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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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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6-01-16 15:48

단편소설
안오상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어느 달 밝은 밤이다 해바라기 같은 둥근 달이 담장을 넘어 마당을 지나 툇마루로 올라오더니 방안을 기웃거린다. 방 안엔 한복에 한 뼘이나 되는 긴 수염을 늘어 틀이고 머리에서 눈썹까지 하얀 탈을 뒤집어쓴 칠성 할 배가 신선처럼 앉아 내일 약초 캐러 갈 도구들을 챙기고 있었다. 좋은 약재를 구하면 횡재를 하는 날이지만 헛 빵을 치는 날엔 다리 품만 파는 날이다. 밖에는 밤이 깊어 갈수록 바람소리가 사나워졌다.
이때다 어디선가 한참 먼 곳에서 호랑이 우는 소리가 창 틈으로 스며 들었다.
할 배가 깜짝 놀란다 
“아니 호랑이 아녀?”  손을 멈추고 의아한 얼굴로 귀를 기울인다.
할 매가 물을 끓여 커피한잔을 다 마실 시간 쯤 되었을까 이번엔 가까운 곳에서 
“어-흥” 소리를 지르는데 제법 장엄하다. “아이고! 호랑이 맞네!”
할 배가 잠시 심술주머니를 늘어 틀이고 창 밖을 노려본다.
이때 예전에 어르신들의 말씀이 생각났다 호랑이는 영물이란 사람에겐 절대로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젊어 한때는 힘 께나 쓰던 솜씨지만 팔십 수에 될 법이나 한 소리인가?
그러나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겨 있던 할 배가 슬그머니 일어나는데 장승 같은 큰 키에 시퍼런 낫을 들고 방문을 열고 뛰어나간다.
“네 이놈~~ 어떤 놈이기에 에까지 와서 냄새나는 입을 벌리는 거냐” 호랑이가 흠짓 놀라더니 낄낄대고 웃는다.
“저런 요망한 놈이 있나 웃어?”
그러자 호랑이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할 아부지… 진지 잡수셨시유?” 크게 놀란 할 배가 악을 쓴다.

“뭐 뭐 여? 너 지금 뭐라고 했느냐?”
“진지 잡수셨냐고 했시유~”
“네 이놈 네가 사람의 말을 하는 걸 보니까 너는 호랑이가 아니라 돌무지 성황당 귀신이 아니면 여우 골 마귀의 악령이렸다.
낫을 치켜든다 호랑이가 다급하게 비명을 지른다.
“아~아~ 뉴…지는 유 귀신도 악령도 아니 구유 오도 갈 때 없는 떠돌이 나그네 쥬..”
나그네 라는 말에 할 배가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너 털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핫 ~하~하 호랑이가 나그네란 말은 난생 처음 들어 보겠구나 핫 아 하...”
“지는 유 보통 호랑이가 아녀유…”
“보통이 아니면 똥통이냐?” 호랑이가 발끈한다.
“지는 말이지유 신문에도 나오고 T.V 에도 많이 나왔시유”
“무언 조 깐으로..?” 
“말하는 호랑이로 유~”
“뭐 시여? 그럼 네가 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말하는 천재 호랑이란 말이냐?”
“맞아요 지가 바로 기에 유”
“아이구 그 놈 참 용하네 사람도 천재는 힘드는디...”
“천재는 유 만들어 지는 게 아니고 타고 난데 유”
“알았다 그 놈 참 말 한번 잘 하네...헌데 어떤 연고로 울고 다녔 드냐...?”
호랑이가 갑자기 부끄러운 듯 머리를 깊숙하 감춘다.
“지가유 교회를 지나가다가 목사님의 말씀이 밖으로 넘어오길래 무슨 말씀인가 들었는데 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에 생명을 주신 것은 육성하고 번성하기 위해서레유...
“그럼 너는 예수 쟁이냐?”
