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안오상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안오상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어느 달 밝은 밤이다 해바라기 같은 둥근 달이 담장을 넘어 마당을 지나 툇마루로 올라오더니 방안을 기웃거린다. 방 안엔 한복에 한 뼘이나 되는 긴 수염을 늘어 틀이고 머리에서 눈썹까지 하얀 탈을 뒤집어쓴 칠성 할 배가 신선처럼 앉아 내일 약초 캐러 갈 도구들을 챙기고 있었다. 좋은 약재를 구하면 횡재를 하는 날이지만 헛 빵을 치는 날엔 다리 품만 파는 날이다. 밖에는 밤이 깊어 갈수록 바람소리가 사나워졌다.
이때다 어디선가 한참 먼 곳에서 호랑이 우는 소리가 창 틈으로 스며 들었다.
할 배가 깜짝 놀란다
“아니 호랑이 아녀?” 손을 멈추고 의아한 얼굴로 귀를 기울인다.
할 매가 물을 끓여 커피한잔을 다 마실 시간 쯤 되었을까 이번엔 가까운 곳에서
“어-흥” 소리를 지르는데 제법 장엄하다. “아이고! 호랑이 맞네!”
할 배가 잠시 심술주머니를 늘어 틀이고 창 밖을 노려본다.
이때 예전에 어르신들의 말씀이 생각났다 호랑이는 영물이란 사람에겐 절대로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젊어 한때는 힘 께나 쓰던 솜씨지만 팔십 수에 될 법이나 한 소리인가?
그러나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겨 있던 할 배가 슬그머니 일어나는데 장승 같은 큰 키에 시퍼런 낫을 들고 방문을 열고 뛰어나간다.
“네 이놈~~ 어떤 놈이기에 에까지 와서 냄새나는 입을 벌리는 거냐” 호랑이가 흠짓 놀라더니 낄낄대고 웃는다.
“저런 요망한 놈이 있나 웃어?”
그러자 호랑이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할 아부지… 진지 잡수셨시유?” 크게 놀란 할 배가 악을 쓴다.
“뭐 뭐 여? 너 지금 뭐라고 했느냐?”
“진지 잡수셨냐고 했시유~”
“네 이놈 네가 사람의 말을 하는 걸 보니까 너는 호랑이가 아니라 돌무지 성황당 귀신이 아니면 여우 골 마귀의 악령이렸다.
낫을 치켜든다 호랑이가 다급하게 비명을 지른다.
“아~아~ 뉴…지는 유 귀신도 악령도 아니 구유 오도 갈 때 없는 떠돌이 나그네 쥬..”
나그네 라는 말에 할 배가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너 털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핫 ~하~하 호랑이가 나그네란 말은 난생 처음 들어 보겠구나 핫 아 하...”
“지는 유 보통 호랑이가 아녀유…”
“보통이 아니면 똥통이냐?” 호랑이가 발끈한다.
“지는 말이지유 신문에도 나오고 T.V 에도 많이 나왔시유”
“무언 조 깐으로..?”
“말하는 호랑이로 유~”
“뭐 시여? 그럼 네가 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말하는 천재 호랑이란 말이냐?”
“맞아요 지가 바로 기에 유”
“아이구 그 놈 참 용하네 사람도 천재는 힘드는디...”
“천재는 유 만들어 지는 게 아니고 타고 난데 유”
“알았다 그 놈 참 말 한번 잘 하네...헌데 어떤 연고로 울고 다녔 드냐...?”
호랑이가 갑자기 부끄러운 듯 머리를 깊숙하 감춘다.
“지가유 교회를 지나가다가 목사님의 말씀이 밖으로 넘어오길래 무슨 말씀인가 들었는데 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에 생명을 주신 것은 육성하고 번성하기 위해서레유...
“그럼 너는 예수 쟁이냐?”
“아이구! 그럴 리가 있겠시유 지도 장가 한번 가볼라 구유”
“핫 하 하 그놈 참 맹랑하네 너 오래 몇 살이냐?
