건넨 위로는 늘 같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무탈하게 잘 키웠잖아.” 그 말은 분명 위로였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멈춰 세우는 핑계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라 내 손을 떠나자,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이 밀려왔다. 대학과 취업, 결혼이라는 긴 여정이 아직 남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해줄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보호자라는 역할에서 조언자로, 다시 멀찍이 서 있는 응원자로 물러나는 시간. 그렇다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하는 질문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로 다가왔다.

주변에서는 대학생 자녀를 위해 지근거리에서 밥을 해주는 부모들의 이야기도 들려왔다. 시험기간마다 에어비앤비를 빌려 아이 옆을 지킨다는 말도 있었다. 잠시 나는 내가 정성이 부족한 부모는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내가 할일이 없어 서운하기보다는 오히려 다행처럼 느껴진다. 이제 내가 해야 할 몫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같다. 아이들을 위한 기도, 그리고 나를 위한 삶. 이 두가지는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작은 아이가 세살 되던 해 나는 모든 일을 내려놓았다. ‘일하는 나’를 잃어버린 자리에는 생각보다 쉽게 우울이 스며들었다. 하루의 끝에서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작은 아이가 대학 입학을 앞둔 지금, 나는 다시 ‘무용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꼭 붙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창업은 그래서 더욱 작고,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크지 않아도 괜찮다. 남들보다 늦어도 괜찮다. 내 속도대로, 내 결대로 다시 나를 세우면 된다. 그 문장들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에서 되뇐다.

얼마 전 만나 한 부부는 슈퍼 늦둥이를 데리고 캐나다 유학을 왔다고 한다. 몇 달동안 이민자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한국에서는 하지 않던 허드렛일 까지 해내는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붙잡고 사는지 궁금해졌다고 했다. 그 질문은 내 안에 오래 머물러 있던 생각과 닮아 있었다.

나는 캐나다에 살면서도 정작 ‘여기’에 살고 있지 않았다. 집과 마트, 차 안이 전부인 일상. 집에서는 한국 음악을 듣고, 차에서는 한국 뉴스를 들으며 내가 어디 있는지도 잊은 채 살았다. 유학맘도 온전한 이민가정도 아닌 애매한 위치. 남편도 친구도 없이 오로지 아이들만 바라보던 삶은, 돌이켜보면 꽤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작은 창업을 시작한 뒤, 마음이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같은 길을 걸어도 풍경이 달랐다. 캐나다의 하늘이 더 넓게 더 맑게 보였고, 사람들의 표정이 낯설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지인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깊어졌다. 어느 날 문득, ‘아, 나는 이곳에 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10년이 지나서야 얻은 깨달음이었다.

지금의 작은 시도들은 단순한 생업이 아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나를 깨우는 과정이며, 아이들의 엄마로만 살아왔던 자리에서 다시 “나”라는 사람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삶은 크게 시작하는 사람보다, 주저하면서도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편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믿고 싶다.

늦어 보여도, 작아 보여도 괜찮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히 한 걸음을 내딛는다. 누군가 이미 걸어간 길이라 해도, 이 길은 내가 처음 걷는 나의 삶이니까. 내 나이에 느릴 수밖에 없지, 그렇게 나를 위로하며 진심을 담아 오늘도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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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산 박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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