“아이구! 그럴 리가 있겠시유 지도 장가 한번 가볼라 구유”
“핫 하 하 그놈 참 맹랑하네 너 오래 몇 살이냐?
“네 살이유”
“뭐 여?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장가를 가?
“갈 수 있다고 하던데 유?”
“그려? 그럼 그렇다 치고 마땅한 각시를 구하면 신방을 차려야 하는디 마늘은 여물었더냐?
“마늘이 왜 필요한대유?”
“이놈아 마늘이 여물어야 성사가 되는 기여~~”
그제야 호랑이가 깨닫고 성깔을 낸다 “남사스럽게 그건 왜 따져 유?
“알았다 알았어 핫 하 그건 또 그렇다 치고 네 살던 곳이 어디냐?”
“동물원이유”
“거기서 왜 나왔는디?” 호랑이가 억울 하다는 듯 얼굴에 홍조를 띄운다
“저희들은 죄인도 아닌디 철장에다 잡아놓고 꼼짝 못하게 해유”
“그래도 동물을 그만큼 보살펴 주던 곳은 그곳 밖엔 없다.”
“아 뉴 싫어 유 지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 유...바깥세상도 보고 또 그 사람들은 무얼 먹고 어떻게 사는 가도 알고 싶어 유”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할 배가 “보면 같이 살려 구?”
“못 살 것도 없지요…”할 배가 사납게 눈을 부라린다.
“건 방 진 소리 사람은 오로지 사람이고 짐승은 어디까지나 짐승일 뿐이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목숨이나 보존할 생각해라 험 한 꼴 당하기전에...”호랑이가 코 웃음을 친다.
“그럴 리가 있겄시유 지도 뛰는 재주가 있는디”
“이놈아 뛰는놈 위에 나는놈이 있다는 걸 모르겠느냐...?”
“그럼 산 속 깊숙히 들어 가지유”
“핫 하 하 머리 깎고 중이라도 되고 싶은 모양이지? 그거 볼만 하것다 핫 하...”
너는 절대로 사람의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호랑이가 비명을 지른다.
“그럼 지는 어척 한데유...?”
“그야 동물원으로 다시 들어 가면 된다”
“싫어 유 난 억울해서 못 살 아유...”
호랑이가 징징 짠다 치근한 얼굴로 바라보던 칠성 할 배는 호랑이 얼굴에서 오래전에 집을 나간 아들 춘식이의 얼굴을 언뜻 본다.
할 배가 깜짝 놀라 다시 보았을 때 춘식이는 신기루처럼 사라진 후다. 안타까움에 깊은 한숨을 토한다. 이때다 하늘로 불꽃이 올라가며 이어 총소리가 난다.
“저것이 무엇이래유?”
“큰일났다 네가 울고 다니는 소리를 듣고 신고를 한 모양이다.”
“그럼 지는 어째 유?” 잠시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꽃을 노려보던 칠성할 배가 탄식을 한다.
“그려- 사람은 사람끼리 어울려 사는 게 잘 사는 것이고 짐승은 짐승끼리 숲속으로 벌판으로 쏘 다니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지 네가 갈 곳은 한곳 밖엔 없다.”
“거기가 어딘데유?”
“백두산 이란다 옛날에 강포수라는 분이 호랑이를 잡겠다고 친구 두엇과 함께 호랑이의 흔적을 따라 사십여일을 갔는데 바로 코앞에 부딪치는 산이 있더란다 그게 바로 백두산인데 그곳 엘 가니까 호랑이 발자국도 있고 영역 표시도 보았다고 했다.
“거긴 어찌가유?”
할 배가 자식을 훈육하듯이 엄한 표정을 짓고 아는 데로 조곤조곤 일러준다.
이때 하늘에서 두번째 불꽃이 아롱거린다. “아이고 큰일났네”
“네가 사람을 다치게 할 까봐 군인과 경찰이 동원된 모양인데 너를 잡아가려고 지금 출발한 것 같다. 자! 지금부터 너는 칠갑산 등줄기를 타고 꽁지가 빠지게 들고 튀는데 싸게 싸게 움직이지 않으면 어찌 될지 모르겠다.”