“네 살이유”
“뭐 여?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장가를 가?
“갈 수 있다고 하던데 유?”
“그려? 그럼 그렇다 치고 마땅한 각시를 구하면 신방을 차려야 하는디 마늘은 여물었더냐?
“마늘이 왜 필요한대유?”
“이놈아 마늘이 여물어야 성사가 되는 기여~~”
그제야 호랑이가 깨닫고 성깔을 낸다 “남사스럽게 그건 왜 따져 유?
“알았다 알았어 핫 하 그건 또 그렇다 치고 네 살던 곳이 어디냐?”
“동물원이유”
“거기서 왜 나왔는디?” 호랑이가 억울 하다는 듯 얼굴에 홍조를 띄운다
“저희들은 죄인도 아닌디 철장에다 잡아놓고 꼼짝 못하게 해유”
“그래도 동물을 그만큼 보살펴 주던 곳은 그곳 밖엔 없다.”
“아 뉴 싫어 유 지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 유...바깥세상도 보고 또 그 사람들은 무얼 먹고 어떻게 사는 가도 알고 싶어 유”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할 배가 “보면 같이 살려 구?”
“못 살 것도 없지요…”할 배가 사납게 눈을 부라린다.
“건 방 진 소리 사람은 오로지 사람이고 짐승은 어디까지나 짐승일 뿐이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목숨이나 보존할 생각해라 험 한 꼴 당하기전에...”호랑이가 코 웃음을 친다.
“그럴 리가 있겄시유 지도 뛰는 재주가 있는디”
“이놈아 뛰는놈 위에 나는놈이 있다는 걸 모르겠느냐...?”
“그럼 산 속 깊숙히 들어 가지유”
“핫 하 하 머리 깎고 중이라도 되고 싶은 모양이지? 그거 볼만 하것다 핫 하...”
너는 절대로 사람의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호랑이가 비명을 지른다.
“그럼 지는 어척 한데유...?”
“그야 동물원으로 다시 들어 가면 된다”
“싫어 유 난 억울해서 못 살 아유...”
호랑이가 징징 짠다 치근한 얼굴로 바라보던 칠성 할 배는 호랑이 얼굴에서 오래전에 집을 나간 아들 춘식이의 얼굴을 언뜻 본다.
할 배가 깜짝 놀라 다시 보았을 때 춘식이는 신기루처럼 사라진 후다. 안타까움에 깊은 한숨을 토한다. 이때다 하늘로 불꽃이 올라가며 이어 총소리가 난다.
“저것이 무엇이래유?”
“큰일났다 네가 울고 다니는 소리를 듣고 신고를 한 모양이다.”
“그럼 지는 어째 유?” 잠시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꽃을 노려보던 칠성할 배가 탄식을 한다.
“그려- 사람은 사람끼리 어울려 사는 게 잘 사는 것이고 짐승은 짐승끼리 숲속으로 벌판으로 쏘 다니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지 네가 갈 곳은 한곳 밖엔 없다.”
“거기가 어딘데유?”
“백두산 이란다 옛날에 강포수라는 분이 호랑이를 잡겠다고 친구 두엇과 함께 호랑이의 흔적을 따라 사십여일을 갔는데 바로 코앞에 부딪치는 산이 있더란다 그게 바로 백두산인데 그곳 엘 가니까 호랑이 발자국도 있고 영역 표시도 보았다고 했다.
“거긴 어찌가유?”
할 배가 자식을 훈육하듯이 엄한 표정을 짓고 아는 데로 조곤조곤 일러준다.
이때 하늘에서 두번째 불꽃이 아롱거린다. “아이고 큰일났네”
“네가 사람을 다치게 할 까봐 군인과 경찰이 동원된 모양인데 너를 잡아가려고 지금 출발한 것 같다. 자! 지금부터 너는 칠갑산 등줄기를 타고 꽁지가 빠지게 들고 튀는데 싸게 싸게 움직이지 않으면 어찌 될지 모르겠다.”
