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외국에 살면서 이방인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은 복잡한 감정을 동반해 찾아온다. 현지 사람들이 특정 TV 프로그램에 대해 말할 때 함께 웃지 못하고,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감정 표현의 방식이 서툴러 무감각할 때, 은행이나 병원, 행정 기관 등의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복잡한 절차나 서류에 압도당할 때, 직장 동료와 철학, 정치 또는 깊은 감정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없을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어디서 왔고 왜 이곳에 살고 있는지를 반복적으로 설명해야 할 때면 깊은 피로와 소외감을 느끼며 이방인의 쓸쓸함에 잠기곤 한다. 이방인은 자신이 속한 곳의 지리나 관습을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약간의 배타적인 뉘앙스가 포함된 이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나의 또 다른 이름이 되어버렸다.
책장에서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꺼내 들었다. 부조리의 철학을 대표한다는 이 작품은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에 무관심하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후, 사회적 관습과 기대에 순응하지 못하면서 결국 '이방인'으로 규정되는 이야기이다. 뫼르소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 앞에서 점점 더 냉소적이고 무관심해졌던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마다의 모습과 생각을 가지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때로는 납득할 수 없는 순간들을 맞닥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 부조리에 맞설 용기가 없어 순응하거나 무력감을 느끼면서 숨을 죽인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일 수 있다. 다수가 만들어 놓은 규범, 기대, 가치관 등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냉혹하고 배타적일 수 있는지, 이방인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법정에 서 있는 뫼르소를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과거에 부조리에 맞섰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불이익을 당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현실을 왜곡한다. 애써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무력감을 학습하며, 누군가 나서서 나를 대신해 싸워주기를 바라기만 한다.
인간이 불완전하고 부조리함을 품은 나약한 존재라는 이유로, 보편적인 시각에서 조차 수긍할 수 없는 세상의 혼동과 무자비를 용인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뫼르소처럼 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삶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부조리한 세상의 편견과 억압에 대해 반기를 들고 싶다. 세상에서 논의된 공동의 합의 따위는 깨부수고 진실되고 정직하게 세상을 보고 그 안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싶다.
매일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과 노동은 삶의 본질을 탐색하고 찾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조차도 작게 만든다. 죄로 인해 바위를 산 정상으로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았다 해서,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처럼 방향을 잃고, 삶을 놓아버린다면 그것이야 말로 존재를 부정하고 삶을 포기하는 비겁함이다. 나는 종종 내가 형벌을 받고 있는 시지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소리 없이 삶의 의미를 찾아 운명을 초월하는 작은 영웅들을 보게 된다. 늙고 약해진 부모님의 모습과 성실한 친구와 이웃들 속에서 나는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본다. 거대한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에 맞선 인간은 너무 작아서 쉽게 무릎 꿇을 것 같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 속에 자신의 삶을 묵묵히 꾸려 나가고 있다. 이는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인식하지만 그 운명에 매몰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아 바위를 굴리는 인간의 위대함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실존적 고독과 부조리한 세상에 저항하며 나의 길을 가고 싶다. 작고 보잘것없는 하루살이의 날갯짓에도 삶의 의지와 생명의 위대함이 숨겨져 있고, 자연의 이치와 원리가 담겨있다. 타협하지 않고, 나의 약함을 인정하며 다시 굴러 떨어질 바위라도 야무지게 밀고 나아가 찰나의 행복들을 영원처럼 간직하리라. 이방인이라는 낙인을 벗어 버리고 오늘도 자유롭게 비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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