“그럼 지는 가야 되겠시유 안녕히 계셔야…”
몸을 휙 날려 가려 할 때
허둥대지 말고 내 말을 잘 지켜야 한다 
“야 알았시유”
호랑이가 다시 몸을 날려 가려는데 “잠깐~~” 할 배가 호랑이의 발목을 잡고 악을 쓴다.
“왜 유~~” 백두대관에 들어서면 북으로 북으로 가는 거다.”그건 아까 다 말씀하셨잖유 그럼 지는 가유~~” 
호랑이가 급히 돌아서려 하는데
할 배가 발작하듯 뒤를 따라 쫓아가며 핏대를 세운다.
“잠깐~~잠깐이다, 잠깐~~”
“또 왜 유” 알 것은 다 알았다니께유.”
할 배가 숨이 차 헉헉 걸이며 악을 쓴다.
“내가 관상을 볼 줄 아는데 각시를 만나거든 내 게로 은밀하게 오거라 새끼는 몇을 낳고 각시하고 평생해로 할 것인가를 봐줄라니께” 호랑이가 즐거워한다.
“아이고 할아버지 고마워 유 꼭 말씀드린 대로 할께유 안녕히 계세유... 하 하 하”
“잘 가거라~~”
손을 흔든다 호랑이는 어두움을 밟고 잠시 땅 울림 소리를 내는가 심더니 이네 사라지고 만다.
그 후 뒷동산 산 뽕나무의 열매를 두 해나 입이 시꺼멓도록 따 먹었는데도 호랑이 녀석은 소식이 없다.
칠성할 배가 약재를 손질하며 중얼 걸인다.
“이 녀석이 도대체 어찌 된 기여 답답해 죽것구먼”
할 매가 끼여 든다.
“영감이 염려 안 해도 그 짐승은 잘 먹고 잘 살 아유...”
“그럼 우리 춘식이는?”
“춘식이도 잘 먹고 잘 살것지유…”
“그 걸 어찌 아느디...?”
음성이 높아지자 할 매도 벌컥 성갈을 부린다.
“그 걸 알면 장터에 나가 점이나 치고 편히 살게 유…무소식이 희소식 이래유…”
“저…저… 저런...” 
“그때 영감이 약 장사를 한다고 밖으로만 나돌지 않았어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나갔겠시유...?”
“그려 내 잘못은 아는디 산골오지 마을에 젊은 것 들은 다 빠져나가고 쓰잘데기 없는 늙은이만 살고 있는 곳에 젊은 놈 혼자 무언 재미로 살 것이여...?
할 배가 악을 쓰며 하던 일을 밀어내고 밖으로 나간다. 먹물 같은 정막이 방안에 가득하다. 다만 창문으로 들어선 달빛만이 오래된 화장대 거울속에 요염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할 매가 무너 지듯 방 바닥에 엎어진다. 그리곤 두 손을 마주잡고 흐느끼며 기도하듯 아들을 찾는다.” 춘식아! ~~춘식아! ~~ 어디 있냐? 이 자식아? 느그 엄니 치아가 다 빠져서 들쑥날쑥 볼만하다. 그런 구경거리가 또 어디 있겠느냐 어여 와서 보거라…”
어깨를 들썩인다.
“그럼 느그 엄니가 눈이 어두워 너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 할 그때에 그때 올 것이여 흑 흑 흑...” 
“이도 저도 아니면 느그 엄니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난 후에 조상하러 오려고 안 오는 거냐? 이 몹쓸놈아!”
몸부림치다 마음을 다스리며 “얘 야! 세상에 아무리 좋은 잔치도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단다. 날이 저물기 전에 어서 오너라 흑…흑…이 자식아”
밖에는 태풍이 지나가는듯 하얀 갈대꽃이 눈송이처럼 창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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