“그럼 지는 가야 되겠시유 안녕히 계셔야…”
몸을 휙 날려 가려 할 때
허둥대지 말고 내 말을 잘 지켜야 한다
“야 알았시유”
호랑이가 다시 몸을 날려 가려는데 “잠깐~~” 할 배가 호랑이의 발목을 잡고 악을 쓴다.
“왜 유~~” 백두대관에 들어서면 북으로 북으로 가는 거다.”그건 아까 다 말씀하셨잖유 그럼 지는 가유~~”
호랑이가 급히 돌아서려 하는데
할 배가 발작하듯 뒤를 따라 쫓아가며 핏대를 세운다.
“잠깐~~잠깐이다, 잠깐~~”
“또 왜 유” 알 것은 다 알았다니께유.”
할 배가 숨이 차 헉헉 걸이며 악을 쓴다.
“내가 관상을 볼 줄 아는데 각시를 만나거든 내 게로 은밀하게 오거라 새끼는 몇을 낳고 각시하고 평생해로 할 것인가를 봐줄라니께” 호랑이가 즐거워한다.
“아이고 할아버지 고마워 유 꼭 말씀드린 대로 할께유 안녕히 계세유... 하 하 하”
“잘 가거라~~”
손을 흔든다 호랑이는 어두움을 밟고 잠시 땅 울림 소리를 내는가 심더니 이네 사라지고 만다.
그 후 뒷동산 산 뽕나무의 열매를 두 해나 입이 시꺼멓도록 따 먹었는데도 호랑이 녀석은 소식이 없다.
칠성할 배가 약재를 손질하며 중얼 걸인다.
“이 녀석이 도대체 어찌 된 기여 답답해 죽것구먼”
할 매가 끼여 든다.
“영감이 염려 안 해도 그 짐승은 잘 먹고 잘 살 아유...”
“그럼 우리 춘식이는?”
“춘식이도 잘 먹고 잘 살것지유…”
“그 걸 어찌 아느디...?”
음성이 높아지자 할 매도 벌컥 성갈을 부린다.
“그 걸 알면 장터에 나가 점이나 치고 편히 살게 유…무소식이 희소식 이래유…”
“저…저… 저런...”
“그때 영감이 약 장사를 한다고 밖으로만 나돌지 않았어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나갔겠시유...?”
“그려 내 잘못은 아는디 산골오지 마을에 젊은 것 들은 다 빠져나가고 쓰잘데기 없는 늙은이만 살고 있는 곳에 젊은 놈 혼자 무언 재미로 살 것이여...?
할 배가 악을 쓰며 하던 일을 밀어내고 밖으로 나간다. 먹물 같은 정막이 방안에 가득하다. 다만 창문으로 들어선 달빛만이 오래된 화장대 거울속에 요염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할 매가 무너 지듯 방 바닥에 엎어진다. 그리곤 두 손을 마주잡고 흐느끼며 기도하듯 아들을 찾는다.” 춘식아! ~~춘식아! ~~ 어디 있냐? 이 자식아? 느그 엄니 치아가 다 빠져서 들쑥날쑥 볼만하다. 그런 구경거리가 또 어디 있겠느냐 어여 와서 보거라…”
어깨를 들썩인다.
“그럼 느그 엄니가 눈이 어두워 너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 할 그때에 그때 올 것이여 흑 흑 흑...”
“이도 저도 아니면 느그 엄니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난 후에 조상하러 오려고 안 오는 거냐? 이 몹쓸놈아!”
몸부림치다 마음을 다스리며 “얘 야! 세상에 아무리 좋은 잔치도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단다. 날이 저물기 전에 어서 오너라 흑…흑…이 자식아”
밖에는 태풍이 지나가는듯 하얀 갈대꽃이 눈송이처럼 창문을 두드린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안오상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
|









안오상의 다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